연구자로서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도전에 직면한다. 대학원 시절에는 연구실과 지도교수의 연구 방향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숙한 문제를 다루게 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제 나만의 연구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다가온다. 처음에는 독립 연구자로서의 길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나만의 연구 철학과 방법론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연구비를 어떻게 확보하고, 어떤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누군가는 박사과정을 마치자마자 ‘독립 연구자’가 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연구실의 안전망에서 벗어나 스스로 연구를 기획하고, 연구비를 신청하고, 학생을 지도하며, 연구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진정한 독립 연구자로서의 책임과 자유를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독립 연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걸까? 단순히 교수직을 얻고 연구실을 운영하는 것만으로 독립 연구자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독립 연구자란 ‘무엇을 연구하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일까? 이 글에서는 독립 연구자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철학적·실용적 요소가 무엇일지 생각을 공유해본다.
독립 연구자는 단순히 연구비를 확보하고, 연구팀을 운영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연구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연구자는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학문적 연구는 본질적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이 독립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기존의 연구실이나 지도교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익숙한 문제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박사과정 동안 AI 기반 학습 분석을 연구했던 연구자가 독립 연구자가 된 이후에도 ‘그냥 AI 학습 분석 연구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는 독립 연구자로서의 방향성을 설정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독립 연구자는 "나는 AI 학습 분석을 어떻게 새롭게 접근할 것인가?", **"나는 어떤 연구 철학을 바탕으로 이 분야를 탐구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학습자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AI가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사람이다."
"나는 AI 기반 교육 시스템에서 학습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나는 교육공학에서 AI 윤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자신이 다루고 싶은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순간, 연구자로서의 방향성이 명확해지고, 연구의 지속 가능성이 확보된다.
독립 연구자는 연구의 모든 측면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연구 주제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넘어, 연구 방법론, 연구 네트워크, 연구비 활용 방식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연구비 없이도 지속할 수 있는 연구를 설계하는 것은 독립 연구자로서의 중요한 능력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비가 없으면 연구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연구비 없이도 실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며 논문을 작성할 수 있는 연구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연구 자율성의 핵심이다.
또한, 연구 자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내 연구를 내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자는 학계의 트렌드에 따라 연구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 철학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연구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연구 주제를 스스로 설정하기:
독립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이 주제가 재미있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구 질문을 학문적·사회적 맥락에서 정리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연구 방법론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기:
기존의 연구 방법론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고 연구의 틀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비 신청과 연구 기획 경험 쌓기:
연구비를 확보하는 것은 연구자로서 자율성을 확보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단순히 연구비를 따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연구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비를 어떻게 활용할지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립 연구자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만의 연구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이다. 같은 연구 주제를 연구하더라도, 연구 방법론과 접근 방식에 따라 연구자는 저마다 다른 학문적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나는 멀티모달 학습 분석(MMLA)을 통해 학습 역동성을 연구하는 데이터 기반 학습설계 연구자다."
→ 로그 데이터, 생체신호 데이터(EEG, GSR), 시선추적 데이터 등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학습 과정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으로 연구자의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다.
"나는 게임 기반 학습(GBL)과 몰입형 시뮬레이션을 연구하는 연구자다."
→ 게임 디자인 원리, 몰입 경험(flow), 인지적 부담(cognitive load)을 조합하여 학습 환경을 설계하는 접근법을 강조할 수 있다.
연구자의 캐릭터는 단순한 연구 방법론을 넘어, 연구 철학과 학문적 태도에도 영향을 받는다.
"나는 연구 결과를 실제 교육 현장에서 적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연구자다."
→ 논문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교육자료, 워크숍,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을 함께 수행할 수 있다.
"나는 교육공학 연구에서 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자다."
→ AI, VR, AR과 같은 기술을 단순한 학습 도구가 아닌, 사회적·윤리적 맥락에서 평가하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독립 연구자가 된다는 것은 ‘연구비를 얼마나 받았는가?’, ‘몇 편의 논문을 출판했는가?’와 같은 단순한 수치적 성과로 결정되지 않는다. 연구자로서의 캐릭터는 무엇을 연구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연구하는가, 연구를 통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의해 정의된다. 그러나 우리는 연구자의 성공을 주로 외형적 성과로 평가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독립 연구자는 단순히 '성과를 내는 연구자'가 아니라, 자신의 연구 철학과 비전을 구축하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연구자로서의 캐릭터는 외부의 평가 기준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가 스스로 어떤 연구를 할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자신의 연구가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면, 그 연구자는 충분히 독립적이고 가치 있는 연구자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