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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9. 2022

말 길 트기---말을 막은 게 잘한 일인가?

말 길 트기---말을 막은 게 잘한 일인가?

  1998년 

 

미국식 자유로운 토론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토론이 자칫 상하 간에 마음 상할 일만 남길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갖는다. 토론은 높은 사람에게 말대꾸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직속상관이 있

는 자리에서는 아래 사람은 입도 뻥끗하지 않는 관료주의적 회사에서, 하급자의 말하는 태도, 어

투, 어휘들이 자칫 상사가 싫어하는 것이 나와 ‘뒤끝 작렬’하면 어쩌나… 상사가 하급자에게 너무 

위압적이어서 끽소리도 못 내면 그 부하 마음은 또 얼마나 다칠까? 반대로 박박 우기고 달려들면

그 분위기는 또 어떻게 수습해? 나는 옹졸한 새가슴으로 살았다.

 

  김한중 전력연구원장은 미국에서도 존경받는 석학이셨는데, 이종훈 한전 사장께서 정성스레 한전 연구원에 모셔온 분으로, 그야말로 세상을 이롭게 할 연구개발을 의뢰하면서, 특별히 원장에게 인사권 등 상당한 권한도 부여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에 '전력계의 새 지평을 여는 세계 최고의 연구원'을 지향하며, 원내에 입간판을 세워 높은 꿈을 펼치고 있었으나, 얼마 뒤 갑작스러운 사장 교체에 이어 원장 교체로 그 꿈은 접고 말았다. 

이 사장님과 김 원장님의 꿈도 사장 경질에 따라 어느 날 속절없이 물거품처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허무를 남기고 잦아들었고, 그 당시 김원장께서 어렵게 모셔와 몇 개 부분 소장으로 온 죄 없는 젊은 박사들을 실업자 신세로 미국에 되돌아가게 했던 어처구니없는 일을 목도했다. 

회사가 비전을 크게 가지는 것도 좋지만, 세계최고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투자와 인재와 집중이 필요한데, 경영자율권 없이, 정부의 통제를 받는 한국전력 속성 상, 회사가 힘들면 연구비부터 삭감하는 것이 공기업 습성인데, 안 그래도 세계 최고의 꿈은 어려운 일인데 사장 경질이니…. 


 원장께서는 매월 첫 날 조회 때 연구원들을 강당에 불러 토론을 하셨다. 그게 미국식 경영기법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부임하여 처음 참석했을 때도 아직은 전력연구원의 Big Picture를 그리던 때라, 원장님 생각을 전체 연구원들에게 직접 설득하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국전력 부속 연구실은 전통적으로 ‘기술연구와 현장 기술지원'이라는 두 화두를 예나 지금이나 가지고 있어서, 순수 연구냐, 현장 기술지원을 겸하느냐가 논쟁거리였다. 

그 날 토론에서 문제가 생겼다. 하필 내 관할의 과장이 기술지원 기능을 약화시키려는 의지에 대해 정당한 반대의견을 말씀드리려고 한 것인데, 이 대목에서 음식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분위기가 좀 좋지 않게 흐르고 있었다. 나, 바로 내 일이기도 한 그 일을 내 직속부하가 그렇게 했으니, 나의 책임으로 받아들여, 나는 잠시 주저 끝에 발언권을 얻었다.

“제가 OO그룹장으로 부임한지 며칠 안 됐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따로 대책을 만들어 원장님께 조속히 보고를 드리겠으니, 이 자리에서 토론은 이 정도로 하시면 어떻겠는지요?” 

내 발언은 물론 상하 간의 껄끄러운 분위기를 피하려는 ‘보수적인 한전 맨이 써먹는 알량한 전통 수법’이었는데, 전직원을 상대로 한 원장과의 토론이라는 형식이 내게는 처음이었고, 다툼을 싫어하는 천성 때문에, 나에게는 과장이 원장에게 ‘대드는’ 불경스러운 일이 아닌지 지레 겁을 먹고, 그만 자유로운 의견표출을 방해한(?) 결과가 되었다. 

내가 잘못한 것인지,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토론자들이 서로 상처를 입는 것을 막은 것이 잘한 일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 며칠 후 나는 브리핑 자료를 준비해서, 원장님과 모든 소장들을 모신 회의실에서 “발전소 기술지원은 왜 필요한가?”를 설명하였는데, 진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분들도 “대체 저들이 왜 저렇게 반발하는 거지?”, “각자 전문분야에서 세계최고의 순수 신기술을 연구하려고 한국에 왔는데, 기술지원이 무엇인데 저러지?”와 같은 의문을 가졌기 때문 아니었을까? 

아무튼 그 보고회는 미국에서 오신 고위 책임자들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 같다. 그 발표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후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점심 식사자리에서 들려주시던 유머 한 자락은 원장님의 격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감짝 놀랬던 자리였다. 

바닷가 아낙네가 조개를 캐다가 쉬가 마려워 바닷가 한 쪽에 가서 쉬를 하는데 그만 게에게 소중한 곳을 찝히는데, 너무 아파서 눈이 어두운 시아버님께 그걸 보여드려야 했던 이야기를 매우 품위있게 들려주셨다. 원장님도 무슨 구름 속에 사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목적한 바 제대로 이루기도 전에, 졸지에 이임하시는 원장님을 위한 송별회 자리에서 약주 한 잔 올리던 내게 원장님은, 여러 사람 듣는 데서 이런 얘기를 해 주셨다. 


“김 그룹장은 처음에 연구원에 올 때는 아주 작게 보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크게 보이더니, 지금은 이만~하게 보여요”


원장님은 팔을 벌려 제스쳐 해 주셨다. 내가 연구원에 처음 부임하던 날 애써 외면하려 하시던 분이었다. 사실 인사권을 가진 원장에게, ‘본사가 밀어 넣은’ 나의 공업전문학교 기계과-방송대학교 영문학과 스펙으로는 순수 기술연구를 추구하던 원장님에게 가당키나 한가! 전혀 합당치 않은 발령이었다는 걸 알기에 나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 섭섭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원장님도 기업부설 연구소에서는 현장기술지원이 신기술 개발 못지않게 소중한 업무라는 것, 그리고 ‘발전설비지원그룹장’이라는 직책을 이해하셨던 것 같고, 무엇보다도 미국식 사고방식도 좋지만, 한국식 사고방식에도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신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직원들의 말문을 막아서도 안 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에서, 공개석상에서의 날카로운 말싸움보다, 좀 더 유연하고 진중한 방법으로 이룰 수도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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