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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8. 2022

직무수행과 공치사---하는 것과 해주는 것

직무수행과 공치사---하는 것과 해주는 것

 

공치사’라는 말은 직접 해서도 안 되고, 듣기도 거북한 단어 중 하나다. 우리가 일상에서 대하는

모든 일은 내가 의당 해야 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도 내가 “했다”가 아니라, 내가 “해줬다”고 

생색내는 것은 공치사다.

가족을 포함해서 일상에서 대하는 모든 사람은 고객이다. 고객만족도 알고 보면 내가 할 일을 한 

것이지, 못할 일을 선심을 써서 해준 것처럼 말하면 이것은 자기 직무의 끗발을 과시하거나, 뭔가

보답을 바라는 불순한 의도로 하는 말일 수 있어, 처신도 말도 조심해야 한다.


경남 진해시청에 가면 ‘처음처럼’이라는 조각품이 있다. 

두 개의 사람 형상이고, 한 명은 허리를 굽혔고, 다른 한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스테인리스 금속을 가지고 속이 들여다보이게 얼기설기 사람 모양을 했는데, 심장 부근에 떡잎을 가진 새 싹을 넣어, 새싹처럼, 처음 공무원이 된 마음으로 늘 굽히고 공손하게 일하라는 처신 이치를 말해준다.


우리는 직장 동료 사이에서 또는 고객과의 사이에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도 마치 ‘선심을 베풀어 해 준 것’처럼 생색내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이들은 한 줌 권력의 씁쓸함을 모르고 제 자리를 권좌로, 권한을 권력으로 착각하는 사람이다.

군대에서도 ‘계급보다 끗발’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는데, 그렇다면 말단 보병이나 보초병은 대체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수직계급이 아니라 수평적으로도, 같은 과장이고 같은 부장이면서도 예산-인사-감사 담당이 더 높은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계급’이 존재하니, 위화감 때문에 에너지가 분산되어 그 조직은 불만에 차 있을 것이다. 조직사회 곳곳에서, 자연스레 이뤄지는 ‘스텔스 계급사회’는,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막기는 어렵다. 


개인이 받은 보직이라는 것은 ‘잠시 동안’ 누군가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리에 불과하다. 공기업에서 사장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보임된 사원도, 알고 보면 국민들로부터 위임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에 감격하면서, 국민의 충복으로 소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끗발로 생각하면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 일을 맡아서 내가 수행할 기회를 얻은 기쁨으로 일해야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에 힘이 들어가 권력을 누리려 한다면 필시 망하는 것이다.

내가 근무한 어느 민간기업의 부회장은 “이 직책은 제가 잠시 위임을 받은 자리라 생각합니다”

라 말했다. 그 큰 회사의 Owner 부회장의 겸손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 아닌가!  

직장에서 많이도 보아왔지. 그 위세 당당하던 사람들도 전출-보직변경-해임-퇴임 등 인사명령 한 줄에 시퍼렇던 위세 간 곳 없어지고, 순식간에 ‘따리붙던’ 추종자들이 단숨에 고개 돌리는 사실을!

“있을 때 잘 하라”는 유행가도 그런 맥락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그게 뭐 ‘권좌에 있을 때 많이 해먹어라’는 뜻이 아니지 않은가?


며칠 전 어느 군청 공무원 상당수가 부패에 연루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참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은연중 속으로 곪는 일은 부지불식간이기 때문에, 내부 감사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감사는 회사 내부의 보이지 않는 사풍(社風)을 건전하게 유도할 힘을 가졌으니 말이다. 감사의 기능이 다시 우러러 보이는 시간이다.

요즘 국민권익위원회가 많은 숙제를 풀어주니 속은 시원하나, 이명박 당선자 시절의 ‘전봇대’가 생각나서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숱한 규정과 이유를 들어 '안 되던 일'도 ‘높은 사람’의 전화 한 통화로 해결되는 세태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하긴 높은 자리는 그런 맛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일할까마는!

약자에게는 위세를 부리고 강자에게는 고분고분한 것이 권력의 속성이라지만, 진정한 강자는 그런 전화 한 통화를 하는 그 사람이 아니고, 고객인 국민인데. 

공무원, 공기업 등 어떤 공 조직이건 모든 구성원 각자가 스스로 진해시청의 ‘처음처럼’처럼 일야 한다.


“할 일을 해주는 걸로 착각하지 말자”. 


 많은 사람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을 가지고도 마치 뭔가 ‘베풀어 준 것’처럼 하면 안 된다.  공무원-공기업 입사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늘 가슴 속에 자리했던 ‘새싹’을 생각하고, 국민과 약자 앞에 몸을 뻣뻣하게 세우지 말고 굽히고, 고개를 숙여야 할 일이다. 

 그 ‘약자’ 속에는 이른바 ‘부하’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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