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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19. 2022

요즘 초등학교 운동회

요즘 초등학교 운동회

   2022.10.4 


딸 하나 아들 둘이 초등학교 다닐 때에 운동회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내가, 오늘은 손주들 운동회에 다녀왔다. 60년 넘은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청백전의 추억이 많이 떠올랐다.

점심시간 무렵에 학교에 도착해서인지 1,2학년은 벌써 다 집에 보냈고, 운동장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은 물론이고, 젊은 아빠 엄마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데 놀랬고,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발랄한 춤곡에 아이들이 대부분 연신 몸을 흔들며 함께 흥겨워하는 모습이나, 어떤 노래가 나올 때는 전교생이 떼 창을 하던 모습은 옛날 우리랑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때는(나 때), 1000명이 넘는 학생이 다녔으니, 근덕면민이 다 나와서 구경하는, 면민 운동회처럼 운동장이 북적거렸다. 

그 때는 운동장에 들어서면 우선 100미터 트랙이 아주 길게 보였다. 요즘은 100미터 달리기는 안 하는지, 타원형 운동장을 비스듬하게 하얀 회가루로 여러 개의 긴 금을 그은 100미터 트랙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이 학교 운동장 가를 둘러싼 높은 그물은 ‘야구부’ 때문에 친 것이니, 옛날 시골에는 없는 풍경이다.

요즘 시골에는 사람이 적어서 내 모교 근덕초등학교 학생은 60여명이라는데, 그래도 여기는 서울이라 전교생이 600명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학년 별로 색깔이 다른 티셔츠를 학교에서 단체로 내줘서, 복장이 통일되어 탁 보기에 학년 구별이 쉽고, 운동회 기분이 났다. 손녀는 지 아빠를 닮아서인지 달리기에서 월등하게 1등을 했지마는 상품은 따로 없었다. 손자는 병설유치원생으로 노란 병아리색 모자를 단체로 받았고, 달리기에서 꼴등을 했지만, 누구에게도 상품은 안 주니 못 받기는 마찬가지. 내 생각에, 매우 빨랐던 저거 아빠 피가 어딜 가겠나, 얘도 한 1~2년만 더 지나면 달리기가 확 달라질 거다. 

올림픽도 아닌 학교 운동회이니, 같이 뛰고서 상을 안 주는 것은 어찌 보면 공평한 처사라 보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달리기를 잘 하지 못해 운동회 때 상을 받은 기억은 두어 번 정도다. 그런데 달리기를 잘 해서 계주 선수로 나가 우승까지 하는 아이들이 여러 개의 상을 받는 것이 부럽기도 했는데, 그런 부러움도 다 없어진 운동회를 하는 것 같았다. 상품을 안 주는 대신에 운동을 잘하는 아동들에게는 아낌없는 박수와 부러움의 눈길을 모아주면 되겠지.

운동회를 마치고 집에 온 아이들이 가방에서 과자를 몇 개씩 꺼내 놓았다. 우리 때는 생각도 못했던 과자다. 우리 나라는 이제 참 잘사는 좋은 나라가 되었다.


나는 좀 추운 듯한 가을 날씨의 운동장 가를 돌아보며 할머니 생각을 했다. 

해마다 운동회 때는 점심 때가 오기 전에 도시락을 싸서 운동회에 오시던 할머니. 점심시간이 되면 다들 가족들끼리 교실로 들어가 삼삼오오 점심을 먹었지. 나도 할머니와 함께 아무 교실이나 들어가서 빈자리를 찾아 노란 알루미늄 벤또(도시락)를 펼쳐서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있다. 

아무래도 운동회이니까 한 가지라도 반찬을 더 만들어 오셨을 할머니와 도시락 먹던 추억. 

그래도 나에게 제일 맛있는 반찬은 ‘비를 맞아 색깔이 뻘겋게 변하고 축 늘어진 이까(오징어)를 간해서 찐 것’. 좀 짧게 말하면 ‘간 이까 찜’이다. 그거 썰어서 도시락에 넣은 것은 뚜껑을 열면 지독한 (발꼬랑)냄새가 교실 안에 확 풍겨나가지만, 그래도 그 짭짜부리하고 씹는 맛이 왓따인 그 맛은 최고였다.

그런데 우리 손주 얘네들은 학년 별로 시간을 달리해서 학교 급식소에서 단체로 먹고 나오더라. 엄마나 할머니들이 도시락을 만드는 수고는 덜어주지마는, 나 같은 추억을 만들지는 못하는 것 같아서 좀 아쉽던데? 아무튼 내가 그 때의 할머니만큼 나이가 들어서 손주들 운동회에 오니 할머니 생각이 더 났다. 


우리 때는, 응원단장과 응원 깃발을 든 아이들이 서너너덧 명이 앞에 나서서, 요즘 치어걸처럼 차차차 박수(337 박수)를 유도했지. “차차차 미국차 브이 아이 씨 티 오 알 와이”를 소리지르며 응원했는데, 그게 빅토리(Victory 승리)인 줄은 몰랐고, 그저 박자 따라 소리 질렀었지. 요새 아이들은 그런 건 안 하더군. 우리 때와 많이 달랐다.

  단체 게임 내용은 우리 때보다 재미있는 것 같았는데, 진행 자체는 아마도 행사를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이 교사들의 협력을 받아서 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마전도 안 하는 것 같고, 곤봉체조도 없었는데, 운동회 끝 무렵의 청백 계주는 옛날과 동일하게 하여 온 학생들이 소리지르며 응원하여 크라이막스를 보여주더군.

그런데 우리가 운동회 마지막에 하던 ‘오재미(작은 모래 주머니) 던지기’ 즉, 장대 위 공 터트리기’는 없더군. 바구니 두 개를 합쳐서, 그 안에 오색 종이 조각과 펼쳐지면 큰 글씨가 보이는 넙적한 천을 넣는다. 그것을 종이로 살짝 감싸서 긴 장대에 걸고 선생님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청군 것과 백군 것 두 개가 운동장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아이들은 따라다니면서 소리지르며 오재미를 던져 충격을 가한다. 공을 먼저 떠뜨리는 팀이 이긴다. 바구니가 열리면 오색 종이가 흩날리고 크고 멋진 글씨가 나타난다. 환호성이 터진다. 

여기서는 그런 건 안 하더군. 그것도 일제의 잔재라서 그런가 몰라.

뭐 그게 무슨 대수랴! 달리기 등수가 무슨 문제랴! 오장육부와 팔다리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태어나서, 아프지 않고 친구들과 선후배들과 어울려 즐겁게 뛰노는 하루면 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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