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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한 스컹크 Dec 11. 2023

품고 있는 날개

대학, 아르바이트 그리고 주민등록등본

오빠는 서울의 4년제에 합격하고도 아빠가 등록금을 안 줘서 못 가고 엉뚱한 지방대로 갔다. 

등록시기를 놓쳐 버렸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엄마는 대학은 나와야 한다며 방방 뛰었고 오빠는 부랴부랴 지방대학을 알아봤다. 아빠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조건으로 들어보지도 못한 지방에 2년제에 입학했다. 

오빠가 유배돼서 가는 것 같았다.


자취방과 용돈을 적게 줘서 오빠는 지방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원하지도 않는 학과에 가서 마음고생도 하는 것 같았다. 방학 때면 서울로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했고 학기가 시작되면 다시 지방으로 내려갔다. 내가 집주인 할아버지와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오빠도 지방에서 돈이 없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멀리 지방대학에 간 오빠와 달리 내 대학은 집에서 버스만 타면 가깝게 갈 수 있는 학교여서 좋았다. 

여중, 여고만 다니다가 한 반에 남자 여자가 같이 수업을 듣는 모습이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름 사교성이 좋았던 나는 언니 오빠들과 쉽게 친해지며 나름 즐거운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너무 즐겁게 시간을 보내느라 내 첫 성적표에는 D와 F가 많이 보였다.


하루는 학교라고 하면서 전화가 왔는데 내가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학교에서 나를 퇴학시키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보고 내년에 수능을 다시 보고 입학해야 한다고 했고 실업계를 나와서 수능공부를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두려웠다. 한 번만 용서해 달라면서 전화로 사정사정했다. 그러자 전화기 반대편에서 그럼 이번만 봐줄 테니 다음 학기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알고 보니 이 전화는 과에서 친하게 지냈던 오빠가 장난전화를 한 것이었다. 

얼굴이 빨개지고 땀을 뻘뻘 흘리는 나를 사람들은 박장대소하며 웃었고 놀려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다. 그래도 이 장난 덕분에 나는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2학년 때는 성적장학금을 받았다.


나는 부모님이 이혼한 상황이 부끄럽거나 숨길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주위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부모님의 이혼이 부끄러운 것이었다. 나에게 이혼가정에서 자란 아이라는 색안경을 씌워주었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 실수라도 하면 이혼가정에서 자라서 그렇다, 엄마가 없이 자라서 일을 못 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빠 친구의 소개로 들어간 사무직 아르바이트에서는 직원들이 가족들과 전화통화를 할 때면 나를 항상 쳐다보며 우리는 절대 이혼하지 말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아르바이트생은 부모가 이혼한 걸 숨기지 않고 다 말해서 놀랬다, 성격이 좋은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이혼하지 말자, 애가 불쌍하다 는 등 대놓고 뭐라고 했다. 

그 후로 이혼가정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도 주민등록등본을 가져오라고 하면 '부'란에는 아빠 이름이 있지만 '모'란은 비어있어서 이혼가정이라고 할까 봐 그만두었고, 취업을 할 때 좋은 직장에 면접까지 다 통과한 곳도 주민등록등본을 가져오라고 하면 취업을 포기했다. 

그래서 나는 20대를 아르바이트만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고 돈을 모으지도 못했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내며 시간을 도둑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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