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만드는 사회

2025.09.04.(목)의 일기

by 다섯개의 가위




열두 번째 책,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다 읽었다. 6월 초부터 책을 챙겨 읽기 시작했는데, 한 달에 4권 정도 읽은 셈이니 꽤 읽은 듯하다. 조금 뿌듯한 걸.


어쨌든 이번 책은 퍽 특이했다. 평소보다도 주인공에게 이입하는 것이 다소 어려웠는데, 사실 독자인 나뿐만이 아니라 작중 모든 등장인물들이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정말 그가 '이방인'인 것처럼.

주인공은 독특한 사람이었는데(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냉소적이라고 해야 할지, 욕구에 충실하다고 해야 할지, 혹은 사회적 맥락에 무디다고 해야 할지, 어느 쪽으로든 애매했다.

다른 점은 몰라도, 굉장한 허무주의자라고 느껴진 건 분명했다. 또한 반골 기질이 상당해 보였다.


그의 태도는 마치 다른 소설, 「어린 왕자」와 정반대의 지점에 놓인 듯했다. 절댓값으로 따지면 비슷할 것 같은데, 부호가 반대로 찍혀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어린 왕자는 무언가에 의미를 둔다는 것이 그 자체로 얼마나 의미 있는지, '의미'라는 것에 대한 찬미라고까지 느껴졌었는데, 이방인인 주인공은 그렇지 않다.

그는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고, 사회적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신의 주관에서 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확고해서 그의 '비이성적인 이성'만이 올곧게 주체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에게 유의미한 건 그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가 한 명의 철학자 같았다.


확실히 그는 흥미로운 인물이었지만, 나와 결이 맞는 인물은 아니었다. 혹은 너무 비슷해서 꺼려지는 감정일 수도. 어느 쪽이든 가까이하고 싶은 인물은 아니었다. 나는 허무주의 자라기엔 지나치게 감성적이어서, 오히려 낭만주의에 가까운 사람이니까. 굳이 말하자면 나는 어린 왕자 쪽에 이입하기 더 쉬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나의 개인적인 취향과는 별개로,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자라는 점에 있어서 그는 진실로 사유하는 인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비로소 진정 인간다웠다.

그런데 그런 그가 윤리성과 도덕성에 동떨어진 무언가, 마치 인간이 아닌 괴물처럼 묘사된다는 점은 또다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렇게나 비정할 수 있냐는 듯, 그는 모든 이로부터 배척당한다.

어쩌면 사람의 본성이란 게 본디 윤리와 도덕에 동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모든 이가 이방인인 것이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이명처럼 모두가 함께 살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도덕, 윤리, 법률과 체제를 만든다.

인간은 본래 도덕적이지 않기에 도덕을 추구하는 걸까?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적 체제는 다시 주체적인 인간성을 해치는 걸까? 이방인이 만드는 사회라는 것은 무엇인 걸까. 현재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뭐 어쨌든 이 책을 통해 나도 잠깐이나마 본질적인 의문을 품었으니, 대단한 책임에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도, 이 소설이 노벨상에 오르며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것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나는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책이 함의하는 바가 얼마나 깊고 넓은 것인지 완독 후에 따로 찾아보려 했었으나, 이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는 되려 그럴 수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그렇게 도통 모르겠는 이 책의 주인공조차도 스스로 사유하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당분간 이렇게 홀로 생각해 보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볼까 한다. 타인의 해석을 보는 것은 분명 재미있지만,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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