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의 결심 1

by 이씨 이혼하다


오늘은 여러모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하루를 같이 보낸 사람 때문일까.

어제 읽은 책 때문일까.

아마 둘 다 일거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인정을 받는 데 집착한다.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얼마나 지혜 있게 잘 처신했는지, 가족을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 항상 강조한다. 이런 이야기를 평생 들어온 딸은 엄마는 똑똑한 사람인데 우리 가족을 위해서 고생만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레 엄마의 희생에 대한 부채감을 떠안는다.
- <나는 왜 엄마가 힘들까 (리커버 에디션)>- 서머


이혼 전에 "나는 왜 엄마가 힘들까"라는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엄마가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으나 원망했고

이혼 후에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엄마를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하며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엄마는 항상 헌신적이고 희생적이다.

여전히 우리 아들의 주 양육자이며

내 동생과 아빠의 꾸준한 사업파트너이다.

그녀가 없으면 이 집안은 존재할 수 없다고 느낄 만큼.


그래서일까 나는 마음 언저리에 항상 엄마에 대한 부채감, 미안함, 죄의식, 안쓰러움 등등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마음을 가득 안고 항상 일 년에 한두 번은 좋은 음식, 좋은 곳이면 어디든 얼마든 엄마를 데리고 향했다.

나의 전남편에게는 엄마가 애기 봐주는데 돈 안 받잖아.

고맙잖아. 미안하잖아 라는 이유로.

그 또한 선뜻 "그래. 다녀와"라고 대답했다.

(물론 부부싸움을 할 때면 엄마랑 가는 그 여행이 너무 싫었다고 매번 말하긴 했지만..)


미안하단 마음을 가지고 간 엄마랑의 여행은 싸움과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거 그 모든 걸 통제하고 싶지만

본인도 낯선 환경에서

도대체 뭘 원하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는

내 선택이 맘에 안 들 때면 불평불만이 가득했다.

마음속으로 '그럼 원하는 걸 말하지. 나중에 말하지 말고.'를 되뇌며 다신 같이 오지 말아야지'

다짐하고도 또 부채감에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고는 했다.


그런 내가 이혼을 하고 결심한 한 가지는

엄마에 대한 부채감을 떨치기로 한 것이다.


이혼 후 정말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 적이 딱 3번 있었다.


1. A와 영종도까지 가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 날

2. 친구들과 골프를 친 날

3. A와 계곡 앞에서 낮부터 맥주를 마신 날. 오늘.


첫날은 부채감이 가시지를 않았다.

애기를 유치원에 보내고 회사도 안 가고 이 휴가를 누군가랑 나를 위해 온전히 보냈다고? 정말 나 너무 별로인 엄마이자 딸인가.


두 번째는 살짝 부채감이 느껴졌다.

나만 이런 자유를 느껴도 되나?

가기 싫었다. 그런데 약속했는걸?

와!! 다녀오니 너무 좋은 하루인데????? 또 놀고 싶다..

다음날 키즈카페에서 몸을 불사 지르며 6시간을 놀아줬다.


세 번째, 이제 떨치기로 했다 그 부채감을.

내일부터 나는 3박 4일의 아이를 위한 어린이날 대장정을 계획해 둔 멋진 엄마로서 그 전날 하루 정도의 자유를 즐길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오늘에서야 나는 내가 살아내기 위해서는

내 아이와 엄마에 대한 죄책감 따위 없이

나에게도 나를 위한 날이 필요하다고.


한 10년만 이었을까

꽃가루가 잔뜩 날리는 계절에

계곡 옆 의자에 앉아 올드팝이 흐르는 카페에

한가로이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좋은 사람과 맥주 한 모금 기울이며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진게.


우리 둘 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나를 위한 그런 날을 가끔은 보내야겠다고.


계산을 하고 나올 때 사장님은 우리에게

Have a nice day. Good day 라며 밝게 인사해주셨다.

정말 나이스하고 굿 데이였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들만이 날 가득채워준다는 느낌


내가 이런 다짐을 했던 오늘은 같이 시간을 보낸 A 또한 엄마로 인해 힘들어 보였다.

힘들다 말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슬퍼 보였다.

구체적인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한숨이 가득했다.


엄마란 존재에 대한 부채감, 책임감 그것들이 우리들을 억누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참 어렵다 이혼도, 엄마도,

그럼에도 결심한다.

애한테 미안함을 가진채 이혼도 했는데?

엄마에 대한 미안함쯤 잠시 접어두고

지금 제일 힘든 나에게 집중하자고.

그래야 나도 살아낼 거고 아들도 키워낼 테니까.


사랑해 아들.

그리고 고마워 엄마.


- 아들이 찍은 우리의 사진-

맘에든다. 우리가 닮은 눈썹만 나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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