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발전소에서 무엇이 제일 중헌디?”라고 물으면 무조건 기술이고, 기술이 중요한 건 알지만 그
기술만 가지고는 못 산다. 사람이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가져야 하고, 직장이 아무리 시골 한
구석 발전소에 있다지만, 직원들이 남부럽지 않은 문화적 혜택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
은가! “가정집에 그림 한 점 건 것과 두 점 건 것이 아이들의 정서에 끼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옛말도 있지 않던가?
‘문화의 오솔길’ 조성
1985년. 보령화력 효율과장 시절. 발전소 교대근무자를 포함해서 전체 직원들에게, “우리의 직장이 있는 이 땅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아는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발전부 사무실 옆 복도에 소박하나마 작은 ‘문화의 오솔길’을 만들었다. 이 지방의 역사-문화-산업 등 사진이나 서각 그리고 실물 등을 수집하여 전시한 공간이었다.
여수화력 발전부장 때도 ‘한려문화오솔길’을 만들어 여러 자료를 전시했다. 여수화력에는 오래 전에 현장에서 쓰던 ‘Master Clock’이 그 때까지도 남아있어서, 인상에 남는다. 요즘은 인터넷이 있기 때문에 넓은 발전소의 어느 장소에서나 시계가 필요없이, 휴대폰 시각은 동일하게 작동하지만, 예전에는 Master Clock을 제어실에 두고, Son Clock여러 개는 발전소 현장에 두어, 모든 운전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인데, 요즘에는 구하지 못할 발전소 역사에서는 기념품적인 시계였다.
태안화력근무 때도 ‘광송문화오솔길’을 만들었는데, 여수화력 출신으로 후일 영흥발전소에 근무하던 부장이 벤치마킹하여 영흥화력에 ‘업벌문화의 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보화한마당
이렇게 지역문화를 잘 이해하자는 마음과 정서적인 분위기를 만들자는 마음은 결국 연말에 ‘한마당 잔치’를 열게 된다. 보령 김영문 소장께서 승인해 주시고, 전직원에 이름을 공모해서 지은 ‘보화한마당’ 문화행사 때는 우리 발전소 직원들의 각 동아리, 협력사 직원, 가족 작품, 지방 예술인들 작품을 전시했다.
우리 직원과 가족은 물론,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버스를 보내 학생들도 관람시켰다. 지역 문화인들이 트럭으로 그 육중한 석재 조각품을 운반해 오는 등, 3일동안 강당은 분위기가 분주하고 활발했다. 이 행사는 수년 간 잘 이어졌다.
보령문화예술인회 작품전에는 역시 우리 발전소 직원들의 작품도 전시했다. 어느 해인가, 예술인회 작품전시회 때, 김용환 국회의원이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을 모시고 참관하셨다. 회장님은 당시 무척 큰 액수인 일천만원을 주시면서 어렵게 작품활동을 하는 예술인들들을 격려해주신 일이 기억난다.
광송정(光松亭)과 *우덜 사랑 태안전
태안화력발전소에 근무할 때는 김의규 본부장에게 건의하여 발전소 종합사무실 앞 산 위에 세워져 있던 정자각에 광송정(光松亭)이라는 현판을 부착했다.
태안화력이 자리한 땅의 역사는 태안군지에 간단히 기록되어 있었다. 오랜 옛날부터 그 땅에는 해송이 우거지고, 관솔이 많이 생산되었던 곳으로, 나중에는 실제로 ‘광송’이라는 이름을 썼다는 것이다.
태안화력 1~4호기 건설 때 그 정자를 지었지만, 이름도 없이 지내는 것을 불쌍히 여겨(?) 현판식을 열고 이름을 지어준 것.
당진화력 정자는 전망이 아주 좋고 접근성도 좋은데, 김종필 국무총리가 석문각(石門角)이라는 재미난 이름을 붙여주었다. 보통은 각(閣)을 쓰는데, 지형이 뾰족하다고 일부러 角자를 썼다는 이야기다. 태안의 광송정은 어두운 밤에 관솔에 불을 붙여 물이 빠진 뻘에 나가 갖은 해산물을 채취하던 관솔의 소중하고 횃불의 밝은 이름을 가졌는데도, 접근로가 불편하여 그 처지가 좀 안타깝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도 문학동아리를 결성하도록 지원하고, 학암포 지명에서 딴 ‘학바위’라는 직원 문예지를 발간을 축하했고, ‘우덜 사랑 태안전’이라는 명칭으로 태안지방 문화예술인들과 마음으로 교류하며 행사를 개최했다. *우덜=우리들
조우장 본부장과 류지풍 행정실장의 협력으로 예산지원을 받아, 보령화력에서의 경험을 살려, 멋지게 행사를 꾸릴 수 있었다.
보령에서, 내가 떠나면 이런 행사가 끊어지니,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래서 태안에서는 문학 동아리의 고문으로 물러나 있었지만, 역시 전시회는 두어 번 개최되다가 이어지지 못한 것이 참 못내 아쉽다. 직원들의 이동과 승진 발령 등 변수가 많아서 특별한 내규를 만들기 전에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