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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한 스컹크 Dec 18. 2023

품고 있는 날개

세상으로부터 숨다

캐나다로의 워킹홀리데이 목표가 없어진 나는 다시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나에겐 남자친구가 있었다.


대학을 다니던 중 나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같은 과의 6살 차이가 나는 나이 많은 오빠랑 사귀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공부도 잘했고(항상 성적 장학금을 받고 과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운동도 잘했었다. 

나의 첫 남자친구는 내 생각에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람은 정말 아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공부만 잘한다고 인간성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평일엔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엔 이 놈의 집에 가서 집안일을 했다. 이 놈 엄마는 나에게 설거지며 방청소를 시켰고 내가 월급을 타는 날이면 퇴근시간에 맞춰 전화가 왔다. 피자나 통닭을 사 오라는 주문전화였고 그러면 나는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 놈의 집에 주문한 음식을 들고 찾아갔다. 만나는 동안 최신 휴대전화를 2번이나 사줬다. 일시불 현금으로. 데이트비용도 항상 내가 부담했다.


2년을 만나던 중 헤어지자고 말을 했다. 그때 우리는 걷고 있었고 육교 위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이 놈은 돌변하기 시작했다. 내 목을 조르며 육교 밑으로 나를 떨어트리려 하는 것이었다. 나는 뭐 이런 미친 사람이 다 있나 멀뚱멀뚱 쳐다봤고 그놈은 키득키득 웃더니

"내가 너 떨어트려서 죽일 줄 알았어?" 

이러는 것이었다. 정말 미친놈이 맞는구나. 헤어지자고 하길 잘했어.

그러더니 잘못했다고 갑자기 싹싹 비는 것이 아닌가. 

그 당시에는 데이트폭력이라는 단어가 없을 때라 이건 무슨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헤어지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만나고 있었다. 어차피 학교도 졸업했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이 사람은 취직준비 중이었다. 

몇 주가 지나고 나는 다시 헤어지자고 휴대폰으로 말했고 아르바이트를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이놈은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보자 대뜸 돌돌 만 신문으로 내 배를 쿡 찔렀다.

뭐지?

나는 당황해서 또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러자 그놈은 또 키득키득 웃으며

"왜? 내가 칼 가져와서 찔렀을까 봐? 마음은 진짜 그러고 싶었어."

이러면서 아쉽다는 듯 돌돌 말려있는 신문을 폈다.

진짜 돌아이다.

아무리 헤어지자고 해도 이 놈한테는 먹히질 않는구나.


나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휴대폰 번호를 바꿨다.

며칠 뒤에 이놈은 내 바뀐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나에게 연락해서 이렇게 잠수 타면 못 찾을 줄 알았냐고 끝까지 쫓아올 것이라며 아르바이트는 왜 그만뒀냐며 화를 냈다.

나는 대꾸도 없이 휴대전화를 끊고 다시 번호를 바꿨다. 그러고 나면 며칠 뒤에 또 연락이 와서 미친놈처럼 질척거렸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같은 학교 같은 과였고 내가 새로운 번호를 과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이놈이 알게 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으로부터 숨었다.

휴대폰을 없애버리고 집에만 틀어박혀있었다. 어차피 집에 유선전화도 없으니 휴대폰만 없으면 나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놈이 집에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놈은 데이트를 할 때도 한 번도 나를 집에 데려다준 적이 없으니까. 항상 지하철 반대방향에 사는 내가 이 놈을 데려다줬었다.


집에만 틀어박혀서 나는 하루종일 누워있거나 하루종일 텔레비전만봤다. 본걸 또 보고 또 봐서 대사들을 외워버릴 정도로 봤다. 이렇게 집에만 있는 나를 아빠는 항상 한심해하며 구박했다. 정작 부모가 필요한 어릴 때에는 집에도 잘 안 들어오더니 우리가 다 크고 나자 아빠는 꼬박꼬박 집에 들어왔다. 아마 같이 놀 친구들이 다 결혼하고 가정이 생기면서 같이 놀 수 없기 때문에 집에 잘 들어오는 거겠지.

어린 나이에 결혼한 아빠는 자식이 생겼어도 정신과 몸은 어렸다. 육아를 돌봐주고 자식을 돌보는 대신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며 도박을 즐겼다. 아픈 엄마가 오늘은 일찍 집에 오면서 약국에서 약을 사달라고 부탁해도 친구들이랑 화투를 치느라 외박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혼 후 어린 자녀들만 집에 있어도 아빠는 정신을 못 차렸다. 회사가 끝나면 혹은 회사일을 시작하기 전에 회사사람들과 볼링, 당구, 화투 등을 즐기며 우리는 뒷전이었다. 그런 친구들이 가정이 생겨서 같이 놀지 못하니 이제 집에 열심히 들어와서 집에 있는 우리를 구박하는 것이다. 

어린 나는 기억력이 좋았다. 그래서 엄마가 동네사람들, 친구들에게 아빠를 욕하던 일들을 기억하고 아빠가 회사사람들과 술 마시며 이야기했던 일들을 나는 다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아이들 앞에서 항상 말조심 행동조심 하라는 이유는 이것이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고 다 기억하고 있다.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휴대폰이 없어도 불편함은 없었다. 집에만 있고 어차피 친구도 없었다. 가끔 자장면이 먹고 싶으면 컴퓨터로 네이트온이라는 프로그램을 켜서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자장면 하나만 배달시켜 줘"

그러면 20분 정도 후에 집으로 자장면 하나가 배달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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