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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18. 2022

高麗氏와 고르바쵸프


1990년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출세한 韓國姓이 무엇이뇨 하니 禹씨 (우탄트 전 유엔 사무총장), 夫씨(부시 미국대통령), 史씨(사마란치 IOC위원장)에 高씨(고르바쵸프 소련 서기장) 등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그 중에서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소련의 고르바쵸프다.

 젊을 때 배운 바 대로 우리가 원수(怨讐) 중의 상 원수로 생각하는 공산당의 괴수인 그를 두고 농담으로 高씨라는 주장을 하는 나는, 그가 원래는 ‘高’씨 아닌 ‘高麗’씨라 생각한다. 여기서, 그 사람이 고씨든 고려씨든 무슨 얘깃거리가 되느냐고, 즉 그 사람을 왜 하필이면 話材로 삼느냐고 질문한다면, 

“그가 오늘날 동서화합, 냉전 종식, 독일 통일, 공산국 개방과 개혁의 기수라는 세계 역사상 어마어마한 일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소련 최고 권력자가 한국계인 高麗氏라면…. 高麗바쵸프라…. “하하 그건 웃기는 얘기겠지”. 다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세상에 만들어 낸 얘기라 해도 너무했지 그래 高麗氏가 세상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놀랄 것 없다. 실제로 日本에 가면 高麗氏가 살고 있다. 그것도 제법 많이.

 나는 책에서 우연히 읽었던 고려씨의 본거지에 가서 뿌리를 만났다. 일본연수기간 중이던 작년 7월 10일 그가 궁사宮司(신사의 책임자)로 있는 高麗神社로 찾아가 만났다. 

신사에 붙은 현판에, 高자와 麗자 사이에 久자가 작은 크기로 쓰여 있다. 사실은 고려가 아니고 고구려인데, 통상 고려로 불린다.  궁사의 이름은 高麗澄雄(고려징웅 - 일본식 발음은 ‘고마 스미오’). 고려징웅씨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경주에 갔을 때는 김유신 장군묘 앞에서 동행했던 그의 딸에게 “이곳에 묻힌 이가 우리 조상을 멸망시켰다”고 설명해 주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고려신사는 한일 간에 아주 유명한 신사여서, 한국에 부임하는 일본 대사들은 거의 빠짐없이 여기 와서 참배를 하고 한국에 부임한단다. 東京에서 좀 떨어진 그 곳은 기차역도 高麗驛과 高麗川驛 두 개나 있는 곳이고, 高麗山, 高麗川, 高麗川 여객, 高麗川 공회당, 高麗鄕 술, 高麗 Field Athletic 등 그 동네는 온통 高麗라는 이름으로 뒤덮여 있었는가 하면, 이 동네에는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큰 장승이 세 군데나 버티고 서 있었고, 신사 경내에는 高句麗식 가옥 한 채가 있어 일본의 주요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었다. 말이 고구려식이지, 지금부터 무려 1,300년 이전의 오래된 가옥양식이 저게 진짜인지 의심도 좀 했다. 

 고구려 보장왕의 후예인 이 분의 선조가 당시 외교관계로 일본에 왔는데, 고구려가 패망하였다

는 다는 소식에 일본에 계속 머물게 되었고, 그 때 일본정부는 그에게 고려라는 성을 하사하였으

며, 그의 후손들은 첫 아들에게는 高麗라는 姓을 붙여주고 있고, 징웅씨는 59대 長孫이다.

실제로 동경시내 주택가에서 나는 高麗씨 姓을 새긴 문패를 보았다. 그는 좌우간 고려씨 가문의 맏아들인 것이고, 둘째, 셋째들은 고려가 아닌 다른 성이 붙는다 한다.


 연수를 떠나기 전에 고려징웅씨에 관한 내용이 책으로 출간되어, 내가 사가지고 간 것을 선물로 드리고, 고려인삼주 한 병을 신전에 올려놓고 절을 하려는데, 한국식으로 절하라고 해서 일본식이 아닌 한국식으로 큰 절을 하고 나니 눈에 눈물이 감돌았다. 그 눈물의 의미는 독자들은 모른다. 암 모르고 말고. 내 이 불타는 애국심을 누가 알리요...허허.

지금도 내 방 책꽂이에는 그때 고려신사에서 기념으로 얻어온 “고려신사”라는 글씨가 새겨진 찻잔 한 개가 정중히 모셔져 있다.


 아니? 이거 뭐 高麗바쵸프 얘기하다 딴 얘기가 너무 길어졌쟎아?  그러니까 고려씨는 정말로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를 한 것이고, 소련의 그 사람을 고려씨라 부른다고 뭐 세금 더 내나? 사실 말이지, 高麗바초프가 출세한 것을 두고 우리 한국 동포들 덕분이라고 하지 않는가? 또,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 사람 생긴 게 어디 쏘련 곰같이 생겼나 뭐? 예쁘장하게 생긴 게 우리나라 사람 같기도 하지 뭘 그래!

 다른 것 다 차치하고라도, 그의 훤하게 벗겨진 이마에 나 있는 선명한 무늬 점을 잘 살펴보았는가? 그 무늬도 또렷한 ‘한반도 지도’를 보지 못했는가 말이다. 그는 통일된 한반도가 만주지방과 중국 본토 동쪽 산동성 부근까지도 관할하는 지도의 모습을 자기 이마에 난 그림같은 점으로써 역력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요즘 역사가들이 속속 밝히고 있듯이, 강대했던 고조선과, 전성기의 백제 그리고 저 이름만 들어도 속이 다 시원한 광개토대왕 때의 고구려가 지배하던 그 땅덩어리를 高麗바쵸프가 이마에 내걸고 전세계 매스컴에 거의 매일 나타나고 있으니, 그 사람이야말로 돈 안주고 부려먹는 우리나라 PR맨이지 무엇이란 말인가!

 독자들은 또 의아해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즉, “아니 뭐 그 사람 이마에 점이 있는 건 봤지만 그게 그런 거여? 다음 TV볼 때는 좀 똑똑히 봐야겠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또 의아해하실 것 같은 것은 “그런데 왜 그 사람 이마에 그게 있으며 그게 무엇을 뜻한다는 거여?”가 되겠지. 나도 처음엔 무심히 보아 넘겼는데 차츰 그게 아니더라 그 말이지. 

“그 점은 뭔가를 나타내고 싶은 게 있을 것인데” 하고 생각을 계속하던 중에 “바로 그거다!”하고 무릎을 탁! 쳤는데(아이고 무릎 아파라).

고려바쵸프 그가 북한을 개방시키는 압력을 넣는다 → 개방은 자유주의의 유입 → 민주통일 → 강성한 나라 → 古土수복. 일련의 씨나리오에 나는 나의 총명한(?) 머리를 긁적여 본다.

“앗! 나으 머리!”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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