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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2. 2022

7번 국도 따라 신 관동8경 유람헐 제

7번 국도 따라 신 관동8경 유람헐 제


일정 : 2021년 11월 16일~18일(3박4일)

심병섭, 이순교, 이선종, 김수형 속초에서 만나, 청간정에서 월송정까지 200km,

북한의 관동팔경 2곳 대신에, 필자의 임의로 근덕 덕봉산과 관덕정을 넣어, 새로운 관동8경을 만들어 여행하고, 영덕에서 해산하다.



 

신관동8경-1 고성 청간정(淸澗亭)

 

 

켄싱턴 콘도에서 Love로 시작한 여행

 

켄싱턴 콘도 숙소에서 확 트인 동해를 바라보니 거기에 LOVE가 보이네.

오랜만에 집 떠나 친구들과 많은 걸 훌훌 털고 여행을 나서니 탁 트인 동해바다는 우리에게 마음을 넓게 가지라 하네. 사랑 품은 뷰는 우리에게 사랑을 찐하게 하라 하네.

 가족과 친구와 세상을.


고성 건봉사(乾鳳寺)

건봉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특별히 '금강산 건봉사’로 불린다.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대사찰이었던 건봉사는 법흥왕 7년(520년)에 신라의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이 사찰이 그렇게 큰 곳이었다고? 놀랍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훈련시켰는데, 그들이 공양할 쌀을 씻은 물은 개천을 따라 10리를 넘게 흘러갔다고 한다. 1878년 건봉산에 큰불이 나면서, 당시 건봉사의 건물 중 3천 칸이 소실되었다. 3천칸이라니 규모가 대단했구나.

그 뒤 한국전쟁으로 인해 완전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단지 절 입구의 ‘불이문(不二門)’만 남아 있다. 건봉사 불이문은 기둥이 4개다. 

문의 안쪽은 진리의 셰계요, 밖은 사바세계이나, 진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不二門. 

기둥은 보통 2개인데, 여기 4개는 특이하다. 기둥을 이루는 석재에는 10 바라밀 중 ‘금강저’ 그림을 새겨놓았다.

 능파교를 건너면 좌우에 석주 하나씩 서있는데, 간결한 도안으로 돌기둥에 새긴 불자의 열 가지 수행 방법을 나타낸 ‘10바라밀도’는 전국에서도 유일한 고적이다.

 부처님 치아를 모신 적멸보궁도 생전 처음 관람했다.


화진포(花津浦) 국부 이승만 대통령 별장.

아무리 못살던 시절이었다지만, 검소해도 너무나 검소한 대통령 별장을 보고, 넘치는 물질의 풍요를 느끼는 오늘에 대해 반성이 된다. 어떤 대통령들은 웅장하고 호화로운 기념관까지 만들어 위세를 떨치는데,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유품이나 교훈은 기념관 하나 세울 정도도 안 된다는 말이더냐!

이곳 화진포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기에 김일성 별장도 이 부근에 있는 것인지, 강과 호수와 바다가 어우러진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송지호(松池湖)

 

호수둘레 6.5㎞석호(潟湖: 바다 일부가 외해(外海)와 분리되어 생긴 호수). 

송지호는 작은 만(灣)의 입구에 모래가 쌓여 사주(砂洲)가 발달하면서 바다로부터 분리되어 형성된 호수로, 둘레길 길이 10.7km. 

초겨울의 쓸쓸함이 잔뜩 배어 있는 호수 둘레길을 걸어보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 기회로 기약하고. 바람 없어 물은 고요하지, 해는 뉘엿뉘엿 황혼이 물들지, 이런 분위기니 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이 왜 안 생기겠나? 


속초수산시장

심병섭의 콘도 회원권으로 이틀을 예약해 우리는 참으로 편안한 잠자리를 가질 수 있어 행복하게 마시고 떠들었다. 돈 십만 원 쓰니 회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펄떡펄떡 뛰는 방어도 한 마리 잡고, 오징어도 도~ 마리 사고, ‘홍게 벤또’랑 온갖 해물 사서, 콘도에서 즐거운 술자리를 가졌다.  부랄 친구들과 갖는 기분 좋은 밤이었다.

이튿날 아침은 해수 사우나에 가서 다들 그게 어타 생겼는지 궁금증도 서로 풀고, ‘블랙 라면’에다 해산물을 넣어 끓인 라면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속이 확 풀여 좋았다.

켄싱턴 콘도 룸에서 맞이한 일출도 좋고, 해변의 맑은 공기와, 즐거운 이들과 함께한 데다가, 재미난 추억들을 쉼없이 얘기하니, 술은 취했어도 아침은 맑은 정신으로 해돋이 오메가(Ω)를 맞이할 수 있었다.


설악산

 신흥사 앞 강가에 수두룩한 저 바위같은 돌들은 어느 산골짝에 박혀 있다가 여기까지 굴러 온 것일까? 그리고 언제 어느 세월에 또 어떤 거센 물길에 제 몸 가누지 못하고 어디까지 굴러 내려갈까?


신 관동8경-2 양양 낙산사 의상대

의상대(義湘臺)와 홍련암(紅蓮庵)

원래의 관동8경 중 두 곳은 북한에 있다. 이곳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은 합쳐서 관동8경의 하나다. 의상대 주변에 있던 소나무 몇 그루는 화마에 숨지고, 겨우 한 두 그루가 지키고 서있다.   홍련암 마룻바닥에서 아래 바다를 내려다보면 형언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생긴다.


의상대사 기념관과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신라 때 의상대사는 중국에서 몇 년간 공부한 내용을 12권 책으로 냈으나 내용이 신통치 못하다 여겨 불에 태우지만, 타다 남은 종이에서 210글자를 추려서 ‘화엄일승법계도’를 완성한다.

중앙에 있는 法자로부터 性자 방향으로 읽기 시작해서 묘한 모양으로 방향을 이리저리 구불거리며 읽다 보면 다시 중앙의 佛자에서 마친다. 이 글자 속에 온갖 진리가 들어있다.

의상대사를 흠모하던 중국 처녀 선묘 낭자는 의상이 여자를 사귀지 않으니,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었고, 의상이 서해를 건너 귀국하는 배가 풍랑에 휩싸이자 용으로 나타나 의상을 구한다.

세상에, 여인의 사모를 끝까지 뿌리친 종교라는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이던가?

귀국한 의상은 양양 땅에 와 낙산사를 건립하고,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려고 기도를 아무리 해도 이뤄지지 않자 의상대 터 절벽 아래 바다로 몸을 날리는데, 선묘낭자 용이 또다시 구출하여 홍련암으로 올려 보내 또 한 번 살리고, 의상은 여기서 기도 끝에 기어이 관세음보살을 뵙게 된다.


후에 의상은 경북 영주에서도 사찰을 건립하는데, 이미 이곳에 절을 짓고 사는 5백여명 다른 종파 사람들이 크게 반발하니, 이 때도 선묘낭자 용은 큰 바위로 변해 하늘에 떠다닌다. 그들은 무서워서 달아나고 말았고, ‘뜨는 돌’ 浮石寺를 건립할 수 있었다.


 속초 영랑호(永郞湖)

 드라이브 중에 본 호수 안쪽의 기묘한 바위들도 멋있고, 호숫가 별장 여남은 채도 자리도 좋은 곳에 있는데, 다 화재로 폐가가 되었단다.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드라이브하고, 운치에 방점을 찍는 호반의 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그 기분 또한 좋다.


신관동8경-3 강릉 경포대(鏡浦臺)

하늘에 달 하나 떠있고, 호수에 비친 달, 친구의 두 눈에 비친 달, 술잔의 달.

강릉 사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차 한잔을 하고 헤어졌다.


신관동8경-4 삼척 죽서루(竹西樓)

보물 제213호.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데,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창건하였고, 1403년(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金孝孫)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명기 죽죽선(竹竹仙)의 집이 동쪽에 있어 죽서루라는 이름을 얻었다고도 전한다.


삼척사람으로 죽서루에 지주 와 봤지만, ‘관동팔경 중 제일’이라는 이름을 얻는데 손색이 없음을 이번 여행에서 확연히 알게 되었다. 다른 곳을 다 보고 나니 알겠더라.

“죽서루 기둥은 몇 개냐?”라는 질문에, “한 개다”가 정답이라는 말이 있듯이, 천연 암석 표면의 높낮이에 맞춰 각 기둥 길이를 맞춘 특이한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또 규모의 웅장함이나 아름다움, 타 누각들이 주로 바닷가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강을 끼고 내륙에 위치한 점 등에서 죽서루는 매우 특이하다. 만약에 남산절단공사를 하지 않았다면, 홍수피해는 입었겠지만, 아마도 삼척시내를 굽이쳐 흘러가는 오십천 풍광은 정말로 전국에서도 일품이었을 터.


교가리 느티나무

-수령 2200년(출전 삼척향토지)

 일찍이 고조선 때 태어나 묵묵히 이 땅 우리의 고향을 지켜주시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석고가(石鼓歌) 중, 산호벽수 교지가(珊瑚碧樹交枝柯)라는 시 구절에서 따온 근덕면 교가리 지명.

 이 나무 인근에서 우리들 아동 시절이 펼쳐졌지.


근덕 맹방 친구 홍성훈 400년 역사 종택에서

 친구 홍성훈이 지키고 있는 송암재(松巖齋)는 남양홍씨 400년 종택이다. 친구 박재정이 구워 온 은어 튀김에다, 친구 김규원의 입담에다가, 신나게 옛날 얘기하며 하룻밤을 보냈다. 친구들 마카 고맙쉐이. 이 송암재에는 팽구나무와 배롱나무 연리목(連理木)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것이 매우 이채로웠다.


신 관동8경-5 근덕 덕봉산

 원래 관동8경에 없으나, 내가 새로 넣은 근덕면 덕산리 덕봉산.

금강산 앞바다에서부터 삼형제 섬이 떠다니다가, 그 중 맏이가 여기 덕산에 정착한 덕봉산. 둘째는 원덕읍 호산리 해망산, 막내가 울진군 근남면 비래봉이다. 

해상의 덕봉산 위에 회선대(會仙臺)와 작은 우물이 있어서 가물면 기우제를 지냈다. 그 아래에 용암(龍巖)이 있는데, 언전(諺傳)하기를 옛날에는 선정(仙井)에서 선도(仙桃)가 나왔다고 한다. 

관북(關北)으로부터 떠내려 온 것이다. 선조 임신 21에 홍견(洪堅)이 소리내어 우는 대나무(명죽鳴竹)가 있다는 것을 듣고 꿈에 노처(露處)에 가서 무릇 칠일 밤을 기도하고 소리를 따라가서 명죽을 찾았는데 한 묶음에 다섯 줄기가 있었다. 그것을 얻어 화살을 만들었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수십 년 간 출입을 통제하다가 최근에 개방한 덕봉산. 높이 54미터. 꼭대기에 100평 정도의 평지가 있다. 꼭대기에 신선과 관련된 회선(會仙)대-선정(仙井)-선도(仙桃) 이야기가 있어 놀랍다. 


우리는 덕봉산정에서 덕봉산 시(조선 말엽 선비 최종원 작)를 함께 낭송하였다


신관동8경-6 근덕 관덕정(觀德亭)


이 또한 신 관동팔경에 새로 편입한 정자로, 근덕 초등학교 뒷 산에 있는 근덕면의 명소다. 관후산(館後山) 관덕정에 오르면 앞이 탁 트여, 동해 바다는 물론-덕봉산-수양산-근산도 다 내다볼 수 있고, 마읍천-무릉천-소한천의 합류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덕을 숭상한 고을은 수양산마저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덕봉산 시를 쓴 최종원 선비는 조선 말엽 순조 임금 때의 근덕 지방 선비인데, 덕봉산 시에서 ‘덕(德)’의 엄중한 정의를 내렸다. 그리고 이 수양산 시에서는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를 주제로, 충절과 도리라는 인간의 ‘큰 길’을 일깨워 준다. 

은나라가 망하던 시기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두 왕자의 미담이, 동이족 우리 조상의 역사가, 수양산 ‘고사리’ 시로써 근덕에서 이어진 ‘끈’이 경이롭다.

조선 세종과 세조 시절에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최수 공은 지봉(芝峰) 황보인과 절재 김종서(金宗瑞) 두 재상이 피살되니 삼척 맹방촌에 은둔하여 등산과 낚시로 소일하며 세월을 보내면서 스스로 시를 지어 ‘수양채궐인(首陽採蕨人) 수양산에 고사리 캐는 사람’을 자처한 것을, 후손인 최종원이 ‘수양산 시’로 선조의 충절을 기렸다.


관덕정에서 친구들이 수양산 시를 함께 낭송하다      (최종원 작)


관덕정 마당에서 풀을 매던 두 아주머니들이 놀래서 아마도 이런 말을 했을 끼다. 

“먼 나마니들이 너이(네 명) 올라오셰사, 먼 시를 한 수 읊고 내려 가솄는데, 당췌 저렇게 멋지게 늙은 노인들이 어데 있겠소? 우리 시아바이 하모 참 좋겠다오”



신관동8경-7 울진 망양정(望洋亭)

 

 신관동8경-8 평해 월송정(越松亭)

 

 

마무리

3박4일 동안 참 많은 얘기들 나눴다. 그렇게 유쾌하게 웃어보기도 드물 것이다.

다른 것도 오래오래 추억이 되겠지만, 선종의 ‘소리기 너무 질러서 주차비 손해본 얘기’하고, 나의 ‘장거리 운전 중 너무 졸릴 때 잠이 확 깨는 특효약 얘기’는 아매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사업 일정이 바빠서, 경북 영덕 커피숍에서 헤어지기로 했는데, 눈에 들어온 하트 잎사구 식물.

켄싱턴에서 사랑으로 시작한 것이 마무리마저 하트로 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짧은 3박4일 동안 썩을 노무 정치에 대해 관심을 끊고도 행복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재미난 얘기할 것도 쌔비랬는데 그딴 시시껄렁한 정치얘기 할 새가 어데 있사야지!

가만히 생각하면 참 싸게 그리고 편하게 여행했다. 싸다고 해서 싸구려가 아니었다. 숙박은 병섭의 콘도 회원권과 친구 홍성훈의 펜션덕분이고, 비싼 회를 저렴하게 먹은 것은 병섭의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 때문이고, 편안하게 이동한 것은 병섭이 자가용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억시기 비싼 거만 찾을 줄 알았던 병섭은, 물론 유명한 맛집도 찾았지만, 누구보다 더 검소하고 알뜰했고, 게다가 솔선해서 설거지까지 맡아 해주니 친구들이 참 편했다. 

인제 뭐 이런 여행 몇 번이나 더 하겠나?


집에 들어오니 대선 뉴스가 나오는데, 누가 어타 됐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이런! 또 현실로 들어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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