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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8. 2022

감동 인간---전무님의 호의를 거절하다니!

감동 인간---전무님의 호의를 거절하다니!

 

발전사업단장 서석천 전무님은 나의 글 한 편을 읽고 당장 나를 본사로 발령내겠다고 전화하셨다.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언제 누구의 글을 읽고 전무님 같은 그런 정도

의 감명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주로 철 기둥과 파이프로 만든 발전소라는 공장에서, 소음 속

에서 일하면서, 감정은 메마르기만 한 것은 아닌가? 나도 남의 글을 읽고 깊이 감동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한전에서는 초급간부라 불리던 가장 낮은 간부인 과장시절에, 보령화력에 근무하던 어느 날, 느닷없이 하늘 같은 전무님의 전화를 받았다.

“당장 내일 서울 본사 발전처로 발령을 낼 테니 그리 알게”라는 서석천 기술전무님의 전화였다. 

시골 발전소의 최말단 간부에게 직접 전화하여, “본사에 가까이 두고 일을 시키고 싶다” 하시니, 그 고마운 전화에 내 기분은 하늘을 찌를 듯 기뻤다. 

3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직장인이 직장에서 평생 그런 전화 몇 번 받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바로 기가 딱 막혔다. 내가 집 얻을 돈이 있어야 가족들 데리고 서울에 가 살지….

그래, 좁은 소견에 안 되겠다 싶어서, 부소장님과 소장님을 동원해서, 본사 발령을 만류시키고 말았다. 

그 일이 내 인생에 잘한 건지, 잘못한 건지 난들 알 수가 있나? 본사근무가 무엇인가? 다들 한 번 가서 근무하고 싶은 곳, 뽑힌 사람들이 근무하는 곳 아닌가!

그전에 평 직원 때 살아왔던 대로 사글세라도 살면 되지, 그걸 거절해? 바보 멍충이…. 그것도 진짜 하늘 같은 전무님의 호의를 감히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과장이 그렇게 거절했다고? (예라이 삥꾸라야!).


그 무렵 나는 보령화력발전소에서 문학 동아리 격인 ‘글벗모임’을 꾸려가면서 분기에 한 번 ‘사락배(士樂岩)’라는 문예지와, ‘보화(保火)’라는 기술지를 발간해서 본사는 물론, 전국 발전소에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그 분기에 <사락배>에 실린 나의 글이 전무님 마음에 들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것은 직장인으로서는 감사하기 그지없는 일로서, 지금도 전무님을 생각하면, 그 때 너무나도 영광스러웠던 마음을 되살릴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그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시면서, 글 한 편 읽으시고 대단한 결단을 내리신 전무님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이 일을 회상할 때마다, “글의 힘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마음도 가지고, “부하의 글 한 편에도 감동할 수 있는 큰 어른도 계시는구나” 하는 놀라움도 가진다. 

글을 쓰는 것도, 글을 읽고 감동받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절대 경솔하게 써도 안 되고, 남의 글을 허투루 읽어서도 안 되고, 중요한 대목에서 감동을 못 받아도 안 된다.


2016년에 나의 시집 『무릉도원 가는 길』을 편집하던 출판사 ‘글마당’의 현 대표인 하경숙 여사가 “고문님 시를 편집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어요”라던 말이나, 현 SK 에코플랜트 윤혁로 대표의 “고문님 시를 읽는데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라는 메일이, 내게 크나큰 격려가 되었다. 2021년에 출판한 『무릉도원기』를 읽으시고, 흥분된 마음을 그대로 휴대폰으로 전달하시던 임광택 한전 선배님 부인의 전화도, 나도 어떤 글을 읽으면 감동을 받고-고마움도 좀 나타내기도 하며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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