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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8. 2022

직장예절2---주법(酒法)은 조선시대 고리타분이 아니지

직장예절2---주법(酒法)은 조선시대 고리타분함이 아니지


주법은 우리나라에만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요즘 사람들 눈으로 볼 때 주법은 고리타분한 조선시대 것이라 치면 안 될 소중한 직장 예절이고, 이것을 영어로 에티켓이라 부른다. 이것은 상관에게 아부하는 저자세를 가르치는 게 아니고, 양식을 먹을 때 테이블 매너를 지키는 것처럼, 우리나라 술자리의 고유의 예절인 것이다. 그저 굽실굽실하라는 강요도 아니고, 마음을 담고 애정과 존경을 담아 건네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전통이니, 주법은 잘 살리면 나쁠 것이 없고, 잘 살리면 좋은 것이 참 많다.

 

전무님이 사업소장으로 발령받다니

OO화력발전소에 발전부장으로 부임한 지 1주일만에 사업소장 이동발령이 났다. 갑자기 바뀐 이유는 생략하기로 하고, 문제는 새로운 소장님은 본사 전무님이 겸직발령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현장에 내려오신 전무님에게서 바짝 긴장한 우리들 부장 6명과 부소장은 엄한 훈시를 들었고, 말미에, “오늘 저녁에는 현재 교대근무를 하고 있는 직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테니, 여기서는 발전부장 한 사람만 참석하세요”라 말씀하셨다.  

 나도 전무님처럼 높은 분과 동석하는 일은 처음이었고, 그 때는 사업소 분위기가 뒤숭숭한 때라, 저녁 대화의 자리가 무척 긴장되었다. 직원들이 취중에 혹시 무슨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직원들도 아마 많이 놀랬을 거다.

전무님은 해안의 맛있는 횟집에서 저녁을 사주셨다. 

“교대근무에 고생들 많다”는 말씀부터 해 주셔서 우리는 황송할 따름이었다. 그러고는 현재 사업소 상황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씀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조마조마 언제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지 걱정을 했다.


젊은이에게 주법 질의

술이 한 참 돌자, 전무님은 바로 앞자리에 앉은 젊은 사원에게 질문을 하셨다.

 “자네는 우리나라 주법에 대해 아는가?” 

당황스러웠다. 저 질문은 왜 하시는 건지, “장가도 안 간 청년이 전통 주법에 대해 알면 무엇을 얼마나 알겠나? 큰일이네….” 그런 생각으로 그를 주시하는데, 어랍쇼? 이 직원이 아주 무슨 미리 전무님과 짜고 준비한 답변인 양, 주눅도 들지 않고 줄줄줄줄 주법을 설명했다.

참으로 행운이었다. 그 설명에 대해 전무님이 하나도 더 붙이지 않고 아주 흡족해하셨다.

그렇게 모두들 불안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젊은 사원 덕분에 우리도 위기를 넘긴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한국 고유의 미풍 ‘주법’ 

요즘 젊은이들은 좀 거북할 수 있지마는, 직장인이라면 주법을 알고 써먹는 것이 모르고 있는 것보다 좋다. 연세가 높은 분에게 서양식으로 한 손으로 술을 따른다든가…, 그렇게 하려면 서양에 가서 살아야 한다. 이제는 높은 분 옆에 가서 두 무릎 꿇고 앉아 한 잔 올리던 시대는 거의 없어졌으니 참 편해졌는데, 우리 주법은 고도리 규칙처럼 상당히 많다.


그 분의 오른쪽에 가서 권해야 하는지, 왼쪽에 가야 하는지, 아니면 식탁의 앞 자리가 좋은 지….

병에 글씨가 쓰여 있는 경우 글씨가 보이게 손으로 쥐어야 하는지, 안 보이게 해도 되는지, 잔은 물에 씻어서 권하는지, 휴지로 닦아야 하는지, 내 옷에다 닦는다? 그냥 권한다? 하긴 요즘 잔 돌리는 시대는 지났으니 그것 또한 편해졌다. 규칙이 줄어들었으니.

술병이나 주전자는 미리 옆에 챙겨놓아야 하고…. 왼손잡이일지라도 술은 반드시 오른 손으로 따라야 하며, 술은 70%가 좋은 지 어느 레벨까지 따를 거며, 따른 다음에 잔을 돌려받을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며, 그 분이 내 잔에 술을 따라주실 때 나의 두 손은 어떻게 해야 하며, 내가 술을 마실 때의 태도?.............................. 


언젠가 모 발전소에서 한 30여명이 회식을 하는데 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무개 부장, 아무개 부장, 아무개 부장, 세 사람은 왜 술도 한 잔 안 권해주지?”

답변이 돌아왔는데 뭐라뭐라 이유가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 다시 소리질렀다.


“자기는 못 마셔도 남한테 권할 수는 있잖아!?”


라 말하여, 다같이 웃으며 억지 춘향의 잔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많은 사람이 같이 마셔도 누가 잔을 안 권했는지 아는 나도 웃겼지만, 그들도 유쾌하게 웃었다. 

이렇게 회식은 즐겁게 마시고 노는 것이다. 

회식을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참석자들의 대화 내용은 대부분 회사를 사랑해서 하는 말들이니, 팀웍을 다지는 좋은 점도 많다.

  회식이나 주법에 대해 ‘케케묵은 규범’이라며 저항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게 좋다. 요새는 회식도 많이 줄어들었고, 권커니 잣커니 하는 일도 줄어들었고, 꿇어서 따르는 일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 에티켓 몇 개만 알면 좋고, 모르면 손해날 수도 있는 주법. 法이라는 말에 주눅들지 말고!


그대는 주법, 아니 회식자리 에티켓, 알 껴? 모를 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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