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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0. 2022

내 詩를 몹시 좋아했던 여대생

내 詩를 몹시 좋아했던 여대생

2022

 

여름방학에 발전소에서 시행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으로 뽑힌 C대학 국문학과 여대생이 내가 쓴 시를 무척 좋아한다고 내게 말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뽑혀 일하다가 발전소 문학동아리가 발간한 ‘사락배’에 실은 내 시를 보고 마음이 많이 움직였던 모양이었다. 

내가 시를 쓰기는 해도 누구로부터 “잘 쓴다”든지, “좋다”든지, 뭐 그런 특별한 평가의 말은 별로 못 들은 것 같은데, 의외로 꿈 많고 싱그러운 여대생이 내 시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니, 나로서는 참 기쁜 일이었다. 특히 그 사람이 문학을 잘 알 것 같은 국문과 학생이라는 점이 내 기분을 아주 좋게 만들어주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마구 떠들며 자랑하고 싶기도 했다.

 

사실 밥 먹을 때 숟가락에 얹어서 먹기만 하면 되는 사람들은 이 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나는 김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알기 때문에 이 시를 쓴 것이고, 그녀도 충남 보령군 삽시도 출신이라서, 부모님들이 김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성장했으니 이 시가 마음에 들었을 거라고, 나름 추리해 보았다.

 김은 당연히 갯바위에서 자라는 자연산도 있고, 바다 복판에 김발을 설치해서 키우는 양식도 있는데, 어느 것 하나 추위가 아니면 자라지 않는다. 김의 씨인 포자가 틔여 자라면서 바닷물의 어떤 영양분을 취하든지 간에, 추위 속에서 자라는 것이고, 사람이 그 추위를 이기고 곱은 손으로 채취해서 그것을 한 장 크기로 작은 발에 떠서 해풍과 햇볕에 말려서 제품으로 생산한다. 

 이 과정은 몹시 춥고-시리고-고달파서, 한 마디로 고생의 산물이다.

 나는 사람의 고생과 정성과 노력으로 얻은 제품에 높은 가치를 매겨왔다. 김이 바로 그러하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하면 시로 잘 표현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지은 것이 저 시다. 그런데 딱그녀가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어느 해, 일부러 무지하게 춥던 날을 골라서, 아내와 함께 보령 은포리 김 양식장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에 찾아가 사진을 촬영했다. 눈이 온 뒤의 맑은 날인데, 얼마나 추운지 사람들은 안 보이고, 바닷물도 꽁꽁 얼어서 저 멀리 거대한 크기의 김발 꽂은 김 밭만 희끄무레 보이는 때였다. 

육지에서 나가는 민물 수로를 따라 네모난 김 작업선이 쫄로리 줄지어 밧줄에 매여 있었는데, 물길 따라 모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대기(待機)’라고 이름을 지은 그 사진으로 나는 한전 사내 미술대전에서 사진부문 동상을 받았다. 이처럼 바닷물이 얼 정도의 추위, 뺨을 내놓고 있을 수 없어서 목도리로 얼굴을 가려야 했던 추위, 카메라 셧터를 누르면 손가락이 쩍 들러붙던 추위를 무릅쓰고, 어민들이 엄청나게 큰 김 밭을 만들고, 거기에 김 포자를 뿌리고, 자라면 저 배를 타고 가 잘라서, 조수가 빠지면 경운기를 타고 가 실어내서, 물에 씻고, 그러고도 일련의 건조과정을 거쳐 만드는 김 작업의 힘든 작업과정을 나는 직접 본 것이고, 그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릇 어떤 詩도 공감을 하는 데는 개인마다 독특한 사연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느낀 것을 그녀가 딱 공감한 경우인 것 같다. 

후에 들으니, 그녀는 가정을 이루고 시인이 된 것 같은데, 시 한 편에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다. 

부디 행복한 삶을 사시고, 여대생 시절의 그 예민한 감성을 잘 살려서 좋은 시를 많이 썼기를 기원한다.


*2022년 현재

“시는 읽는 게 아니라 겪는 것이고, 이론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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