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2022년
비싼 값을 치르고 습득한 소중한 발전기술을 정리하고 편집하여 책으로 엮어내는 방법을 적는다.
단편적인 조각 기술을 모아 구슬로 꿰는 작업도, 그리고 시운전기술 경험자료집 같은 책을 만드
는 것도 미리 계획을 세워서, 무슨 기술을 실을 건지, 자료수집-정리-분류-집필-보완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체계화된 지식으로 공기업 한전은 국내 산업체
의 기술과 품질을 선도하는 역할을 상당히 잘 해냈다.
계간지 『보화(保火)』
1986년 4월은 보령화력발전소 기술정보지 보화 창간호가 발간된 달이다.
박세영 발전부장-김교천 부소장-임광택 소장님의 승인으로, 保령火력발전소의 약자인 保火를 제자(題字)로 분기 1회 발간하였다.
500MW라는 대용량 석탄발전소를 분할발주(Piece Meal) 방식으로 건설한 후에 겪는 각종 기술적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특히 무연탄에 비해 먼지가 아주 적게 나는 고급 역청탄(일반적으로 유연탄이란 불렀음) 사용은 삼천포화력발전소에 이어 6개월 시차로 보령에서도 생소한 데다, 그것을 연소하면서 일어나는 각종 열교환과 공해처리 기술들을 어떻게 습득하여 축적하고 진화하는지, 모든 과정을 문서로 남김으로써 많은 발전인들에게 기술축적은 물론, 기술정보를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약 4년 여 지속해서 발간하여, 많은 기술정보를 수록했다. 이런 과정에 보령화력은 전국 발전소 중에서도 최우수 사업소로 수차 평가를 받았기에, 일을 어떤 절차로 수행한 것인지를 기록으로 남기는 등, 많은 ‘경영 소프트웨어’들을 수록했다.
분기 1회 발간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원고 받기’였다. 그 해당 분기에서, 또는 그 해 어느 분기에 무슨 내용을 특집으로 할 거냐 하는 문제는 여러 상황을 종합해 꾸밀 수 있었지만, 발전소 직원들에게 기술원고를 받는 일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나서 부탁하고, 전화하고 또 조르고….
목 조르기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부탁을 하니 원고를 받을 수 있었다.
발전기술 워크샵
이 또한 그 때 그 때 이슈화 되었던 문제에 대하여 특정한 주제를 정하고, 몇 사람이 연구발표를 하게 하는 활발한 기술 연구-축적-전파 활동을 수년 간 계속 전개했다. 물론 발표자료집도 만들었다.
『시운전 기술자료집 Ⅰ& Ⅱ』
보령화력 제3~6호기는 국내 최초의 초임계압 발전소이므로, 한전 역사상 최고의 기술이 도입되는 일이었다. 시운전 기전부장을 맡은 연고로, 기술자료집 편집을 미리 구상하여 만든 것으로, 총 1,6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집이다. 모두 55개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시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미리 항목을 정하여, 각 장마다 원고를 작성할 담당자를 정한 것이 아니라, 담당부서를 部단위가 아닌, 課단위로 정한 것이 특징이자 비법이다.
시운전 종료 후에 이런 원고를 쓰려면 기술을 경험하고 체득한 직원의 전출 등으로 만족할 만한 자료작성이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은 바뀌어도 조직은 안 바뀌므로, 조직에게 맡긴 것이다.
한국 최초의 초임계압 발전소 4기 건설에 따른 시운전. 3,4호기는 조혜상 반장, 5,6호기는 홍석열 반장이 시운전 책임자였는데, 나는 두 분을 보좌하고 10명의 과장을 지휘하여 네 호기 모두 기전부장으로 참여하였으므로, 이 책 편집이 누구보다 수월했고, 두 호기에서 겪은 것보다 네 호기에서 겪었으니 내용이 훨씬 더 알차고 풍부하며, 또 한 명이 총괄 편집하니 일관성이 있었고, 실제로 나는 많은 시간을 이에 할애하였다.
그 때만 해도 ‘탈질설비’는 없던 시절이니, 요즘이라면 적어도 60장 넘게 편성될 것 같다.
작성한 원고내용에 꼭 들어가야 할 소중한 경험들이 정확하게 수록되었는지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기에 시운전 상황을 손바닥 안에 놓고 훤히 꿰어야 했다.
또한 55개 모든 항목이 반드시 기록해야 하는 의무항목, 즉 시운전 기간이나 결과물 기록지 사본 첨부 등도 미리 또는 그 때 그 때 정해주기도 하고, 거기에 각자 써온 초안에 대해 어휘-철자-오 탈자-약자(略字) 등을 전부 통일시키는 소소한 작업에 매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영어의 약어통일안까지 정하여 배부했지만, 자기 습관대로 적는 사람이 많아서, 애로를 겪었다.
최종 편집은 보령 명문당 인쇄소에서 하고, 타자 내용을 교정하는 일도 부가적인 일이었다.
초임계압 발전소는 한국 표준형으로 설계되어, 보령4기, 태안 4기, 당진4기, 하동6기, 삼천포 2기 등, 총 20기가 연달아 건설되었다. 따라서 보령에서 만든 이 책은 후속기에 잘 전달됨으로써 시운전 기술의 길라잡이 역할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 특히 후속 발전소들이 모두 보령의 편집방식을 비슷하게 만든 것은 나로서는 참 뿌듯하다. 이로써 보령3~6호기 이전에 대비하여 매우 충실한 자료가 실린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 책은 보령6호기가 500MW 출력을 성공하고, 모든 시험을 마친 상태레서, 준공식만을 남겨둔 상태에서 인쇄하여 배부하였다. 종전에는 준공 후에도 몇 달 또는 1년이 더 걸려야 나오던 것이 관례였는데, 혁신적으로 앞당겨 큰 Volume으로 상하권이 출판되자, “아니, 이런 책이 벌써 나온 거야?”라며 많은 사들이 놀라워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참 즐겁다.
원고 작성자는 모두 그의 소속과 이름을 표기했고, 소정의 원고료도 미리 예산을 책정해 두었다
가 빠짐없이 지불해주니 다들 좋아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또랑치고 가재잡는 일이었다.
『명품발전소 건설과 운영』
사람은 사랑의 결과로 탄생하는 것처럼, 나는 나의 사랑과 필요에 의해서 화력발전소에 많은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용어들을 창작해서, 어줍잖지만,『명품발전소 건설과 운영』책을 펴냈다.
혼자서 본격적으로 이 책을 쓰고 고치고, 보완하고 도 고치기를 수십 번. 무려 15년 정도 걸렸다. 수록 내용은 50년 전 사례도 들어있으니, 오래 전부터 기술사항을 기억하고, 자료를 만들거나 수집해 온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서부발전을 퇴사할 때만 해도 내가 가진 것은 발전소 운전과 정비 그리고 설계와 시공 일부에 국한된 편이었지만, 후에 근무한 두산중공업-현대엔지니어링-SK건설에서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그 15년동안 더 많은 것을 경험하여, 설계-제작-시공-개조 등 책내용이 무척 풍성해졌다.
한전과 서부발전에서 익힌 발전소 운전과 정비기술에다가, 시운전을 여러 차례 하면서 설계와 시공이 훨씬 더 마음 써 주어야 하는 사항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제작사-엔지니어링 회사-건설회사에 근무하면서 또한 상당한 지식을 더 흡수하였다.
따라서 한전과 서부발전은 당연하지만, 특히 민간 3사에게 감사드리는 마음 매우 매우 각별하다. 책은 1,400여 쪽 1권이고, 정식으로 ISBN번호를 받아 소량 인쇄하여, 중요한 회사와 대학교 등에 배포했고, 전자파일은 후배들에게 무료로 공개하였다. 누구든 원하면 제공할 수 있다.
이 책을 바탕으로, ‘Power Plant Academy 75’라는 Power Point 강의자료 75시간 분, 3,300여장을 만들었지만 활용할 자리가 없어 쓸쓸하다. 내 개인 카페에 올렸으나,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지식은 곱하기지, 지혜는 나누기지.
그렇다. 내가 선배님들의 포용과 아량과 지도로 가르침을 많이 받았고, 후배들을 부려서 혹독하게 일을 시킨 결과로 얻은 발전소 지식은, 곱하여 더 불리고, 지혜는 서로 널리 나누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