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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9. 2022

전기의 고마움---‘오캐’에서 겸손과 덕을 생각하다

전기의 고마움---오캐’에서 겸손과 덕을 생각하다

2003년 2월 4일


최근에 안면도가 관광레저로 무지하게 뜨고 있다.

항구 이름이 ‘백사장’인 곳, 꽃박람회가 열렸던 꽃지 해변, 고남면 영목항 등지에 가면 엄청난 투자가 이뤄져 개발이 진행 중이고, 휴일에는 승용차가 진입하지 못할 정도로 관광객이 붐빈다.

이미 ‘화가 마을’도 그림처럼 들어서고, 서양풍의 아름다운 민박집이나 펜션하우스, 작은 콘도 들이 문자 그대로 우후죽순인가 하면, 인근의 많은 민가들이 민박간판을 내걸었다.

보령과 영목 항구를 잇는 다리가 놓인다 하고, 가로림만에는 조력발전소가 세워질 거라는 얘기도 가끔 들려온다. 대규모 콘도와 골프장, 승마장, 카지노 들이 들어선다는 신문보도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국제적인 관광지로 떠오르는 안면도가 자리잡은 이 태안군에 살면서 그 유명한 롯데오션 캐슬에 못 가봤다면 좀 창피하지만 이건 사실이다. 서울사람이 남산타워나 한강유람선 그리고 63빌딩을 못 가본 것과는 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내가 오캐(오션캐슬의 약자)에 못 가본 것은 다분히 文化的 낙후성(?)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척 비쌀 것이라는 생각도 있고 게다가 시간도 없다는 그런 진부한 낙후성 말이다. 태안에서 ‘이렇게 떡하니 너른 땅을 차지하고서’ 전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서, 태안군 관광사업에 오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안면도가 장차 어떻게 변할 것인지 깊은 관심을 가져야 마땅한데.

 아무튼 그렇게 살던 차에 회사에서 ‘희망의 미래 구현을 위한 워크샵’이 열리는 덕분에 처음으로 그곳에 가 보았다. 고마운 우리 회사!

시원하게 펼쳐진 모래불 저편에 하루의 일을 끝내고 이제 안식의 시간을 가져다주는 태양을 바라보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정우영 태안 문화원장의 ‘전력사업과 태안문화’라는 특강은 여느 강의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시골 면장을 지낸 분이지만 강의시간을 질질 끌지 않고, 요점을 명확하게 그리고 피부에 닿게 설명해서 좋았다. 태안 제 7,8호기 증설문제로 주민이나 관공서와 신경이 곤두선 상황이어서 매우 흥미있는 소재라는 생각에 모두들 귀담아듣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원장께서는 발전사업자인 우리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먼저 표시하였는데, 통상적으로 쓰는 전기의 고마움이 아닌 아주 실감나는 말 한 토막.

“옛날에는 마을마다 우물이 있었지만 요새는 상수도에서 각 가정으로 물을 보내주는데 이게 전기가 없으면 물이 끊기지요. 물을 못 먹으면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전기는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먼저 우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나타낸 다음에, 태안의 역사와 정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태안사람으로서 태안사람의 정서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한 대목이 있다.  

“왜정 때 일본사람이 집을 지어 살면 밤에 누가 몰래 와서 인분을 안뜰에 슬그머니 퍼다 넣어 일본사람이 발붙이기 힘들었던 곳입니다. 반도 기질이 있기에 그런 것이며,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배타적인 면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겸손과 덕으로 대하면 서로 믿음이 생겨 발전사업이 잘 풀릴 수 있을 것이니다.”

원장님은 해법도 제시해 주었다. 겸손과 덕이라... 자신을 한 번 더 낮춰보라는, 마음을 열고 진심을 보여보라는, 약간의 섭섭함에 크게 마음을 쓰지 말라는, 할 수 있는 성의를 계속 보여보라는 그런 마음자세라 생각되었다. 정말 그렇다. 그런 자세가 아니라면 언제나 ‘이 지방’사람들에게는 우리는 ‘이방인’으로 비칠 것이고 그런 정도의 관계라면 진정한 의미의 지역협력이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어 5명의 부장이 준비한 자료를 발표하고, 한 주제씩 난상토론을 벌였는데 진지한 분위기에서 솔직하고 건전한 의견이 오갔다.

노사협력문제나 기업문화를 토론할 때 아주 감명깊었던 일이 있었는데, 참여자 대다수가 직원들과 노조에 대해서 “xx을 해주면 좋겠다”는 식의 눈물겨운 배려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선배된 입장에서 후배들을 생각하여 건전한 노사관계를 이룩할 좋은 방안을 많이 낼 줄이야.


좀 다른 얘기 하나. 

언젠가 내가 발전소 노사협의회에 참석하였을 때의 일이다. 노조는 여러 가지 안건을 내어 회사가 합의해주기를 바랬다. 나는 단칼에 거침없이 노조 요구를 물리치지 않고 합의했다. 예산이 많이 드는 안건조차 단번에 “오케이”라 했더니, 노조 대표들이 오히려 의아한 표정으로 “정말입니까?”라고 다시 확인할 정도였다. 

나는 “회사정보를 잘 열람하지 않는 직원도 많고, 회사에 애정을 갖지 않는 직원도 많은 것 같고, 회사의 녹을 먹으면서 1년에 제안을 한 건도 안 하는 성의 없는 직원도 있는데, 좀 더 회사를 위해 정성을 쏟읍시다”라고 말을 확실하게 하면서, 제안 내용 모두 다 우리 직원들을 위한 일인데 그걸 안 들어줄 이유가 없고, 그런 생각을 미리 하지 못한 회사가 오히려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직원들의 복지문제나 고충사항 해결에는 勞動組合에 先手를 뺏기지 않을 만큼 발 벗고 뛰는 간부가 된다”. 


이 말은 내가 과장시절에 이미 생각했던 것이다. 그날 협의회는 매우 빠른 시간에 종료되어, 저녁식사도 노사대표가 즐겁게 같이 할 수 있었다. (농담이 반 섞여 있지만, 나는 더 이상 노사협의회에 나가면 안 된다. 내가 나가면 노조의 요구를 다 들어줘버릴 거니까. 허허.)

 아무튼 이번 워크샵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겸손과 덕이 딱딱함을 녹여준다는 것과, 지역주민이든 노조원이든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써주는 일이란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뜻 깊은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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