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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8. 2022

무식과 지식---지리산은 지리산이고 설악산은 설악산이다

무식과 지식---지리산은 지리산이고 설악산은 설악산이다

 

조금만 알아도 무척 아는 척하거나, 잘 모르면서도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 나는 수양 부족이다.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많이 아는 척하면 안 되는데, 많이 보고-듣고-읽고-생각하고-늘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지식을 채우고 마음을 수련해야 한다. 논쟁이 생기면 일부러 져주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떻게 하든 반드시 이기려고, 지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며 속 좁은 짓을 많이 해왔다.


두산중공업 창원 본사에 근무하던 때. 

부산대학교 대학원에 겸임교수자격으로 강의에 나가고 있었는데, 어느 토요일 강의 중에 한 학생으로부터 강의와 관련이 없는 질문을 받았다. 

“교수님, 사진촬영을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지리산이 더 나아요 설악산이 더 나아요?” 

강의가 얼마나 재미가 없었으면 저런 질문으로 시간을 보내려 하는가, 기분이 썩 좋지는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 할 도리 없이 대답한다는 것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성실하고도 불확실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여러 모로 봤을 때 아기자기한 설악산이 더 좋다”고.

사실 나는 설악산 대청봉에도 올라 가보지 못했고, 지리산에 자주 간 것도 아니면서, 그냥 태생이 강원도 출신에다가, 지리산 사진보다는 설악산 사진을 좀 더 많이 본 것만으로, 신념처럼 대답한 무책임을 후회한다. 

산으로 치자면, 백두산, 한라산, 후지산, 에베르스트, 황산, 태산 모두 높고, 해안으로 치자면, 다도해, 하롱베이, 골드코스트 등 모두 좋고, 궁이나 성으로 치자면, 창덕궁, 오사카성, 자금성, 베르사이유 들이 모두 특색이 다른데, 자신이 가 본 곳과 안 가 본 곳, 정서적으로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자기가 아는 정도에서만 대답이 나온다면, 그건 결국 후회할 일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만, 나도 한마디 하자. 


“보는 만큼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견문을 넓히라고 말하는 것이지. 사람이 어떤 사물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닌 것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를 알지 못하면서, 얕은 지식으로 성급한 판단은 삼가야 한다.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더 큰 나무가 있다는 것을 보기 전까지, 어떤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제 고향에 있는 아름드리 고목이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라 믿게 마련이다.

옛 시에도 많이 나온다. “OO산을 보기 전에는 XX은 산도 아니더라, △△를 보기 전에는 ☆☆는 물도 아니더라” 하는 글귀.


LA 상공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끝없이 펼쳐진 바둑판 같은 도시가 우리를 압도한다. 그 규모도 굉장하거니와, 그 가지런함에 눈이 확 뜨이고, 입이 쩍 벌어진다. 

그런데, 이미 천년 전에 우리나라 신라의 수도 경주가 저런 도시형태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LA를 대하는 감흥이 약간은 달라질 것이고, 우리의 자부심도 새롭게 돋아날 것이다. 

그 때 이미 우리 선조들은 비가 와도 우산이 필요 없을 만큼, 길 가에 다닥다닥 이어 지은 기와집 추녀 밑으로 비를 맞지 않고 걸어 다녔다고 말하면, 서양사람들이 믿을까? 그 때 경주 주민들은 숯을 만들어 취사를 했기에, 저녁이면 밥짓는 연기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한다면, 서양사람들이 믿을까?

친구 김봉선이 한 말이 있다.

“수박과 딸기가 서로 다른 맛을 내는데도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물어보는 것은 어리석다”. 

이런 이치를 알면 묻지 못할 질문이요, 내용을 알면 설악산과 지리산은 특징이 다르다는 사실, 직접 가서, 그것도 아주 자주 가서 보면 아는 범위가 달라지는 사실. 

그래. 세상의 구석구석을 다 찾아 다닐 수는 없기에, 우리는 많은 독서-강의-영상 등으로 간접경험을 하여, 더 깊은 의미, 더 깊은 가치를 자꾸 새롭게 깨우쳐 나가는 것이리라.

 

OO회사 건설부문에 기술고문으로 입사하자 마자, 중요한 기술회의에 참석했는데, 어떤 주제를 가지고 한참 토론을 하다가, CEO께서 나에게 그것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잔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두 가지를 퍼뜩 생각했다.

하나는, 그냥 질문에 나온 영어 단어 몇 개를 들어보니 “그 정도야 뭐 나도 대강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발전소 건설회사가 신경 쓸 일이 많을 텐데, 건설분야 일도 아닌 것을 왜 깊이 다루려 하는 거지?”라는 생각.

기술고문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참으로 건방지고 주제의 선을 넘은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약간의 망설임 끝에, “네. 좀 알 것 같습니다”도 아니고, “압니다”라 말했다. 실제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런 것도 안다” 라고, 대단한 사람인 양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해댔다. 

그 때 내 나이 예순 다섯쯤 되었는데도 그 모양으로 책임감 없는 처신을 했다. 

내 잔머리 굴리기와 회의 분위기가 나를 거짓말하도록 등을 떠밀었다. 모른다고 하면 입사 첫 날부터 한전 처장 출신이 무슨 망신인가 말이야. 

하지만, “아 죄송합니다만, 저는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내용입니다. 공부 좀 해야 하겠습니다.”라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반성하고, 후회한다. 원 이렇게 속이 좁아서야….

 살아오면서 그런 넘겨짚기 많이 했는데…. 모르는 건 모르는 것이지, 아는 척할 일이 아닌데…. 하긴 그 반성 때문에, 이 글을 쓴 것이지만.


아! 그리고 이 글의 첫머리로 돌아가서, 무엇보다 강의는,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게-새로운 지식을-재미있게 배우도록 준비해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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