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부터 야경까지 하나도 놓칠 수없는 타이베이
대만의 로맨스 영화를 보면, 청소년일 때 만났던 남녀 주인공은 대학을 입학하는 기점으로 잠시 헤어지고,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다. 대개는 배경이 수도인 타이베이가 아닌 지방이기 때문에 타이베이는 둘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 거나 혹은 다시 만나게 되는 이별과 재회의 장소로 묘사되곤 한다. 그래서 우리도 오랜 친구와의 재회를 위해 부지런히 아침에 타이베이로 향했다.
타이중으로 오는 길은 고층 건물들이 논밭으로 변하고 있었다면, 타이베이로 돌아가는 길은 다시 논밭이 고층 건물들로 변하며, 도시 속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2시간을 달리고 달려 도착한 타이베이는 후텁지근한 온도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얼마 차이는 안 나지만, 분명 타이중이 타이베이보다 조금이라도 더 적도에 가깝지만 타이베이는 도시가 내뿜는 열 때문에 같은 온도라도 더 덥게 느껴진 것 같다.
타이베이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호텔에 짐을 맡겨 두고 곧장 점심을 먹으러 타이베이 수산시장 (Taipei Fish Market)으로 향했다. 이곳은 대한민국의 여느 수산시장처럼 직접 해산물을 골라 그곳에서 먹을뿐더러, 1층에는 마트가 있어 해산물이 아닌 다른 먹거리도 구매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한참을 둘러본 후 사시미를 비롯해 킹크랩, 전복, 타이거 새우 등을 고르고 나니, 음식들이 하나둘씩 자기의 성격에 맞게 조리되어 나왔다. 사시미는 기대했던 만큼 맛있었지만 전복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한국에서 익히 보던 전복보다 훨씬 커서 좀 더 맛있을까 기대했지만, 식감이나 맛이니 한국의 것에 미치지 못했다.
해산물을 고를 때, 정확한 가격을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저렴하겠거니 하고 이것저것을 주문하고, 막상 영수증을 받아보니 영수증에는 40만 원 정도가 찍혀 있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카드를 받지 않는 곳이어서 비용 전액을 현금으로 지불해야만 했었다. 각자의 지갑에 있는 현금을 모두 모아보니 대략 30만 원 정도가 나왔는데, 여전히 10만 원이 부족했다.
다행히 수산시장 1층에는 ATM기계가 있었는데, 돈을 뽑으러 내려갔던 친구들이 15분이 지나 당황한 얼굴로 올라왔다. 1분이면 출금할 수 있는 돈이었지만 가지고 있는 모든 카드에서 현금 출금이 안되어서 가지고 있던 카드를 모두 집어넣어보았던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모든 카드가 해외 출금 서비스를 차단되어 있던 것이다.
겨우 점심 비용을 지불하고 시원한 실내에서 쇼핑을 하기 위해 타이베이 101으로 향했다. 타이베이 101 주변에는 다양한 쇼핑몰들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거리에서도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과 구경꾼들로 곳곳에 활기가 넘쳤고, 케이팝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댄스 그룹도 종종 보였다. 무엇보다도 거리 위의 사람들 중 일부는 마스크를 쓰고는 있었지만 모두가 더 이상 코로나에 대해서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한 자유로운 모습이 가장 보기 좋았다.
타이베이 101을 배회하다가 해가 지기 전, 샹산 (Xiang Shan)을 올라 야경을 보기로 했다. 샹산은 코끼리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코끼리 상짜를 사용한 산으로 타이베이의 유명한 야경 명소이다. 하지만 야경 명소이지만 그 풍경을 보기 위해 걸어 올라가야 하는 시간은 쉽지 않았다. 몇 번이나 올랐던 길이지만 여전히 가파른 경사와 습한 날씨는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게 만들었다.
보통은 이곳은 대부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매년 12월 31일 밤에는 타이베이 101의 불꽃 축제를 보기 위해 수많은 현지인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비록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지는 못했지만 힘들게 올라와 바라보는 타이베이의 야경은 분명 힘들게 올라온 시간을 보람 있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토요일의 경우 타이베이 101의 조명의 색깔이 파란색인데, 이는 요일마다 다른 색의 조명을 비추기 때문에 여행자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전망이 좋은 곳들은 이미 많은 관광객들과 사진작가들이 선점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먼발치에서 땀을 식히며 야경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야경으로만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웠던 타이베이의 밤은 조그마한 이자카야인 Wu Left Hand Yakitori Izakaya에서 지속됐다. 일본의 문화와 음식을 좋아하는 대만이기에 타이베이의 곳곳에는 대만음식만큼이나 일식당도 많았다. 우리가 방문했던 이자카야도 꽤나 유명한 곳이었고, 이자카야 특유의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에 저녁을 먹기 위해 굳이 대만 음식이 아닌 이자카야에서 저녁을 먹기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웃고 떠들다가도 주문했던 수많은 음식들이 하나둘씩 나오면, 모두가 핸드폰을 집어 사진 찍기가 바빴고, 사진을 찍고 나면 어떤 음식이 나온 지도 모르게 접시는 순식간에 비워졌다. 그렇게 음식들과 다양한 이야기보따리들이 함께하는 이자카야에서 우리의 밤도 조금씩 무르익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