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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0. 2022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2012


오늘 조간신문에 낙랑군에 대한 기사가 나, 갑자기 어릴 때 부르던 노래가 생각이 났다. 


“낙랑을 빼앗기고 밤은 깊은데, 공주의 무덤 앞에 쓰러진 왕자. 금관도 깨어지고…”


소년시절에 우리 친구들은 낙랑공주 노래를 즐겨 불렀는데, 50년 전 일이라 지금은 노래가사도 뒷부분은 가물가물하다.

낙랑공주는 어린 시절 우리 친구들의 추억의 소녀다. 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상상 속의 소녀였다. 우린 비록 시골 촌에 살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년이었다. 

그녀는 정말 비운의 공주다. 

얄궂은 운명으로 적국인 고구려 왕자 호동과 사랑을 하고 부부가 된다. 그러나 두 나라는 사돈관계에 있으면서도 고구려는 영토확장의 욕심 때문에 낙랑과 사활을 건 전쟁을 벌이고, 공을 세우려는 호동왕자의 꼬드김에 공주는 적군이 쳐들어올 때 저절로 울리는 ‘자명고(自鳴鼓)’를 미리 찢어버린 죄로 성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불쌍한 소녀다.

조국과 아버지보다는 사랑을 택하여 자명고를 찢을 때 공주의 손에 들린 칼이 어찌 제대로 북을 찔렀겠으랴! 사랑! 그 놈의 사랑이 뭔지 어린 우리들 가슴에도 사랑은 무엇이든 순종하는 것, 어떤 것도 초월하는 것으로 새겨졌었다.

 호동왕자는 용감한 무사지만 왠지 모를 치사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승리가 좋다지만, 아무리 공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사주해서 그런 치사한 방법을 택하다니!

우리는 임금이나 장수들과 같은 호기로운 전략가들의 커다란 세상을 꿈에 그려보지는 못 했지만, 어떻게 그런 떳떳치 못한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소년의 의협심은 지니고 있었다. 

호동왕자는 용감한 전사라는 점도 부럽고, 왕자라는 신분도 부러웠다. 질투가 나는 남자였다. 그러나 그런 질투와 미움조차도 가녀린 낙랑공주가 사랑하는 남자였다는데, 그 애처로운 사랑

을 이어가지도 못하고 죽은 공주를 생각하니 우리는 그 나쁜 왕자조차도 불쌍하고 안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죽은 공주의 무덤에 찾아가 깨진 금관을 내려놓고 눈물을 뿌리는 호동왕자를 생각하면, 공연히 

우리는 왕자가 선 자리에 서서 한 줌 눈물을 흘려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공주를 죽게 한 죄책감으로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자신도 공주를 따라 자결하는 호동왕자, 그와 똑 같은 마음이 되고 싶기도 했다. 공주를 사모하는 소년으로서 말이다.


낙랑공주를 생각하자니 어릴 때 생각이 나서 벚꽃 다 떨어지고 이제 다른 꽃들이 이어 피는 휴

일 아침이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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