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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한 스컹크 Dec 04. 2023

품고 있는 날개

중학교

내가 나쁜 아이가 되기로 결심하고 학교 공부에서 손을 놓았다. 

수업시간엔 잠을 자거나 딴짓을 했고 노는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복도로 쫓겨나면 그 아이들이 나를 불렀다. 

그럼 나도 복도로 자진해서 나갔다. 복도에서 아이들은 나한테 본인들을 웃겨달라고 말했고 나는 그 아이들을 웃겨주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수업이 끝나고는 나쁜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담배 피우는 망을 봐주느라 바빴다. 평소에는 욕을 입에 달고 살면서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이랑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싸우자고 달려들었다.

그렇게 중학교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시험을 보면 나의 수학점수는 4점이었고 그나마 잘 본 과목의 점수는 18점이었다. 

아직도 이런 점수가 기억이 나는 이유는 한동안 아빠가 나를 점수로 불렀기 때문이다. “야 18점. 넌 밥이 넘어가냐?” “야 4점. 객관식 다 틀리고 주관식 하나 맞는 것도 용하다.”


그렇게 열심히 노는 아이들의 부하짓을 하다 보니 이 아이들은 우리 오빠까지 우습게 보였나 보다. 

하루는 우리 집에 전화를 했는데 내가 씻느라 전화를 못 받고 대신 오빠가 전화를 받았다. 씻고 나온 나에게 누구한테서 전화가 왔었는데 기분이 안 좋은지 화를 내더란다. 우리 집에 전화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받았는데 그 사람에게 화를 냈다고? 뭐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나에게 전화를 바로 안 받는다며 화를 내면서 내 옷과 가방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지금 나한테 아쉬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맞는 것인가?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우리 오빠에게 화를 내? 내가 우스워도 그렇지 우리 오빠까지 건드려?

뭔가 잘 못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들을 따라다닌 이유는 우리 가족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지 우리 가족까지 우습게 보이려고 한 게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점점 그 아이들에게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가 거리를 두는 지도 몰랐다. 원래부터 없던 애처럼 그들은 너무 잘 지냈다. 나는 그동안 뭘 한 거지.


그렇게 중학교 3학년부터 나쁜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나는 평범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H.O.T의 팬이었는데 반에는 H.O.T의 팬이 많아서 우리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H.O.T팬, 젝스키스팬, god팬 그리고 이글파이브의 팬으로 금세 친해졌고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2학기 중간고사 때 다시 내 생각을 바꿔놓는 일이 있었다.


부반장을 하던 조성모 팬이 커닝을 하다가 걸린 것이다. 

그 친구는 평소에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좋은 친구였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간다는 압박이 심했는지 커닝을 시도했고 그게 걸린 것이다. 친구는 조용히 교무실로 불려 갔고 한 교시가 끝나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은 마무리되었다. 

그러자 반에서 노는 아이들이 그 친구를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본인들이 커닝을 했으면 그 자리에서 맞으며 부모님을 불러오라고 했을 것이라는 둥, 역시 부모빽이 좋으니 커닝을 해도 조용히 넘어간다는 둥 하면서.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쁜 아이들은 성적이 잘 나오면 불려 가서 이번엔 누구 시험지를 커닝했냐, 솔직하게 말하라면서 오히려 혼난다. 그런데 평소에 행실이 좋고 바른 친구들은 성적이 떨어지면 무슨 일이 있냐 혹은 어디가 아프냐 오히려 걱정을 해준다. 

이런 일을 겪은 후 내 생각은 달라졌다. 내가 나를 지키려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공부를 열심히 하고 평소에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좋은 부모의 빽이 없으니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이것이었다.


그러나 중학교부터 공부에 손을 놓고 있어서 성적을 단시간에 올리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대신에 나는 선생님을 찾아가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고 집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시험기간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내 성적은 평균 50점을 못 넘었다. 그리고 나는 실업계에 가게 되었다. 오히려 실업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본이 없으니 인문계에서 성적을 올리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차라리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실업계에서 보란 듯이 공부하자. 

그렇게 다짐하고 실업계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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