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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8. 2022

고객 만족---이발을 하면서

고객 만족---이발을 하면서

 

나는 오랜 직장생활에서 많은 실수를 했지만, 그 중에서도 말실수를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고객만족을 시키라 하는데, 내 고객은 누구인가? 상사, 하급자가 다 내 고객이요, 옆 부서와 옆 

사무실 사람들이 다 내 고객이고, 관련 지방 사업소나 협력업체 모두가 내 고객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고객에게는 우선 말부터 실수없이 잘해야 하고, 대하는 태도부터 겸손해야 한다. 


나도 섹시한 것이 좋다

나는 내 머리카락이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살기에, 이발을 할 때는 보통 짧게 깎고, 두어 달 지나면서 약간 장발이 됐을 때 다시 이발을 한다. 짧을 때의 그 쌈빡한 기분과 3년은 젊어진 느낌도 상쾌하지마는, 장발이 됐을 때의 뭔가 예술가 같아 보이는 기분과 뭔가 있어 보이는 중후한 느낌도 다 좋아한다. 이 말은 내가 헤어스타일에 무덤덤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멋진 헤어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나타내려 했던 건데, 표현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기왕에 머리를 깎으면, 자기 개성과 분위기에 맞는 머리를 한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며, 심지어 멋진 헤어스타일은 섹시한 일이 아니던가? 이왕이면 후줄근한 것보다 섹시한 것이 좋다. 

그런데도 나는 유별나게도 이발하는 시간이 긴 것을 싫어해서, 10분 정도면 후다닥 해치우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후딱’ 이발소를 즐겨 찾으며, 이발소에서는 머리를 감지도 않고, 그냥 드라이어로 털어 달라고 한다. 

그리고 원래 “중(스님)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진짜 거짓말이다. 나는 40대에 근 십 년 가까이 내 신사 머리를 내가 직접 깎으며 산 적이 있다. 거울을 보면서, 안 보이는 뒤통수 쪽도 손으로 더듬더듬해서 내가 깎았다. 단지 가위 하나와 빗 하나로.


돈도 안 깎아주면서 “추하다”고 말하다니?

언젠가 머리가 좀 긴 상태에서 이발소에 갔는데, 이발사 아가씨가 하는 말이 참 정떨어졌다.

“머리가 길면 추하게 보이지 않으세요?”

아니, 그럼 장발 시대에 산 사람들은 뭐 다들 추했다는 건가?

누구는 뭘 먹고 지한테는 안 줬나? 이거 이래 뵈도 발전소 소장까지 지낸 난데, 너무 싼 이발소에 와서 봉변을 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 아무리 내가 좀 긴 머리칼로 이발소를 찾았기로, 머리 깎는 게 직분인 여자가, 돈 받을 거 다 받으면서, 손님에게 그렇게 심술이 꽉 찬 싸가지없는 말을 함부로 하다니…매우 불쾌했지만, 속으로 삭이고 표현은 못 했다.

 이건 성질 살리면 싸움이 날 일 아닌가?

그 아가씨 말에 하도 속이 상해서 다음 번에는 이발소를 바꿔 다른 곳에 갔는데, 그곳 이발사 아주머니가 하는 말 또한 나를 무척 놀라게 만들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흰 머리카락하고 검은 머리카락이 이렇게 골고루 잘 섞여 있으세요? 어디 방송국에서 인터뷰 나온 적 없으세요? 저도 나중에 늙으면 선생님처럼 머리를 세고 싶어요”


그 날 내 이발을 맡기 직전에, 아주머니는 남편으로부터 “오늘 밤이 기대된다”는 전화라도 받은 건지, 아주머니 말은 나를 참 기분 좋게 해 주었다. 

그 다음 번에도 당연히 그 이발소에 찾아갔는데, 애석하게도 아주머니는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 다시 만날 수 없어 서운했다. 

세상에 흰 머리카락 잘 배합되었다고 인터뷰하는 방송국도 다 있는지, 이 나이 되면 그게 아주머니의 상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래도 기분 좋은 손님이 되었다. 

그리고 머리카락 세는 거야 부모님이 유전적으로 만들어 주시는 거지, 어디 제 의지대로 되는 것이던가? 혹시 “이발을 곱게 하고 나서면 곱게 늙은 할머니가 졸졸 따라올지 누가 알아?” 하는 심정으로 기분이 참 좋았다. 


말뿐 아니라 마지막까지 고객만족을 위한 서비스

같은 머리칼을 놓고, 추하다고 말하는 것과 방송국 인터뷰를 할 정도라고 말하는 것은 고객에게는 천지 차이다. 아무리 순간적으로 심술이 나 있었다 해도, 아무리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해도, 고객을 맞이하는 사람의 마음자세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누군가 그랬지. 사람을 처음 만나는 것은 그 순간에 그 사람의 일생이 통째로 내게 들어오는 것이니, 초면에는 특히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고. 이발사가, 찾아오시는 고객마다 그런 심오한 생각으로 대할 것 까지는 없겠지만, 비록 10분 간 머리를 깎고 가는 손님일지라도 분명히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진지할 필요가 있다.

 어떤 항공기 제작사는 그 비행기 제작이 끝나는 시점에 여러 명의 여성 엔지니어들이 와서 고객이 불편할 것들을 수 백 건 찾아서 다 고치고 Turn Key한단다. 그 속에는 작은 흠집도 포함하여 아주 소소한 것도 다 고친다고 한다. 

우리 발전소도 그렇게 건설해서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 그것이 고객만족 정신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서비스’라는 말이 ‘공짜’라고 생각하기 십상인데, ‘서로 비즈니스’의 준말이라 생각하면 어떤가? 마지막까지 자신들이 스스로 찾아낸 결함을 말끔히 처리하고 넘기는 것은 웬만한 회사에서는 잘 안 하는 일인데, 이게 그냥 공짜가 아니고, ‘서로 비즈니스’하는 정신이 함유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기왕이면 다홍치마 립 서비스

남이 고생해서 만든 물건을 받아서 쓰는 사람도 기왕이면 다홍치마다. 재미난 예를 본다.

“호떡 하나 얼마예요?”

“천원입니다”

“호떡이 뭐 이래 비싸지?”

“아이구 이게 요래 뵈도 최고급 밀가루로 만든 데다가, 기름도 아주 신선한 걸로 쓰지요, 게다

가 굽는 솜씨 하나는 정성 덩어리랍니다”

“아 예. 그래요? 그럼 천원 값 하고도 500원은 남겠는데요!?”

호떡을 사 먹는 사람은 먹는 내내 천원 내고도 오백 원어치를 더 먹는 기분이 된다.


다른 예를 보자.

“호떡 하나 얼마예요?”

“천원입니다”

“호떡이 뭐 이래 비싸지?”

“요새 물건 안 사 보신 분 같네요”

호떡을 사 먹는 사람은 먹는 내내 천원 내고도 500원 더 바가지 쓴 기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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