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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18. 2022

무소유와 소유욕

무소유와 소유욕

2010. 3.13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어제 모 씨 혼사로 식장에 갔더니 하객이 엄청 오셨더라. 혼주의 인맥을 엿볼 수 있다고 할까, 인격을 알 수 있다고 할까? 나는 혼주가 많이 부럽더라.

결혼식이 끝나고 코엑스를 거쳐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큰 전시회를 여는 홀 쪽에 다다르니, 그 넓은 입구 공간에 결혼 축하 화환들이 마치 어디 아이스 링크처럼 큰 타원을 그리며 둘러져 있었다.

"우와~! 여긴 더 대단한 사람이 있구나!" 하고 구경이라도 한 번 해보자고 식장을 삐꿈 들여다

보니, 그 안에는 식탁이 가득 들어차 있고, 시커먼 양복 입은 사람들도 꽉 찼더라. 얼마짜리인지 모르지만 식대만도 제법 안 되겠냐? 제법.

 그 식장에는 얼마 전 무슨 컨퍼런스 때 들어가 봐서 나도 아는데, 한 300명은 들어가겠지. 화환을 보니 전신만신 국회의원에다 무슨 회장님…. 

난 그런 사회적 신분 앞에 기가 깍 죽더라고. 넌 아들 결 혼식에 청첩장을 일곱 장만 보낼 만큼 언제나 그런 일에 초연하지만, 나는 늘 권세와 출세가 부러워.

 오늘 후배 하나 만나서 점심을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더니, 아 이 후배란 녀석 한다는 말이, 지

가 꼭 내 선배인 것처럼 말하는 거야.

"진짜 축해해 줄 사람 한 100명만 모시고 하면 좋지 않을까요?".

내 머리가 띠잉~. 하이고, 오늘 나 한 방 크게 먹었다 야. 맞다. 맞어. 내가 벌어 논 돈만 좀 있으면 "축의금과 화환은 정중하게 사절합니다"라고 보란 듯이 허세도 부리고 고급 음식 한 번 대접도 하고 싶은 데... 그게...그게….


  몇 년 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갔어. 내가 조문한 분 말고 옆쪽에는 그 비싼 장례식장 몇 칸을 사용하는 집이 있었지.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 들이 줄을 이어 문상 차례를 기다리더라. 그러고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계속 모여드는 거야. 그 분 장례식장은 코엑스 아이스링크 그 사람 보다 몇 십 배 더 위였어. 거긴 아예 조화 놓을 자리가 없어서 접수하는 족족 돌려보내고, 리본만 떼서 벽에 나란히 걸었는데, 그 큰 방 몇 개의 벽을 다 도배하다시피…. 그 숫자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그 말이지. 


"조의금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입구에 써붙인 글씨가 빛나더라. "참으로 멋진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는데, 고급 제과점 상표가 붙은 빵 상자가 막 들어 가더라. 조의금도 안 받지만 조문객 대접을 최상급으로 하는 거였어. 슬쩍 알아봤더니 어느 다단계 회사 회장님이 돌아가신 건데, 이 정도면 돌아가신 게 아니고 ‘서거’급이지. 너무 부러웠어. 존경스러웠어. 

나도 아이들에게 나의 일이 벌어지면 조의금 안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조부모부터 부모님, 처부모님 그리고 아이 셋을 결혼시키면서 조의금을 많이도 받았으니….

 법정스님이 '무소유' - 그 가슴 울리는 좋은 교훈 남기시고 저~ 멀리 훠어이 떠나 가셨지.

 무소유. 

 그 말에 동감하고 감동은 해도 실천할 자신은 하나도 없는 이 중생을 법정 스님은 얼마나 측은

하게 여기실까…. 오늘이 법정스님 다비식 날인데, 나는 더 큰 허세와 소유욕에 눈이 휘둥그레진 하루였다.


*2022년 현재

엊그제 점심에 서울에 사는 우리 학교 동기생 일부가 모인 송년 모임에 다녀와서, 아직도 두근 거리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이틀이 지났다. 사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친구들 모임에 초대받은 순간부터 마음이 두근거리더니, 갔다 온 후에도 계속 그렇다. 이 나이에도 이렇다. 

성공. 성공이란 무엇인지…. 

이 또한 하나의 소유욕이렸다. 일본 동경도지사를 지낸 이시하하씨의 표현에 따르면 이것은 아욕(我慾)으로,  물욕(物慾)과 금전욕(金錢慾)으로 이뤄진 것이란다.

친구 한 학교, 한 동갑, 한 동창생이 다른 ‘동창생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 저 여유로운 모임과 주선한 홍 회장을 많이 부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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