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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8. 2022

은밀하고 신속하게---전봇대와 말뚝 뽑기

은밀하고 신속하게---전봇대와 말뚝 뽑기

 

안 되던 일도 높은 분이 소리를 지르면 탁 풀리는 것에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정의의 수퍼맨이 하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으리!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규정을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고, 또는 나의 책임이라는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고, 복지부동 몸을 웅크리고 눈치만 본다. 

그러다가 ‘이명박 전봇대’가 터졌다. 그런 이 대통령은 이 나라의 말뚝을 많이 뽑은 걸까?

아니, 사람들은 요리조리 눈치를 보다가 재빠르게 그런 말뚝 더 많이 박은 건 아닌가?


이명박 전봇대

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 방문한 어느 공단에서 지적된 ‘전봇대’가 뭇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고, 그런 지적은 참으로 신선한 기운이라는 중론 속에, 이제 나라는 이런 전봇대 뽑기 현상이 벌어져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 같이 보였다.

그 전봇대에 한국전력도 얽혀 있었는데, 규정을 무시한 억울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을 거라 보지만, 아무튼 신속하게 전봇대를 뽑아버려 속은 시원한데, 아리송한 여운을 남겼다. 

손해를 감수하고 책임을 다 덮어쓰더라도 앞장서서 냅다 뽑아버리거나, “내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나서?” 하는 마음으로 미적거리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나머지 치명상을 입고 마지못해 뽑는 경우도 있을 텐데, 그래도 일찍 마무리된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눈에 안 보이는 말뚝

전봇대보다 크기는 작지만, ‘말뚝’이라는 물건에도 문제가 많음을 인식하자. 특히 묵시적으로 어떤 경계를 나타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말뚝일수록 문제가 크다. 

암암리에 이권에 관련된 경계를 지워 그 안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말뚝박기’는 마치 개들이 오줌을 찔겨서 제 영역을 표시하는 것과 같다. 우리 주변에는 기존 시스템, 권한 경계선, 친분관계 등 오랜 유착관계가 많아 이 또한 전봇대처럼 뽑지 않으면 안 되는 말뚝이다.

예를 들면,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서 일정한 품격을 갖춘 업체만 납품하게 하는 제도는 분명 그 취지가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새 업체가 신규 진입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돌파하기 어려운 말뚝이다. 그 말뚝이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적절한 Open방법이 필요하다.

 어느 업체가 어떤 ‘실적’이 있어야 한다는 그 실적 또한 일종의 말뚝박기다. 현재 제도가 매우 보수적이요 후진성을 면치 못하면서도, 새 방식을 도입하려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당연히 있겠지만, 그 보다는 오히려 관습에 따른 사규 규정과 사후에 감사를 받을 걱정 때문에 말뚝을 뽑지 못해서, 좋은 새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많다. 물론 새로운 것이 다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관습의 틀을 벗어야 하는 일까지도 그렇게 못하니 문제다.


   시대 발전을 몸뚱이로 막으려는 말뚝

연전에 프랑스의 어느 회사에 새로 취업한 딸의 얘기. 

무슨 일을 하라고 해서 임무를 받은 것을 ‘엑셀’ 프로그램을 써서 단 시간에 탁 해치웠는데, 그 사무실의 프랑스인들은 엑셀을 안 쓰고, 예전대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이를 배우려 하지도 않더라는 것. 

딸이 화를 많이 냈다. (허허. 그래야 한국이 빨리 프랑스를 따라잡지). 이런 예는 우리 주변에서 전산/전자화와 자동화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같은 맥락에서 밥그릇 보전을 위한 ‘저들만의 스크럼(scrum) 말뚝 박기’다. 그림의 Change 속에 들어있는 Hang(걸려있다)과 같이 꽉 붙잡고 못 가게 하는 못난이 짓을 하면 시대에 뒤쳐진다.

주변에서 남이 잘하는 일은 더욱 잘하게 도와주고 북돋아줘야 한다.


  주변이 잘 되는 게 내게도 아주 좋은 일이다. 그걸 복받았다고 말한다


옛날 발전소의 커다란 Valve 중에는 사람의 힘으로 돌리는 수동 밸브가 참 많았다. 어떤 것은 두 세명이 낑낑거리며 조작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게 여닫았다. ‘Valve Wrench’라는 공구는 랜턴과 함께 Operator의 필수 휴대품이었다. 지금은 거의 다 전동기를 부착해서 전기 힘으로 원격으로 여닫으니 얼마나 편해졌는가? 노동조합은 그런 것도 반대했어야 하나?

 수동에서 전동화를 지나 전산화라는 시대의 흐름. 그것을 몸으로 막을 순 없었다.

 시대는 더 발달해서 전산화에서 지능화 시대가 다가왔다. 이 도도한 시대의 흐름에도 반대자들은 ‘몸 말뚝 박기’로 물 막이를 만들겠는가? 그런 몸뚱아리는 되지 말아야 한다.


말뚝 뽑기

말뚝을 뽑는 작업은 과감하면서도-조용하고-치밀하게-그리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불합리나 불법을 시정하는 데는 인정머리가 필요 없다. 

그러나 세상에 나발을 불 듯 떠들면서 하는 개혁은, 실패한다는 사실을 떠벌리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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