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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한 스컹크 Nov 03. 2023

품고 있는 날개

부모님의 이혼

엄마와 아빠는 매일 싸웠다.

서로 때리기도 했고 전화기, 선풍기 등의 물건을 부수거나 장롱을 주먹으로 내리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집 장롱 한쪽은 아빠의 주먹 자국모양이 있었다.


하루는 우리가 문방구 뒤 쪽의 집에서 살 때의 일이다.

엄마와 아빠가 또 다퉜었나 보다.

새벽근무를 마치고 집에 온 아빠는 화장실에서 김치를 담그겠다며 배추를 자르고 있었고 엄마는 출근을 한다며 거실을 지나고 있었다. 엄마가 싱크대를 지나가자 아빠는 배추를 다듬던 주방용 칼을 싱크대로 그대로 던져버렸다.

마치 칼로 누군가를 겨냥해서 죽이려는 듯했다.

엄마가 조금만 늦게 지나갔거나, 엄마가 지나가다가 문득 두고 나온 게 생각나서 뒤를 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거나, 내가 출근하는 엄마를 한번 더 보겠다고 달려갔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칼이 날아가는 것을 본 사람은 나였고 칼이 싱크대에 부딪혀 큰 소리가 나자 뒤를 돌아보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한 것은 엄마였다. 아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배추를 씻으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일이 충격적이었는지 엄마는 미용실로 달려가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잘랐다.

평소에 나는 엄마의 긴 머리카락을 좋아했다. 엄마도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는 주로 미용실에 갔는데 빨간색 코팅이라고 불리던 머리, 보라색 머리, 가는 파마, 굵은 웨이브, 앞머리도 만들었다가 다시 길게 기르는 등 다양하고 예쁜 머리스타일을 많이 했었다. 나는 같이 기분전환이 돼서 엄마가 미용실에 다녀온 날이면 기분이 같이 좋았다.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아끼고 애지중지하던 머리카락을 숏커트로 다 잘라버렸다.

그 후로 엄마는 머리카락을 절대 기르지 않았다.

칼이 날아오던 날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엄마의 긴 머리카락의 뒷모습이었다.


엄마의 머리카락이 짧아지고 엄마는 이혼서류를 가지고 왔다.

제발 이혼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울고불고 매달리는 나에게 엄마는 나가서 아빠랑 이야기를 해 보고 이야기가 잘 되면 이혼하지 않을 것이고, 이야기가 잘 되지 않으면 이혼서류에 각자 도장을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빠랑 이야기를 해야겠다며 이혼서류를 식탁 위에 놓고 두 명은 밖으로 나갔다.


나는 침대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 제발 이혼만은 하지 않게 해 주세요.’


그 당시에는 이혼이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나는 부모님이 제발 이혼하지 않았으면 하고 밤마다 간절하게 기도했다.

학기 초마다 반이 바뀌면 담임선생님은 모두 책상에 엎드리게 하고 부모님이 이혼한 사람은 손을 들으라고 하고, 집이 전세인 사람, 월세 사는 사람 등 질문에 맞는 사람은 손을 들어야 했고 꼭 그때 몰래 고개를 들어 누가 손을 언제 들었는지 훔쳐보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누가 언제 손을 들었었는지 말하고 손을 든 사람을 놀리고 따돌리기도 했다.

그게 제발 내가 되지 않기를, 내가 그런 질문에 부끄럽게 손을 들게 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이미 월세살이에 손을 드는 것만으로도 창피함은 충분했다.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아서 하느님이 화가 나신 걸까? 나의 간절한 눈물의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으셨다.

같이 기도하자고 했을 때 심드렁했던 오빠가 원망스러웠다.

그날, 두 사람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엄마를 따라가겠다는 나를 엄마는 매몰차게 내쳤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본인 앞가름 하기도 힘들어서 나를 맡을 수 없다.

두 번째는 내가 아빠와 같이 살아야 고등학교라도 졸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엄마는 모든 짐들을 들고 사라져 버렸다.

마치 원래부터 집에 없었던 사람처럼.


그렇게 이혼한 후 엄마는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지하에 방을 얻었다.

이혼을 하고 집을 나간 엄마가 구한 집도 가난했다.

엄마는 돈이 없어서 동네 지하방에 월세로 들어갔고 그 지하방은 동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발소리, 술 먹고 지하 창문에 토하는 소리, 노상방뇨 하는 소리까지 모든 소리가 다 들리는 지하였다.


엄마는 나에게 열쇠 하나를 주며 언제든지 오고 싶으면 오라고 했고 나는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엄마의 지하 방에 들어가서 엄마의 냄새가 배어있는 베개와 이불을 덮고 한참을 울었다. 엄마는 낮이건, 밤이건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고 일만 하며 살아서 엄마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엄마의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엄마가 너무 그리울 때는 항상 힘내라고, 아프지 말라고, 내가 커서 꼭 좋은 집을 사주겠다는 편지를 써놓고 나왔다.


그 이후로 엄마는 여러 번 이사를 다녔지만 거의 지하방만 구할 수 있었고 방을 보여주는 복덕방 아저씨들은 엄마 혼자 산다고 하면 엄마를 쉽게 보며 치근덕댔다.

혼자가 된 엄마도 모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들바들 떨며 악착같이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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