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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2. 2022

삼척 정선 태백 평창 여행기

삼척 정선 태백 평창 여행기

2022

 

삼척시 천은사(天恩寺)

강원 삼척시 미로면 동안로 816(내미로리). 
 758년(경덕왕 17)에 두타삼선(頭陀三仙)이 백련(白蓮)을 가지고 이곳으로 와서 절을 창건한 뒤 백련대(白蓮臺)라고 하였다.  839년(문성왕 1)범일국사(梵日國師)가 극락보전(極樂寶殿) 등을 건립하고 규모 있는 사찰로 만들었으며,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중수하고 이곳에서 대장경을 열람한 뒤 간장암(看藏庵)이라고 하였다. 이승휴는 또 이 절이 있는 용계(龍溪)에서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였고, 71세 되던 해에는 그가 머물렀던 용안당(容安堂)의 현판을 내리고 간장사로 바꾼 뒤, 이 절에 전답 등을 시주했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는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이곳에 와서 절을 중건하고, 절의 서남쪽에 있는 봉우리가 검푸른 것을 보고 흑악사(黑岳寺)라고 하였다. 

1899년에는 이성계(李成桂)의 4대조인 목조(穆祖)의 능(陵)을 수축하고 이 절을 목조의 원당으로 삼았는데, 이때부터 천은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

1287년, 고려 후기 문신 이승휴(李承休)가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를 운율시 형식으로 서술한 역사서. 상·하 2권 1책. 1287년(충렬왕 13)에 출간되었고, 1360년(공민왕 9)과 1413년(태종 13)에 각각 중간되었다.

이승휴는 『제왕운기』의 저술 동기를 고려, 즉 당대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본조군왕세계연대」의 말미에서 밝히고 있다. 그의 생존기간은 무신의 난과 30여 년간에 걸친 몽고와의 항쟁으로 왕권이 약화되어가고 있었고, 정치기강마저 해이해지던 때였다. 몽고와의 강화로 인해 고려가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되면서 자주국으로서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태였고, 원나라의 세력에 편승한 부원세력가의 반사회적인 책동에 의하여 국내외의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직간과 파직으로 연속된 정치활동을 하였다. 『제왕운기』도 1280년 충렬왕의 실정과 부원 세력가들을 비판한 10여 건의 폐단을 상소했다가 미움을 사 파직되어 은둔한 시기에 제작되었다. 국내적으로는 왕권의 강화를 통한 국가질서의 회복을 기원하고 있었으므로 실정한 군주, 왕권에 도전한 신하를 드러내어 폄론하고, 군신이 각각 갖추어야 할 유교적 정치이념을 제시하고 있다. 

즉, 『제왕운기』는 난세에 정치·사회 윤리의 재확립을 목표로 한 것이며, 그 가치기준을 역사에서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저술된 것이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척시에서는, 「제왕운기」를 저술하여 민족의 자주적인 역사 의식과 진취적인 기상을 과시한 동안거사 이승휴의 유적을 정비 복원하여, 그의 사상을 선양하며 향토문화유적의 보존·전승으로 지역 문화 창달에 기여하는 ‘사단법인 동안이승휴기념사업회’를 운영 중이다.


실정한 군왕과 왕권에 도전하는 신하로 인하여 국가 질서가 무너지고, 대외적으로 원나라의 간섭으로 인해 국가 존망의 위기에 있어,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동안거사 이승휴는 삼척땅 천은사에서 『제왕운기』를 저술하였다. 도합 33년의 시간을 예서 살았던 그는 7언 및 5언 영사시(詠史詩) 형태로 읊으며, 상권에서 중국역사, 하권에서 조선역사를 써서 양국 역사를 대등한 위치에 놓았고, 단군조선→기자조선→삼한→삼국→통일신라·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확보했다. 또한 유교사관을 통해서 현실을 비판하였으며, 국왕의 덕치주의와 신하의 충성을 강조했다(출전: 『삼척 고요한 아침의 땅』에서 정리)


고려 왕조와 조선 왕조를 연결하는 땅 삼척.

‘고려 멸망(마지막 공양왕 무덤 있는 곳)과 조선의 시작이 함께 하는 곳(이성계 조상묘가 있는 곳)이 삼척인가 했더니, 민족 정체성과 국가 기반이 흔들리던 고려왕조 시기에, ‘종2품 밀직부사 감찰대부’라는 높은 관직 경험과 두 차례 원나라 방문에서 얻은 바를 명쾌한 논리로 정리하여 ‘민족 대서사시’ 『제왕운기』를 쓴 곳이 영광스럽게도 또한 삼척이다.

세상은 자유평화 민주주의-과학기술 네트워크-인륜과 정의의 가치가 빛나야 하는 시대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처럼, 자유와 평화를 깨뜨리는 것들이 인간의 존엄을 무지막지하게 깨부순다. 세계10위권 선진국이지마는, 한반도는 이념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진 지 70년이 넘었고, 한국 내에서도 이념 차이로 우파와 좌파가 매일같이 아귀처럼 싸우고 있다.

4차산업혁명시대, 3나노(nm·10억분의 1m) 반도체 시대에, 사람들이 바른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생활철학이 시대가 바뀔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삼척, 이 『제왕운기』의 땅 삼척에서 정립된다면 한 번 더 멋있지 않을까(『무릉도원기』). (사진: 이승휴가 지은 천은사 용안당).


삼척 준경묘 영경묘 재실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 산호벽수관을 헐어서 지은 재실.

 1475년에는 동해시 북평 평릉에 있던 평릉도찰방 소재지를 근덕면 교가리에 옮겨 평릉관[일명 산호관]

이란 객사를 두어 강릉·삼척·울진·평해 지방의 16개 역을 관장하는 교통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나, 

420년 후인 1895년에 폐지되자 산호관 객사는 헐어서 삼척군 미로면 활기릉의 재실을 짓는데 쓰였다고 한다. 

 ‘준경묘’는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 ‘영경묘’는 그 부인의 묘다. 준경 묫자리를 찾아다니던 중, 이곳에 오니, 다른 데는 다 눈이 쌓여 있는데, 여기는 따뜻하여 눈이 녹아 없으니, 명당이라 생각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8방도 아닌 16方에 산봉우리가 하나씩 보이는 명당이더란다.

이 부근에 있는 금강송인 ‘미인송’은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과 혼례를 치렀고, 이곳 나무들은 숭례문과 광화문 복원에 쓰였다. 

이 재실에 쓰인 목재며 개와(기와)가 근덕면 교가리의 산호벽수관을 뜯어다 지은 것이라니, 근덕 출신으로 가슴이 미어짐을 느꼈다.


삼척 안정사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안의리 199.

이 사찰에는 ‘땅설법’이라는 특별한 설법을 하는 다여 스님과 신도들이 있어서 전승되고 있다. 땅설법은 부처님이 천상의 신들에게 ‘화엄경’을 설하는 것이 아닌, 스님들이 지상에 발을 딛고 있는 중생 눈높이에 맞춘 법문이다. 가르침[講]과 노래[唱], 연극[演]을 통해 흥겹고 쉽게 법을 전하며, 이는 불교가 대중에게 스며들며 민속과 다채롭게 어우러진 불교의례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출처: 법보신문). 

 스님들이 저잣거리에서 탈놀이와 인형극, 창과 같은 종합예술로 민중을 교화했던 불교민속문화 땅설법이다. ‘땅설법’은 동아시아의 전통 불교민속문화로 몇 년 전까지 구전으로만 전해졌다. 그러다 삼척 안정사 주지 다여 스님이 유일한 전승자로 밝혀지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서울에 ‘땅설법’ 전승을 위한 거점도량 ‘땅설법 아란야’가 서울 송파구 방이동 타워빌딩에 문을 열었다.

삼국시대부터 전승되다가 구한말 단절된 불교무형문화유산 ‘땅설법’. 전국에서 딱 한 분 다여 스님만이 이를 보전하고 있어서, 조계사에서의 시연, 국내외 학자들이 모인 학술대회 등으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태백시 구무소(求門沼)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산10-1

천연기념물 제417호로, 강물이 산을 뚫고 지나가면서 큰 석문(石門)을 만들고, 그 아래로 깊은 소(沼)를 이루었다는 뜻의 구문소는 ‘구무소’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구무’는 ‘구멍’ 또는 ‘굴 ’의 옛말이다. 다른 말로는 강이 산을 뚫고 흐른다고 해 ‘뚜루내’라고 하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 地理志)』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등의 고문헌에는 구멍 뚫린 하천이라는 뜻의 ‘천천(穿川)’으로 기록되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태백시에서는 ‘오복의 문(門) 뚜루내 전설이 열리다’ 

등으로 축제를 연다. 구멍이 뚫렸다는 ‘뚜루’가 영어 ‘관통’의 ‘thru’와 발음이 닮았다.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로 1410.

한국의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통도사, 법흥사, 상원사, 봉정암, 정암사) 중 한 곳.

신라의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했다. 사찰 앞 산에 위치한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제410호)은 역사·미술적 가치가 높아 국보 제332호로 승격되었다. 높이 9미터.

 이 절은 자장율사가 입적한 곳으로, 정선군은 ‘자장율사 열반길’을 조성하기도 했다.

 

 

언제 피었소?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주변 

대리석 난간에 핀 돌 버섯


“언제 피었소?”

“낮이겠소 밤이겠소? 어타 알겠소”


사람도 나이들면

머리 색깔도 달라지고

검버섯도 피고

쥐젖도 나고

검은 점도 많이 생기는데

돌도 똑같은 이치지요.

이것을 ‘세월’이라 합니다

 

정선군 몰운대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몰운리.

몰운대(沒雲臺)는 화암8경 중 하나.

몰운리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강물을 저 멀리 낭떠러지 밑으로 내려다보며 서있는 높은 절벽 위에 평평한 바위와 정자가 있다.

주변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빽빽하다.


오대산 상원사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211-14

오대산 상원사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을 지닌 사찰로 잘 알려졌다.

상원사는 월정사와 함께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하며, 실제로는 이곳에서 수행한 성덕왕이 705년에 절을 크게 중창하면서 ‘진여원(眞如院)’이라 하였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사찰로, 세조가 이곳에서 문수보살을 만났으며 병을 나았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세조는 직접 권선문을 작정하고 사찰을 크게 중창하였다. 이때 ‘상원사(上院寺)’라 이름을 짓고 왕실의 원찰(願刹)로 삼았다. 조선 왕실의 원찰이므로, 어룡기를 걸었던 당지주를 상징하는 황금빛 봉황대가 세워졌다.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月精寺)는 643년(선덕여왕12)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는 대형사찰이다.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五臺山)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 사리를 모시어 귀국한 뒤 적멸보궁(寂滅寶宮)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고향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영은사에서 득도하신 탄허스님이 이곳 주지로 계셨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국보 제48-2호인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고려시대)은 아마도 더 잘 보존하기 위한 공사를 하고 있었다.


평창군 알펜시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솔봉로 325

대규모 콘도시설.


여기 설치된 조각작품. 얼굴만 가리면 본전 다 들래놔도(드러내놓아도) 괜찮다는 건 아니겠지?

인간생명창조와 가정행복추구의 원천인 성스러운 ‘몸 가락’을 우스개로는 보지도 말고 우습게 활용하지도 하지 말자. 인간으로서 누리는 게 많고, 할 수 있는 게 많고, 가진 게 많아서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할 때에도.  경건한 마음으로 신성스럽게 이 영물을 다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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