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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한 스컹크 Dec 22. 2023

품고 있는 날개

고양이

나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고양이'였다.


세상으로부터 숨은 나는 집에만 있었다.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고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가끔 동네 문화정보센터에 가서 공부를 한다며 앉아있거나 책을 읽거나 책을 빌려와서 집에서 읽곤 했다.


더운 여름날, 정보센터 안에서 책을 읽다가 바람도 쐬고 머리도 식힐 겸 잠깐 주위를 산책하고 있었다. 센터 뒤에는 작은 정자가 있었고 나무들이 많이 있어서 여름에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정자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원래 고양이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고양이는 나한테 와서 머리를 비빈다. 만져달라는 건가? 손을 가만히 머리에 얹어보니 고양이가 그르릉댄다. 기분이 좋은가보다. 귀엽게 생겼네. 내 주위에서 열심히 애교를 부리고 나주에는 벌러덩 눕는다.


그렇게 짧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고 고양이는 나무가 많은 곳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비슷한 시간에 다시 정자로 나와보았다. 고양이가 또 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서 아는 척해보니 고양이도 나를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다. 귀여운 것. 그렇게 몇 번 비슷한 시간에 만나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친구처럼 친해졌다.


하루는 고양이를 보러 정자에 가보니 어린 꼬마 아이들 세 명이 있었다. 고양이랑 놀고 있나? 가까이 가보니 이 놈들이 고양이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근데 저 고양이는 왜 도망가지 않고 저 돌을 다 맞고 있는 거야. 속상했다.

꼬마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고 이야기하자 그 아이들은 더러운 고양이에게 돌을 던지는 건데 왜 참견하냐고 나에게 화를 냈다. 고양이가 돌을 맞으면 아프지 않겠냐며 나도 아이들에게 화를 냈고 아이들은 어차피 주인 없는 고양이니 상관하지 말라고 했다. 

어린것들이 말을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내가 저 고양이 주인이라고. 그러니 내 고양이한테 돌 던지지 말라며 이성을 잃고 화를 내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내가 주인이라는 말에 더 이상 돌을 던지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나쁜 것들. 자기보다 약한 존재라고 함부로 하다니.


나는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고양이는 좋다고 드러누워서 그르릉댔다. 

너는 왜 돌을 맞고 있어. 얼른 피해야 될 거 아냐. 고양이에게도 화를 냈다. 

누워있는 고양이를 만져주다 보니 팔에 상처가 있었다. 야생 동물들 몸에 여름에 이렇게 상처가 있으면 파리가 상처에 들어가서 알을 낳을 텐데. 그러면 더 아파질 텐데. 나의 오지랖이 발동했다. 상처만 치료해 주자. 

그렇게 고양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고 오빠와 같이 인터넷으로 집 근처에 동물병원을 알아보고 병원에 데리고 갔다. 우리가 검색한 곳은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저렴한 가격으로 치료해 주는 마음씨 좋은 원장님이 있는 곳이었고 다행히 저렴한 가격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 그래.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만 데리고 있자. 그러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 주자. 그렇게 나는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


갑자기 고양이가 생기자 돈이 필요했다. 사료, 모레(고양이는 모레에 소변과 대변을 본다.), 고양이 화장실 등. 오빠와 나는 모아놓은 돈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양이는 부드럽고 귀여웠다.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은 내 마음을 보듬아 주었고 세상으로부터 차가워진 내 가슴을 다시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다시 사랑하는 감정과 마음을 알려주었고 소통하는 법을 배웠고 책임감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천천히 세상 밖으로 나왔다. 

고양이와 함께.

2023년 11월 2일 이 친구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2023년 12월 15일 이 친구와 제일 사이가 좋았던 다른 친구도 이 친구를 따라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비록 한쪽 다리는 아팠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마웠어.

하늘나라에서는 네 다리로 잘 달렸으면.. 꼭 네 다리가 아니더라도 둘이 다시 만나서 행복하고 아프지 말길.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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