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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8. 2022

직장예절3---신/판/컴(身/判/Com)

직장예절3---신/판/컴(身/判/Com) 

 

예전의 조선 선비들의 기본 자세에 대한 엄격한 기준 같았던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요즘 아마 신언컴판으로 바뀐 것 같다. 書에 관한 한 붓이나 손 글씨를 쓸 일은 별로 없고 컴퓨터로 쓰니 말이다. 書와 言은 별도로 논하기로 하고, 몸의 운신과 처세 그리고 글씨쓰기 기능을 가진 신/판/컴을 말하고자 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주는 일상에 큰 도움이 되지만, 어느 것 하나 ‘노력’ 없이 되는 것은 없다. 

 

身 

아주 오래전에 친구와 강릉의 어느 디스코 홀에서 기분 좋게 한잔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저만큼 떨어진 좌석에 유독 눈에 띄는 여자 손님에게 나는 매우 정신이 쏠려 있었다. 

생김새도 환한 미녀이고, 옷차림까지도 우아한 얼굴 모습에 걸맞게 흰색 계통의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그녀의 몸가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르게 앉아서 글쎄, 달리 뭐라 표현할 말을 찾기 어려울 만큼 정숙하며, 품위있게 담소하는 모습을 보고서, 나도 모르게 나의 허리를 곧추 세우고 앉았었는데, 그만 이튿날 문제가 생겨버렸다. 한 두어 시간 그 여자처럼 기품있게 앉았던 것이 그게 다음날 요통을 일으켯던 것이다. 

이렇게 남이 잘하는 것을 잠시동안 따라 하기도 힘드는데, 언제 어디서나 몸가짐을 바로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신독(愼獨)이라 해서, 보는 이 없는 데서의 바른 몸가짐은,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마음으로 처신해야 할 만큼 자기 자신과의 겨룸에서 이겨야 한다. 혼자일 때, 남이 안 보는 비밀스러운 자리에서, 순간적인 욕망-욕정-욕심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어렵지만, 특히 술 취했을 때나-당황했을 때나-감동적일 때도.

또 나이 얼마가 되면 뭐 자기가 자기 얼굴에 나타난다는데, 걱정이 된다. 고고한 자세와 품성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람의 향기이며, 사람은 몸에 밴 품위만큼의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닐런지?

얼굴에는 권위-탐욕-애정-순수 들이 들어있다. 요즘이야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잘 보이지는 않지만….

 순간의 욕망-욕정-욕심을 이기지 못하여 유혹에 넘어가면, 그 다음 번에는 약간 마음에 걸리고, 그게 횟수가 잦아지면 “다른 사람들 다 하는데 뭐 나 혼자 고고할 건가?”로 된다.

매우 조심해야 한다. 내가 그래봤으니까 알지.


判 

사람의 궁극적인 추구대상은 ‘판단력(判斷力)’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상의 대소사에서, 생의 대 전환을 맞이하는 큰일에서, 우리의 현명한 판단을 요구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던지!

비정상을 가리키는 계기판을 보고 바르게 조작하는 일로부터, 국내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것 하나 우리의 능력을 시험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다.


판단력은 지식이고, 판단은 옳아야 한다. 


나는 신문에서 사설을 쓰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또 존경한다. 그런데 좌든 우든 사설을 쓰는 사람이 정치색을 가지면 판이 변질되기 십상이어서, 어느 한 쪽은 순 거짓말을 하기 십상이다. 참 어이없는 일이 된다.

내가 너무 지당하고 쉬운 말을 한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너무도 많은 무지와 편견 그리고 맹종과 맹신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 바르게 처신함을 아는 것도, 세상천지가 돌아가는 법도를 아는 것도, 상대방의 기분을 이해하는 것도, 올바른 길로 사람을 인도하는 것도, 정의가 무엇이며 진실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모두 판단력이다.


1980년경 영동화력에 근무하던 시절. 동해의 일출이 장엄하던 어느 아침 산책길에, 먼데서 해뜨는 구경을 왔다는 40대 아주머니 두 사람이 내게 묻던 말이 생각난다.


“저 해는 밤에 바닷물 속에 들어있다가 나오는가요?”


이처럼, 사람이 뭘 모르면 모르는 거다. 나도 똑같다. 몇 년 전에 시집을 한 권 냈는데, ‘일월오봉도’라 적어야 하는 것에다 ‘십장생도’라 적었다. 그 땐 몰랐으니 어쩌겠나? 독자들께 죄송하지.

판단력이 높은 수준에 오르도록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무엇을 알지 못하면 세상을 알지 못해 판단이 안 되고, 아는 것도 새 지식으로 업데이트해야 후지지 않게 되고, 정확하고 똑바로 알아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고, 올바른 판단도 덕성스럽게 내려야 하기 때문에,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공부하고 반성하기를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똑똑한 게 아니다. 

그렇게 조곤조곤 가르쳐줬다-그렇게 타이르며 말했다-그렇게 소리질렀다-그렇게 역성을 내며 엄청 혼을 내켰다-그렇게 결재서류를 냅다 던지며 사무실이 떠나갈 듯 소리질렀다-그렇게 혼을 내켜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목표를 달성했는가? 

목표만 달성하면 되고,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혀도 괜찮은가? 잘 판단해야 할 일이다.


목표로 삼아 추진하던 일이 잘 열매를 맺었나?

조직이 활성화되는데 도움을 주었나?

사리사욕-개인 화풀이-질투심에 그치지 않았나?

위로만 알랑거리고, 동료나 하급자에게는 냉혈한이 아니었나?

너무 계산적이고 인간미가 없었던 거 아닌가?

혼자 잘난 건 아닌가?

누구를 짓밟았나?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이가 멀어졌나?

겉으로는 인자하고 뒤에서는 검은 수작을 부리지 않았나?

중요한 일의 구체적인 수치를 알고 있나?

 

컴퓨터 

이제는 ‘신언컴판’으로 컴퓨터 시대다. 글씨 잘 쓰는 사람이 돋보이던 시절은 마치 요즘 팬데믹 시대에 잘 생긴 사람이 마스크를 써서 얼굴이 반은 가려진 것과 같다. 그래도 글씨는 잘 쓰는 게 아무래도 좋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정 안된다면, 그 대신 컴퓨터로 찍는 글씨를 잘 쓰면 된다.

보고서도 이메일도 작성에 필요한 전체 글자체 선택, 글자 굵기, 본문의 글자 크기, 다른 글자 혼용, 글자 색깔, 그림과 사진 삽입 등이 잘 선택되고 어우러져야 한다.  

 컴퓨터로 인해 신입이 상사를 가르쳐주는 시대이고, 신입은 상사에게 안 물어봐도 인터넷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대다. 고참들의 고민의 시대가 되어있다.

 이런 때일수록 경력자나 상사는 경험-지혜-덕성-그리고 애사심으로 신입에게 수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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