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9. 2022

지역협력---"꿈에 본 여인․․․아랑을 찾습니다”

지역협력---"꿈에 본 여인․․․아랑을 찾습니다”

2002. 8월 5일

 

보령화력 사내 동아리인 ‘글벗모임’과 ‘사진동우회’를 맡아서 보령시의 문화예술인회와 긴밀한 유

대를 이루면서, 각종 전시회 등 문화행사에 함께 참여한 것은, 기왕지사 이 땅에서 직장을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면서, 진실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지역 협력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김영문 소장께서 이름 공모까지 해서 개최했던 ‘보화한마당’ 문화행사 때는 보령지역 문화예술인

들도 기꺼이 출품하고 우리 발전소와 함께 해 주었고, Vice Versa(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위 제목은 며칠 전 ‘뮤지컬 몽유도원도’의 주인공을 공모하는 오디션을 한다는 신문광고다. 

『몽유도원도』란 소설가 최인호씨가 도미부인(아랑)의 이야기를 정리한 소설책 이름인데, 이것이 뮤지컬의 주제가 된 것이다. 

도미부인 아랑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고, 그 내용은 약간씩 다르게 소설로도 쓰이고, 내용이 조금씩 다른 몇 가지로 구전되기도 하는데, 이 뮤지컬이 부디 오늘날 메말라가는 세상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교훈을 줄 훌륭한 작품으로 성공하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이다.

 약 5년 전에, 뮤지컬 ‘명성황후’가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히트칠 때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윤호진 감독이 한 말이 생각난다.

“명성황후는 오픈게임이다. 몇 년 후 메인 게임을 만들겠다. 그것은 도미부인 이야기다”라고 말했는데, 이제 그 약속대로 도미부인 뮤지컬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 윤감독은 또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연습게임이다. 다음에는 본게임인 도미부인 이야기를 가져오겠다. 그 클라이맥스는 '내 얼굴이 예뻐서 남편을 봉사로 만들다니!'하고 한탄하면서, 아랑이 억센 억새를 꺾어 자기 얼굴을 마구 그어 피를 내어 추녀로 만드는 장면이 될 것이다”. 

도미부인이 누구이길래 윤감독이 ‘메인 게임’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나는 보령화력발전소에 근무할 때 충남 보령시에서 14년간 살았던 연고로 보령의 역사와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보령역사를 소개하는 어떤 책에서 짤막한 도미부인 이야기를 읽고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해 봤었다. 

그 당시 우리 회사에서는 해마다 ‘보화 한마당’이라는 사원 문화행사를 열었다. 나는 보령문화예술인 회원으로도 활동했으므로, 보령 문화예술인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하는 등, 지역협력에 한 발 깊이 담그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도미부인 이야기를 연극으로 상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던 것을 얘기한 적도 있었는데, 마침 그 무렵에 윤감독의 도미부인 뮤지컬 신문기사를 보게 되어 눈이 번쩍 뜨인 적이 있다. 그러더니 드디어 보령사람들이 도미부인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반가워했던 일도 있고, 또 TV에서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을 정신을 모아 시청한 적도 있다.

지금도 나는 소설 『몽유도원도』를 몇 권 사다가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주곤 한다.


  삼국시대 백제 땅에 ‘도미’의 부인 ‘아랑’이 경성지색(傾城之色)으로 아름다워 호색(好色)임금인 ‘여경’이 탐을 냈는데, 뜻대로 할 수 없자 그 남편인 도미의 두 눈을 뽑아 장님으로 만들어 강에 버렸다. 시종으로 하여금 여경의 탐욕을 대신 채우게 하는 등 그의 마수를 피하던 아랑은 기어이 장님 남편을 찾아내어 함께 고구려로 들어가 살았다.

“얼굴이 예뻐서 남편을 장님으로 만들었으니 이 잘난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겠으랴...” 

아랑은 갈대를 꺾어 스스로 얼굴에 마구 흠집을 내어 추녀로 만든다.

이러한 아랑의 정절에 감복하여 하늘이 그들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주게 되고 부부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된다. 


이런 줄거리의 도미부인 이야기는 실제로 삼국사기에 적혀있다. 

보령화력발전소가 소재한 보령시 오천면과 옆 동네인 청소면과의 경계지역에 ‘도미항’이라는 작은 포구가 있는데 그들이 이 부근에서 살았다고 지역민들은 믿고 있다.

지금도 보령시 오천면에서는 해마다 도미부인을 위한 제사를 올리고 있고, 발전소 본부장은 회사를 대표해서 행사에 참가함으로써, 발전소 사람들의 관심을 보여주어, 서로 유대를 돈독하게 가꾸고 있다. 사당이 있는 뒷산 꼭대기에서 아랑이 도미를 찾아 울부짖었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와 산은 ‘상사봉’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고, 이를 기려 몇 년 전 이 봉우리에 팔각정을 건립하였다.

 보령사람들은 이 절절한 이야기에 엄청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춘향전보다 더 훌륭한 이야기”라고 힘주어 말한다. 한 여인이 절대권력 앞에서도 꿋꿋하게 정절을 지키는 고난의 과정, 온갖 위협 앞에서도 부인의 정절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남편과, 아름다운 얼굴을 스스로 추녀로 만드는 그 마음이야 말로 정말로 순 한국적인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 너무도 가벼워진 부부의 연(緣)에 대해서 외국인은 물론이지만 내국인에게도 많은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다.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마치 죽은 거나 진배없는 장님을 왜 따라가?”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이 뮤지컬은, 마치 얼마 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탄 ‘취화선’ 영화처럼, 진정 ‘한국적인 것이 세계에 통한다는 사실’과, 그렇지만 ‘세계에 통하는 것은 순 한국적인 것이면 무엇이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움직일 만한 도덕과 철학이 담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 한국에는 그런 것들이 아주 많이 있다고 확신한다.


“우우우우우 아랑아아아~”

어디선가 맑은 노래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뮤지컬 ‘몽유도원도’ 관람

2002. 11. 26 

 지난 11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고 있는 ‘몽유도원도’ 뮤지컬을 관람했다.

내가 신문광고를 보고 “꼭 구경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것은 원작자가 유명한 최인호 작가이고, 연출 역시 유명한 윤호진 감독이 맡았다는 점도 있지만, 그 보다는 뮤지컬의 내용이 보령시 오천면에 전해져 내려오는 실화(實話. 설화說話라고도 하지만)이기 때문으로, 보령에서 14년을 산 나는 도미와 그 부인인 아랑이 믿음과 사랑으로 춘향전보다도 더 훌륭한 생을 산 것에 엄청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고, 나의 제2 고향인 보령에 관련된 이야기이기에 진작부터 여러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동안 ‘몽유도원도’라는 이름으로 세 번이나 발간된 최인호의 소설책을 사서 아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하는 극성도 부렸던 터이고, 보령 문화예술인들에게 도미부인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는데, 그 몇 년 후에 이렇게 뮤지컬이라는 대작을 보게 되다니 정말 반가운 일이었다.

 약속대로 그는 그것을 뮤지컬로 만들었다.

중요한 줄거리는, 도미는 자기 부인을 탐하는 악독한 왕에게 두 눈알을 뽑히면서도 부인의 정절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인 아랑도 왕의 위협과 부귀를 미끼로 한 유혹과 집요한 구애에도 굽히지 않고 일부종사의 험로를 택한다.  특히, 왕의 악행으로 앞을 못 보게 된 남편에게는 이제 더 이상 예쁜 얼굴을 가진 아내가 필요 없다고, 스스로 자해(自害)하여 추악한 얼굴을 만드는 그 마음가짐을 보고, 우리는 마치 아랑이라는 인물이 성인(聖人)과도 같다는 성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게 되고, 인생살이에서 종교의 힘 못지않는 큰 가르침을 받게 된다.

 오늘날 아무리 타락한 사회상이 벌어지고 있다 하여도 만인이 다 그러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절대다수가 아랑과 같은 마음가짐에 경외심을 가지는 것에서 이 도미부인 설화의 중요성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뮤지컬에서는,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이러한 줄거리에 큰 변화가 있어서 무척 많이 놀랐다. 한마디로 이 뮤지컬에서 주인공은 아랑이 아닌 개로왕이었다는 점이 의외였다.

 개로왕이 꿈에, 자신이 상처를 입고 사경을 헤맬 때, 한 아리따운 여인이 나타나 목숨을 구해 받고 그 미녀와 사랑을 하는데, 꿈에서 깨어나자 그 여인의 몽타쥬를 그려서 전국을 뒤져 찾아낸 것이 도미의 부인인 아랑이다.

 절세미녀 아랑의 미모를 보고 반한 왕은 어엿한 유부녀인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이성을 잃은 나머지 그 남편과 바둑내기도 하면서 그를 봉사로 만들고, 정사를 잘 돌보지 않다가 결국 전쟁에서 참패를 당하고 끝내 자신도 자살하고 만다.

 경국지색(傾國之色). 아랑은 그리 표현되었다.

끝까지, 나라가 망할 때까지, 사랑에 빠져 한 여인을 사모한 왕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변질되고, 그가 자결할 때는 관중들이 박수를 치기도 했다. 마치 연민의 정에서 비롯된 듯한 박수를.

(옛날에 악한(惡漢)이 죽으면 안도의 박수를 치던 순진한 관객들의 마음과는 분명 다른 의미의 박수라 생각된다).

뮤지컬이 끝나고 배우들이 관객에게 인사할 때도 왕이 맨 나중에 등장하여 그가 분명한 히어로임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 뮤지컬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사랑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에서 변질된 것을 오늘의 세태를 반영한 끝에 젊은이들의 취향을 좇느라 이렇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윤호진이 말했던 ‘억새를 꺾어 얼굴에 상처를 내는 장면’은 분명코 클라이맥스가 아니었고, 심지어 그 장면에서는 감동도 별로 우러나지 않을 정도로 별로 강조되지 않았고, 얼굴을 긁은 아랑의 얼굴은 하얗게 분장한 그대로 피도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도무지 ‘자해행위를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외국인, 정확히 말해 서양인들의 취향을 너무 고려한 각본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외국인을 위한 영어자막이 따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분명 그런 의도일 것이다).

왕과 어릴 때부터 친구처럼 자라온 충성스러운 신하 하나가 기어이 절세미인 아랑을 찾아내어 왕에게 성상납을 도모하는데, 후에 아랑이 남편에 대한 사랑을 단념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절절하

게 애통해 하다가 급기야는 남편을 찾아 쪽배를 타고 떠나는 것을 보고도, 그녀를 체포하기를 포기하는 감동받는 장면이 연출되어 그것까지는 정말 잘 나갔는데, 차라리 그런 장면을 보이지 말던가, 그렇게 정절(貞節)과 사랑의 힘을 극명하게 보여주다가 이 무슨 삼X포란 말인가!

 그것이 인간의 법도에 어긋나건 말건, 나라를 망쳐가면서까지 한 여인을 사랑하는 한 남자의 용기(?)를 높이 사는 우스꽝스러운 상업용 뮤지컬로 변하다니!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이 뮤지컬에 시니컬한 감정만 생겨 매우 언짢은 기분이다.


*2013년 10.18 이어지는 이야기

그러니까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지금 도미부인 얘기는 이어진다.

그 사이 감독 윤호진은 뮤지컬 도미부인을 만들었지만 즉시 흥행에 실패했다. 명성황후의 장시간 흥행성공을 생각하면 대단히 의아스럽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나로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나, 윤감독이 명성황후에 비하여 이 작품을 어떻게 연출하였는가 하는 점도 중요하겠고, 또 그 동안 성인남녀들의 정절에 관한 의식이 많이 바뀐 것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도 해 본다.

 성(性)에 대한 신성한 생각, 부부의 연에 대한 책임감…. 그런 것들이 저속하게 무너진 이 시대가 그렇게 작용했던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젠 자식가진 부모도 별 거부감 없이 말하는 ‘여자 친구’, ‘남자 친구’라는 말, 공영방송에서의 공공연한 스킨십, ‘캠퍼스 커플’이니, 천지에 널려있는 러브 호텔, 세계 상위권 이혼율, 무분별한 남녀 평등… 이런 지적을 할 때 ‘진부한 냄새가 나는 꼰대의 얘기’로 들린다면, 뮤지컬 도미부인은 성공하기 어려운 태생적 약점을 가진 것이리라.

 생각난다. 20년 전 보령화력 3,4,5,6호기 건설 때, 호주에서 온 어느 기술자문(Supervisor)의 딸이 결혼한다고 해서, 내가 한국의 목각 원앙 한 쌍을 선물하면서, 

“이 새는 금슬이 아주 좋아서, 어느 쪽이 먼저 가더라도 정절을 지킨다”고 설명했는데, 그 말을 함께 듣고 있던 서양인들이 내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반응을 보여, 내가 당황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 20년 동안에 우리도 그렇게 서양식으로 바뀐 것 같다.

 가장 한국적인 것들이 세계에 통한다고? 맞기는 맞는 말이지만, 도덕과 철학만으로는 흥행성공에 이어지기 어려운 점도 있어, 부인의 정절에 관한 도미부인 얘기는 단지 우리의 소중한 가치라고만 생각하고 말아야지!

그렇다면 이제는 정녕 아랑과 같은 여인을 찾기 어렵다는 말인가?


“진정한 아랑은 진정 ‘꿈에 본 여인’일 뿐인가?”  

작가의 이전글 말 길 트기---말을 막은 게 잘한 일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