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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9. 2022

직장인 필수품2---작문. 글을 잘써야 한다

직장인 필수품2---작문. 글을 써야 한다

 

글은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나타내는, 말하자면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 문제풀이다. 글은 서론-본론-결론이거나, 기승전결 뭐 그런 형식부터 잘 맞춰야 한다. 그런 구성(Plot)은 글의 기본인데, 이마저 못 꾸리는 사람이 있어서 문제다. 글은 사실을 세밀하게 기록하기도 하고, 메타버스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문학작품이면 ‘인간의 가치’를 나타내야 하나, 직장에서는 의도-방법-목표와 실천방안이 뚜렷해야 한다. 

 

보고서

직장에서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는 데 필요한 요소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점도 있다. 문장력은 꼭 문학작품이나 논문을 쓰는 게 아니더라도, 직장 내에서는 기안문이나 보고서를 잘 만드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이니까 글쓰기는 매우 중요하다.

기술적인 보고서는 일본인들이 잘 만들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한전 계장 초년병 때 나는, 발전소 터빈 정비를 위해 강릉 영동화력에 파견을 나온 일본인 기술자와 함께 현대양행 군포공장에 가서 며칠동안 터빈 부품을 가공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맘먹고 보고서를 썼다. 

깐깐하기로 정평이 난 김도식 소장께서 중요한 것 몇 가지 점검하시고, 확인도 하시고서는 별 말씀이 없으시더니, 나중에 들으니 터빈 보수 현장에 그 보고서 사본을 비치하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신 것을 알았다. 

내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라, 소장님 자랑을 하려는 것이다.

보고서는 왜, 어떻게 기계 가공했는가를 상세히 그림을 그리면서 알기 쉽게 썼다. 내게는 결코 일본인에게 뒤지지 않는 보고서를 만들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그 보고서 사본은 지금도 한 부 가지고 있다.


기획서

그런데, 사실 그런 보고서야 전개된 일의 내용을 꼼꼼하게 적으면 누구나 다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기획보고서를 잘 기안하려면 무엇보다 컨텐츠가 좋아야 하고, 핵심을 어떻게 잘 표현하느냐, 그를 위한 문장력도 필요하다. 사용하는 어휘 선택, 내용의 구성도 짜임새 있어야 하고, 요점은 부각시키고, 군더더기는 삭제하며, 참고 문헌이나 도형 삽입 등 외에도, 듣는 사람의 의구심과 불안한 걱정거리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보고서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어야 한다.  

요즘은 대체로  Power Point나 동영상을 함께 편집하여 쓰는데, 아무튼 글을 잘 쓰는 것은 작문을 많이 하면서, 고치고 보완하기를 계속 연습해야 한다. 

어떤 회사는 파워포인트가 내용을 너무 잘 꾸민 데다가, 더구나 말 잘하고 목소리 좋은 변사 같은 사람을 동원하여 발표하니, 청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사용을 금지시킨다고 한다. 

아마도 처음보는 신기한 발표기법 그 자체에 푹 빠져서 다른 비판적인 생각을 미처 못하게 되거나, 더 창의적인 생각을 못하게 되는 것을 지적한 것 같다. 파워포인트를 만드는 사람도, 발표하는 사람도, 너무 유려한 미사여구와 현란한 말솜씨는 경계할 부분이다. 자료작성기술과 발표분위기 꾸미기와 발표기술에 너무 정력을 많이 소비시키는 것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다.


  제대로 쓰기

중학교 때 형에게서 웅변원고 한 편을 받았다. 원래 어떤 선생님이 쓴 것인데 내가 일부분을 내 맘대로 수정한 것을 지도 선생님이 읽어보고 딱 그 부분이 좀 이상하다고 말씀하셨다. 

뭘 알지도 못하고 건드렸다가 딱 걸려, 그로부터 내가 분발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공전 5학년 때 ‘판장 갈매기’라는 원고를 쓰고, 재건중학교 학생에게 웅변을 훈련시켜서 삼척군 대회는 물론, 강원도 대회에서도 1등을 만든 적이 있어, “아 원고는 이렇게 쓰는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예전에 소장님이나 사장님을 대신하여 글을 써야 할 때가 몇 번 있었다. 그 분들이 바쁘시니 내가 대신 써서 수정을 받고, 승인을 받는 절차로 완성되었는데, 대체로 큰 수정없이 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그 분들 입장에서 글을 쓰려고 ‘많이 노력’했다는 점일 것이다. 

하급자가 상사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 건방진 말인가?

하급자라도, 늘 회사문제에서, 시의적절-선후 완급-상하 경중을 헤아려 고민하지 않으면 그런 글은 쓸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가장 최근의 예를 든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세계인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 한국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사를 만방에 표명했다. 그 연설은 국내정치에만 매몰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알 수 있다. 대체 저 ‘자유’라는 30차례 넘게 반복된 강조가 장차 어떤 일을 만들어낼지, 대통령이 어떤 생각으로 저것을 강조하는지, 그 생각을 알지 못하니, 이 연설문을 누가 대신 쓴다면, 미리-깊이 있게-체계적으로-진짜 실천가능한 방안이 무엇인지 알고 써야 하는데, 대통령에게서 그 내용을 직접 설명을 듣기 전에는 어떤 문장가도 그런 대필은 어렵다.

  그 자유를 어떤 가치로 실천해 나갈 것인지는 대통령 자신의 몫이므로, 일단 글짓기와는 다른 문제다. 만약 나중에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말로만 자유의 가치를 부르짖은 것이 아니고, 인류의 평화와 인권에 크게 공헌한 결과가 된다면, ‘자유라는 단어도 잘 썼고, 실천도 잘 한 언행일치의 훌륭한 대통령이’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잘 쓴 문장조차 싸잡아 “겉만 번드르한, 이율배반, 표리부동이며, 입만 살아서 좋은 말만 골라 했다”고 욕을 많이 얻어먹을 것이다. ‘자유’의 가치조차 형편없어질 것이다. 

 글도 잘 써야 하지만 정말로 실천에 옮겨야 제대로 된 인간이다.


초급간부시험 논문 작성

한전 그룹사에서 간부가 되는 길은 간부시험 합격인데, 시험과목 중에 ‘논문’이 포함되어 있어, 대상자들이 글쓰기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내가 보령화력에서 몇 차례 논문작성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과목 자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후배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논문을 잘 못 쓰면 초급간부시험에 떨어지기 일쑤였으니까.

 작문에서, 남달리 느낀 것을-남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남보다 큰 용기로 쓰지 않으면 감동을 주지 못한다. 


T.S. ELIOT는 이렇게 말했다.

 “보통의 인간들에게 중요한 인상과 경험은 글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없다. 글에서 중요하게 되는 것들은 인간 각 개인에 있어서는 소홀히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글에 있어서 진지한 감정의 표현을 감상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기술적인 우수성을 감상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주 뜻 깊은 정서를 표현할 때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한전 간부시험의 논문에 ELIOT의 철학이 들어갈 틈새는 적어 보이나, 작문에는 꼭 그런 마음을 가지고 쓰라는 뜻이리라.

오래전 회사를 그만두신 전무님 한 분은 “후배들에게 철학이 담긴 글 한 편도 못 남긴 것을 아쉬워한다”면서 떠나가셨다. 

그러니 우리, 길이 이름을 남길 名文을 쓰려고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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