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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한 스컹크 Dec 08. 2023

품고 있는 날개

고등학교

실업계에 정보통신이라는 과에 가게 되었다. 

컴퓨터라고는 지뢰 찾기밖에 못하는 내가 컴퓨터계열로 들어가다니. 솔직히 너무 싫어서 고등학교가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매일 울었다. 고등학교 진학 상담에 오지 않은 부모님을 원망하며 매일 울었다. 그래도 학교는 시작했고 나는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은 눈물과 함께 시작되었다.


기독교 학교였던 실업계는 수업시간에 종교만 배웠다. 수학, 국어, 영어, 음악 등 모든 수업시간이 종교시간이었고 수업시간에 자거나 떠들면 사탄에 씌었다며 사탄을 물리쳐야 한다며 선생님은 학생들을 사정없이 구타했다. 한 친구는 수업시간에 졸았다는 이유로 서있게 하고 선생님이 의자 위로 올라가서 날아 차기를 하며 그 친구를 때렸다. 나는 음악시간에 졸았다는 이유로 당구큐대로 팔을 사정없이 맞았다.(나는 왜 항상 당구큐대로 맞는가. 그래서 내가 당구를 싫어하나 보다.)


시험이 다가오면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만 가르치고 시험범위를 알려주었다. 

국사는 주로 주관식이 한 문제인데 한 페이지를 쓰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페이지를 알려주며 이게 주관식으로 나올 것이라고 알려줬고 정말 그 한 문제만 주관식으로 나왔다. 알려줘도 어차피 공부하는 학생은 없었다. 나를 포함한 두 세명 만이 공부할 뿐.


나는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무식하게 무조건 외우기로 했다. 알려주는 시험범위를 교과서 통째로 똑같이 외웠다. 그게 수학이던지 음악이던지. 그렇게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자 나는 반에서 2등을 했다.

1등을 한 친구와는 영어시험 듣기 평가에서 점수가 갈렸는데, 그 친구는 어렸을 적 미국에서 살다 온 친구였다. 그 친구는 영어를 잘했고 영어원서도 잘 읽었다. 그런 친구를 듣기 평가에서 이길 수 없었다. 나는 그 친구를 고등학교 3년 내내 한 번도 못 이겼다.


반에서 2등을 하고 시험성적 평균이 80점을 넘으니 학교와 아빠 직장에서 장학금이 나왔다. 처음 경험해 보는 상황에 당황스러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과시욕이 심한 아빠에게 직장 사람들이 장학금 받은 사실을 부러워하며 축하해 주자 아빠는 굉장히 기분 좋아했다.


나 스스로도 자존감이 올라갔다. 항상 무시당하며 우울하기만 했던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았고 스스로도 뿌듯했다. 더 이상 수업시간에 졸지 않았고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교복도 항상 다리미로 다려서 깨끗하게 하고 다녔다. 엄마 없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책방에서 책을 빌려 집에서는 책을 읽고 공부도 하고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일기의 내용은 주로 인문계에 가지 못 한 나의 한탄의 글들과 집주인아저씨가 부리는 꼬장이 무섭다는 내용이었다.


대학교에 가고 싶다는 목표로 고등학교 내내 열심히 공부했고 싫어하는 컴퓨터를 공부해야 할 때는 울고 이를 악물며 버텼다. 점수만 잘 나와서 대학교에 가자. 목표는 하나였다.

고등학교 내내 전교 4등에서 2등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공부했고 서울의 한 대학교에 지원한 과에서 탈락했다. 서울시장 상을 받을 친구가 합격한 것이다. 대신에 나는 서울의 한 전문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원하는 과도 아니었고 2년 제인 것에 화가 났지만 하루는 아빠가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와서 나에게 말했다. 너는 그냥 공무원이나 하면서 평범하게 살라고. 합격했던 전문대는 졸업하면 공무원 쪽으로 수월하게 취직된다고 하니 아빠말대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래. 등록금을 지원해 준다는 게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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