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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0. 2022

“교각은 철로를 받치고 싶다”

교각은 철로를 받치고 싶다”

   1988년


우리는 각자의 할 일을 좀더 충실히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 힘을 모아 나라 힘을 키워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國道를 따라 東海岸을 달려본 사람이면 누구나 잡초 우거진 철둑과 하천마다 외로이 서 있는 콘크리트 교각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지도를 살펴보면 포항에서 삼척 사이, 그리고 강릉에서 고성 사이는 철도는 없고, 철도 예정지로 되어 있든가 그냥 국도만 그려져 있다.

이 두 구간 철도는 倭政이 조금만 더 길게 이어졌어도 완성이 되었을 것이다. 완성이 안 된 것을 아쉬워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말하자면 동해선이라고 부를까? 그게 완성되면 그를 기준으로 옆으로 여러 개의 협궤열차가 연결되어 강원도의 여러 골짜기로부터 숱한 자원을 헐값에 내어가 일본으로 보낼 참이었다. 

일본사람들은 태백산맥의 동해안 쪽 골짜기에 구비구비 개천을 따라 가파른 절벽 한쪽에다 ‘가솔린 차’가 달릴 수 있는 기초를 축조하였다. 그것도 물론 완성되지 못했다. 우리는 그것을 ‘가시랑 차’가 다닐 길이라 말했다. 이 협곡을 달리는 협궤열차로 임산물과 광산물은 예의 그 동해선 철도와 접속되어 일본으로 빼돌리려 했다. 이렇게 자원침략을 위해 철도를 놓으려다 2차 대전 패전으로 중단된 것이다. 

어쨌든 레일만 깔면 완성될 이 철도는 해방된지 4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흉한 몰골로 남아있다. 왜 이럴까? 왜 아직도 이어지지 못했을까? 경제성이 없어서인가? 천만의 말씀. 그것은 나라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어디 이것뿐이랴. 섬으로 나가보자. 느릿느릿 가는 배. 그나마 하루 한 두 번 뜨고, 웬만큼 날 궂으면 못 가 동동 발을 구는 섬마을 사람들.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쾌속선은 왜 없나? 있지만 돈이 없어서 운영을 못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경제성 따질 일 아니다. 國民福祉를 위한 일에 그런 걸 따지다니. 딴 나란들 거미줄처럼 깐 철도가 없으며, 적자운영에 허덕여도 폐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서민의 발이기 때문 아닌가?

요새 가만히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역감정이란 게 무슨 철부지 같은 생각인가 모르겠다. 좁디 좁은 땅덩어리에서 무슨 道는 대접받아야 하고 무슨 道는 대접 못 받고 있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강원도 화전마을, 경기도 섬마을, 구석구석 민생을 편리하게 해야 할 일이 얼마인데, 대접해 달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저능아들만 모인 줄로 아는가 모르겠다.

시간을 어기기 일쑤인 우등열차를 타고 세 시간씩이나 달려야 도착하는 장항선 열차는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차라리 하루 종일 타고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놈의 땅덩어리 좀 넓었으면 하는 마음 몇 번이었던지!

그런데 더 바라고 싶은 것은, 좁은 땅에서 아웅다웅하는 군생들의 모양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그런 소인배의 정력이 있거든 미국이든 브라질이든 저 넓은 땅으로 좀 나가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즈음 떠들썩한 민주화는 우리가 너무도 늦게 찾은 우리의 천부의 권리이다. 민주화가 피를 토하면서 쟁취해야 하는 대상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능력이 모자라 여태 못 찾았지만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논란의 대상이 되다니 참으로 한심스럽지만, 국민 각자는 자신이 민주화를 찾는데 별로 한 일이 없었다고 생각되면 민주화를 지키는 데는 공을 세워야 한다.


우린 참 할 일이 많은 나라다. 고속도로 건설, 항만 확장, 수출 증대, 올림픽 개최 등등. 그러나 성화 봉송로변의 울긋불긋한 새 담장 속에 숨은 듯 주저앉은 슬레이트 집 안에는 새 담 보다 더 급한 용무는 없었는지 살피면서 일을 추진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언론 활성화 또한 바삐 추진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수상은 ......해서 싫다”고 말하고, 그렇게 말하는 시민을 그대로 TV에 방영하고 있는 일본만해도 정치로 치면 후진국에 불과한 나라라던데,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디쯤 와 있는 것인가?

지방자치, 교육개선, 변소개량, 부엌개량 등. 하나씩 해 나가고 있다. 우리 힘 모으면 된다. 민주화도 힘 모아야 이뤄진다. 우리 할 일 잘하면 나라 부강해지고, 방방곡곡 철로가 놓일 것이고, 섬마을마다 쾌속선이 운항될 것이다. 다투지 말고 민주역량을 키워 저 '하늘을 이고 선 교각'으로 하여금 하루라도 더 빨리 고속전철을 떠 받치게 해보자.


“교각은 철로를 받치고 싶다!”


라 외치는 것 같지 않던가?


*2002년 현재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에 있던, 일제 때 만든 철도용 터널과 노반은 그 때 완성되지 못하고, ‘Rail Bike’로 활용되어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시설이 되었다. 대신 경북에서 삼척시로 연결되는 철도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어서 빨리 개통되기를 염원한다. 서울에 사는 내가 뭘 편하게 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이 철도 노선은 아직도 건설되지 못한 고속도로와 함께, 국가의 간선 교통망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쓴다. 일본은 자원 수탈을 위해 그랬다지만, 한국은 해방 후 70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국가 ‘간선부터 빠른 속도’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적이거나 경제적 이유로 예산을 적게 배정하는 것은 큰 문제다. 간선은 그렇게 건설하면 안 된다.

  근덕면 동막리에서 대평리의 내 외가로 가는 길은, 앞의 그 가시랑차(가솔린차. 협궤열차)를 놓으려고 공사를 많이 하다가 중단되었는데, 이제는 유심히 보지 않으면 남은 축대의 형체도 찾기 어렵고, 이런 사실을 아는 어른들도 거의 다 돌아가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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