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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0. 2022

가곡 동심초

가곡 동심초

2012.4.22


 나의 젊음이 덜 익었던 학창시절 어느 날, 고모네 집에 놀러 갔다가 깜빡 낮잠이 들었는데,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에 깨면서,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노래도 다 있나?!”라고 낮잠이 확 깨버린 것이 ‘동심초’다. 

난 노래를 부르는 건 좋아해도 음악에 조예는 별로지마는, 그 여가수의 맑고 우수에 찬 목소리에 담긴 가슴이 후련해지는 노래 소리, 참으로 애틋한 사연의 가사는 또렷하게 내 가슴에 각인되었고, 그 후로 내 애창곡이 되었고, 동심초라는 풀이 있는지, “풀잎만 맺으려는고”라는 가사에 대해 궁금증을 품은 채, 혼자 바닷가에 나가면 내 감정껏 뽑아내는 노래가 되었다.

그 때는 혈기왕성한 학창시절이라 다가온 감동이 더 진했겠지만, 그로부터 지금까지도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늘 내게는 학창시절, 고모네 집, 그 부근에 살던 여고생을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또는 순간적으로, 때론 갑자기, 세상의 연(緣)은 찾아오는가 보다. 


그런데 어제, 이 노래를 작곡하신 김성태 서울대 명예교수께서 102세의 고령에 별세하셨다. 1910년에 태어나 20대에 이미 동요집을 내었다니 가히 놀랄 만하고, 일제강점기의 와중에도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서울대에 음대를 만들었다니 그 업적이 대단하다. 

‘동심초’, ‘못잊어’, ‘산유화’와 같은 명곡이 100곡도 넘는다. 이런 분이 장수하신 것은 참으로 다행이고 좋았는데, 이제 유명을 달리하셨으니 더 좋은데 가셔서 편히 잠드시기를 빌어드린다.

 봄비 내리는 일요일 아침. 

동심초 가사와 비슷하게도, 만개했던 꽃잎들이 하염없이 떨어지는 이 시간에, 김성태 선생님의 서거를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100년 전에 태어나신 옛 분이, 그 어렵고 메말랐을 해방기에,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감성의 곡을 만들 수 있었을까 궁금하여 인터넷에서 얻은 지식을 정리해서 일부 소개하려 한다.


이 노래는 원래 중국 여인이 쓴 시를, 김소월의 스승이신 김억이 번역하였다. 후에 ‘산장의 여인’으로 유명한 가수 권혜경이 불러 널리 퍼진 노래로, 그 후에도 엄정행, 조수미 등 성악가들이 불러 점점 더 유명해지는 것 같다. 가슴 속에 들어있던 미처 고백하지 못했던 회한이 터져 나오는 듯한, 맺지 못한 연인에게 그리움을 절절하게 표현하는 듯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조차도 한번쯤은 그려봄직한 장면의 노래다.

 이 글의 목적에서 약간 빗나가기는 해도, 곡도 곡이려니와, 노랫말을 쓴 사람은 그 어떤 맺지 못할 운명을 슬퍼하면서 이 시를 썼던 것일까?

 

시의 주인공은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에 태어난 유명한 여류 시인이라니! 그 시절에도 이런 애절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살았다니! 노래 가사는 당나라의 名妓이자 여류시인인 설도(薛濤)(대략 770~832 자는 홍도洪度)의 시 춘망사(春望詞) 사수(四首) 중 삼수라 한다.


風花日將老 (풍화일장로) :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佳期猶渺渺 (가기유묘묘) :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만날 날은 뜬 구름 기약이 없네

不結同心人 (불결동심인) :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공결동심초) :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설도는 40에 사랑하는 연하남 원진(元眞)을 만나기는 했지만, 그 사랑을 맺지 못한 채, 헤어질 때 둥근 벼루를 깨어 반 쪽씩 간직하고,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그리움에 사무쳐 춘망사를 지었단다. 

설도가 직접 풀잎으로 종이를 만들어 시를 쓴 것에서, 동심초는 풀 이름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 연결하는 마음을 시로 쓰는 종이를 뜻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런 사연을 다 알고 나니, 시를 번역했을 김억 시인, 역시 이런 사연을 자기의 비련인 양 곡을 만드셨을 김성태 작곡가의 작업하시는 심정이 눈에 그려진다.


지금 나는 학창시절에 삼척의 동해바다 그 창파를 바라보고 서서 노래하는 기분으로, 권혜경과 조수미가 무대에서 숨을 가다듬고 노래를 시작하려는 기분으로, 진중하면서도 속에서 우러나는 목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불러 본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도심의 아파트에서 마음 속으로만 불러 본다. 입 속에서만 폭발적으로 불러 본다.

  1,200년 전에 당나라 시인이 쓴 시에, 60 수년 전에 한국의 김성태님이 곡을 붙인 노래를, 45년 전에 우연히 들은 청소년이, 이제 시공을 뛰어 넘어 60중반 나이에, 이름도 별로 없는 시인인 내가, 작곡가의 서거에 부쳐 이렇게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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