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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한 스컹크 Nov 27. 2023

품고 있는 날개

이혼

아빠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회사 기숙사에서 잠을 자며 일을 했고 집에는 며칠에 한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왔다.

다행히 먹을거리는 집 앞 구멍가게에서 ‘외상’이라는 제도를 마련해 주고 집을 비웠다. 


우리 남매가 구멍가게에 가서 외상을 하겠다고 하면 주인 분들은 우리가 살 것을 고른 가격을 장부에 적었고 우리는 물건을 돈을 내지 않고 집에 가져와서 먹었다. 그러면 한 달에 한 번, 아빠는 월급날 구멍가게에 가서 외상값을 값곤 했다. 구멍가게에 가는 날은 부끄러워서 오빠와 서로 말하라며 떠넘기다가 결국에는 조금 더 용감한 내가 말을 했다. 외상 하겠다는 말을 하기 전에 구멍가게에 혹시 반친구들은 없는지 조심스럽게 둘러보고 용기를 내서 주인분께 작은 목소리로 외상 하겠다고 말했다.


구멍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은 주로 빵, 과자, 아이스크림 등의 군것질 거리와 우유 등의 음료수, 통조림 식품들이 있었다. 가스레인지를 극도로 무서워했던 오빠와 나는 요리를 할 수 없기에 주로 가게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 와서 식사대신 먹었다. 가끔 아빠가 집에 와서 밥을 해주고 간 날은 통조림 햄이나 참치를 사다가 그냥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다. 프라이팬에 스팸을 굽지 않고 밥과 먹어도 그땐 맛있었다.


그렇게 간식을 잔뜩 외상 해서 온 날이면 우리는 밤새 먹으며 각자 놀았다. 밤을 새우며 놀아도 뭐라고 할 어른이 우리에겐 없었으니까. 밤을 새워서 놀고 다음날 학교에 가면 꾸벅꾸벅 졸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 낮잠을 자고 밤에 일어나서 다시 놀았다. 그렇게 우리는 부엉이가 되어갔다. 신기한 것은 그래도 우리 남매는 학교에는 열심히 다녔다는 것이다.

방학에는 더 심했다. 놀고 싶을 때 놀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가끔 집에 오는 아빠도 집에 올 때는 항상 술에 취해있어서 우리에게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고 혼낸 적이 없다.

 

엄마가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잔인했는데 

그 첫 번째로 오빠와 나는 우울증에 걸렸다. 그 당시에는 이게 우울증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우린 어렸고 세상도 우울증이라는 병이 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혼이라는 것도 드문 시대였다.

우울증으로 나는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허기가 져서 눈에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다 먹었다. 그렇게 목구멍까지 음식이 차면 속이 안 좋아서 다 토했다. 다 토해내니 또 속이 허했다. 그렇게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고 나니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전에 입었던 교복이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다. 슬프게도 키는 그대로이고 몸에 살만 쪄서 교복은 잠기지 않았고 비싼 교복을 다시 사야 하는 상황에 아빠는 화가 나서 나에게 욕을 했다.


우울증으로 오빠는 세상과의 소통을 끊었다. 

게임에 중독이 돼서 집에 있는 날이면 온라인으로 컴퓨터 게임만 했는데 그때는 인터넷을 쓰려면 전화선을 컴퓨터에 연결해서 쓰던 때라 인터넷을 쓰면 전화를 쓸 수 없었다.

가끔 아빠가 일 하는 중간 쉬는 시간에 공중전화에 가서 집에 전화를 하면 계속 통화 중이었다. 오빠가 인터넷 게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아빠가 오는 날은 우리가 항상 혼나는 날이었다. 오빠는 인터넷을 많이 써서 전화연결이 안 되는 것과 어마어마하게 많이 청구된 인터넷 비용에 혼났고, 나는 여자애가 돼서 집도 안 치우고 뭐 하는 것이냐며 혼났다. 맞벌이 때부터 나는 집에서 청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치우라는 것인가. 나는 어떻게 집을 치우는지 몰라서 못 한 건데 아빠는 여자면 집안일을 알아서 하는 거라고 혼냈다. 

그리고 구멍가게에서 뭘 그렇게 많이 가져다 먹는 것이냐며 그만 먹으라고, 여자가 작고 뚱뚱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며 혼났다. 말끝마다 항상 ‘못생겨서는..’하며 혀를 찼다.


두 번째 힘든 일은 손톱을 깎아 줄 사람이 없었다.

어릴 때 손톱을 엄마와 깎다가 잘린 날카로운 파편이 오빠 눈에 튀는 일이 있었다. 

그 이후로 오빠는 손톱 깎는 일을 무서워했다. 

엄마가 어쩌다 손톱을 깎으려고 하면 오빠는 도망 다녔고 결국은 몇 대 맞고 끌려왔다. 

이불로 몸을 돌돌 감싸고 손만 빼꼼 내밀어서 손톱을 겨우 깎었었다.

엄마가 없고 아빠는 집에 자주 없으니 오빠의 손톱은 웬만한 멋 부리는 여자들보다 길었고 손톱 밑에는 항상 시커멓게 때가 껴있었다.

나는 혼자서 손톱을 깎을 만큼 손에 힘이 없었다. 

손톱을 깎지 않는다며 학교에서는 항상 혼났고 혼자 손톱을 깎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손톱깎기를 바닥에 놓고 손톱을 넣어서 자르려는 만큼 세팅을 한 후 손톱을 자르지 않는 반대쪽 손으로 있는 힘껏 손톱깎기를 눌렀다. 그렇게 굵직한 엄지부터 중지 손톱까지 자르고 나머지 손톱은 턱의 힘을 이용했다. 바닥에 놓았던 손톱깎기를 평범하게 손톱을 깎는 것처럼 잡고 힘을 줘서 잘라야 할 때에는 힘을 주며 턱 밑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나는 턱으로 손가락을 밀며 손톱깎이를 잡고 있는 손에 턱으로 힘을 실어준다. 그러면 약지와 새끼손톱을 자를 수 있었다. 

이렇게 손톱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잘랐다.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는 손에 힘도 많이 세져서 충분히 자를 수 있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네일아트에 빠져있는 반 친구 덕분에 항상 정돈된 손톱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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