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9. 2022

발표 기술---발표. 원고를 읽어대면 안 된다

발표 기술---발표. 원고를 읽어대면 안 된다

 

어떤 회사 재직 중에 사장님과 경영진이 모인 자리에서 뭔가를 발표한다는 것은 직장인으로서는 

영광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한전-서부발전-두중-SK건설에서도 나는 CEO 참석 하에 발표를 하는 

영광이 있었다. 나에게 주어졌던 특별한 기회였다. 경연대회와 같은 한국전력 전사 분임토의 발

표도 직접 세 번이나 참가했다. 자랑삼아 얘기해 본다.

 

‘2001 대화’ 발표

1986년 12월. 그 때 한전 사장은 통 크다고 소문난 박정기 님이었고, 이종훈 부사장님은 평사원에서 출발하여 부사장이 되신 정통 한전 맨이었다. 

한전 본사 기획처가 ‘2001 대화’라는 타이틀로 기획한 행사가 있었는데, 2001년을 대비해서 지금 미리 무슨 일을 준비해야 하는지, 15년 후를 예견하고-발표하고-토론하는 자리였다.

나는 4직급 발표자로 발탁되어 1,2,3직급 발표자와 함께 그날 토론장인 본사 임원 회의실에 가서, 본사 경영진, 처 실장, 재경 사업소장들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 긴장된 가운데 행사에 참석했다.

주제는 ‘바람직한 간부상 정립’. 

오전에 시작한 것이 12시를 넘겨도 안 끝난 바람에 사장님은 “1,2,3직급 발표는 들어봤는데, 4직급 과장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봐야 겠다”고, 비서에게 외부 오찬 약속을 30분 늦추게 하시고, 네 명 발표자 중 마지막인 보령화력 효율과장, 내 발표도 들어주셨다. 최하급 간부인 과장이 ‘바람직한 간부가 무엇인지’ 말하다니, 나에게서 무슨 별다른 내용이 있을까 마는, 끝까지 들어주신 사장님께 지금도 감사드린다. 

발표가 끝나자 사장님은 큰 목소리로 “어~ 보령화력 효율과장 웃기네!”하시면서, 심중을 알 듯 모를 듯한 멘트를 남기고 나가셨고, 이종훈 부사장께서 참석자들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해 주시면서, 말석에 있던 내게도 “발표 잘 했다”면서 악수해 주시고 칭찬해주셨다. 다른 경영진들도 함께 오셔서 “이런 사람 빨리 승진시켜줄 수 없느냐?”고 말하는 분도 계셨으니, 촌 놈이 출세했다는 것은 딱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한전 전체 사원 중에서 네 명이 선발되어 사장님과 중역, 고위 경영진 앞에서 발표를 했던 것은, 평생을 살면서 그런 영광을 얻을 기회가 어디 또 있겠는가!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 기회는 사실 기획처에 근무하시던 이경삼 선배님이 특별히 나를 발표자로 추천해주신 덕분이다. 잠시 보령화력에 근무하셨던 선배께서는 나를 눈여겨보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짧은 만남조차도 소중한 인연으로 가꿔야 하는가 보다.

사람의 기를 북돋아 주는 일 중에 가장 큰 것이 칭찬이라지 않은가? 부사장님의 그런 과분한 격려를 받고, 원래 칭찬받으면 더 잘 하려고 하는 나의 ‘*치공이 본성’을 말릴 수 없어서, 그 후 나는 내 나름의 가치있는 직장 생활을 계속했다.

 5년제 공업고등전문학교를 1회 졸업했지만, 당시 초급대도 아닌 초급대 수준의 전문학교 학제에 대한 대우 규정이 아직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여서, 인사기록카드에 3호봉으로 썼다가 1호봉으로 수정한 것을 보았다. 결국 고교졸업자 신분으로 입사한 것인데도 경영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한전이라는 회사의 아량이었다. P제철만 해도 고졸 입사 신분으로는 간부직을 맡을 수 없다.

  *치공이 본성: 옛날에 내 고향에 일 잘하기로 소문난 ‘치공이’라는 머슴이 살았는데, 사람들이 놀리려고 “너 일 참 너무 잘한다”고 자꾸 추켜주는 통에, 밥도 굶고 일하다가 그만 굶어 죽은 사람이 치공이다.


그 발표 후 사업소에 돌아와서 그 감격스러운 장면을 동료와 후배들에게 한참 자랑하는데, 유심히 듣고 있던 동료 하나가 ‘발표를 잘하는 기술’에 대해 물었다. 나는 뻐기듯이(?) 요점을 말해주었다.

남들도 다 아는 뻔하고 도식적인 얘기는 하지 마라. 내용이 제일 중요하다. 고생을 많이 하더라도 평소에 새로운 내용을 발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서서 하는 발표도 아니고, 교탁을 두고 하는 것도 아니며, 회의용 탁자에 앉아서 하는 발표이니, 얼굴 표정이나 몸짓을 못 쓰니, 강세(Stress)와 억양(Intonation)에 적절한 변화가 필요하다. 책에 인쇄된 내용을 그대로 줄줄 읽어대는 촌스러운 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관심을 갖더니’, 그 후에 그도 발표자로 뽑혀 발표를 했다. 그가 대단한 사람이다.


분임토의 발표

요즘도 가끔 분임토의라는 용어를 쓰면서 일을 하는지 모른다. 우리 때는 분임토의를 많이 했다. 전국규모 분임토의 발표대회가 있어서 나는 세번이나 출전했다.

삼척화력에서 평직원으로 나가서 장려상을 받았고, 영동화력 계장 때 2등을, 보령화력 과장(계장을 이름만 과장으로 승격한 시절) 때도 2등했다. 한 번도 1등은 못했지만, 전국대회 직접발표 세번에 세 번 입상이면 축구의 손흥민까지는 안 되어도, 실력이 좀 좋은 것 아닌가? 허허.

이런 발표 때는 직접 전지 크기의 차트 옆에 서서 지휘봉으로 짚어가면서 바로 설명을 하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지휘봉 짚는 사람 따로, 탁자에 서서 원고를 읽는 사람 따로 두는 방식은 재

미도 없고-실감도 안 나고-사람들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고, 질문이 들어오면 답변이 신통치 못할 수 있다. 


 발표자료 작성을 잘해야 한다

 한 50년 전에는 전지 크기 용지에 큰 고딕체로 글씨를 쓰고, 긴 지시봉으로 짚어가면서 발표를 했다. 그 큰 글씨를 쓰는 것은 정말로 고도의 기술이었다. 후에 트렌드가 바뀌어 2절지를 주로 썼으니, 우선 글씨를 쓰는 사람이 참 편해졌다. 

 이 방법은 OHP 즉 Over Head Projector가 나오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얇은 투명 비닐판에 글씨나 그림 또는 사진을 넣어서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발표하는 것이었는데, 이후 컴퓨터에서 Power Point를 만들어 Projector에다 확대시켜 보여주는 방식이 요즘 대세다.

 발표란 그 어떤 수단과 방식을 쓰건, 우선 그 내용이 좋아야 하고, 이해를 쉽게 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기술이 요구된다. 자료에다 어지럽게 많은 색깔을 넣는 것도, 지나친 미사여구도, 과장된 언어 사용도 삼가야 한다. 


발표자의 태도

다음으로는 발표자의 진지한 자세가 중요하다. 즉, 청중을 대하는 겸손하고도 진중한 몸가짐을 해야 하는데, 글자를 읽어대기만 하는 로봇 같은 발표-건방진 태도-히죽히죽 웃는 경망한 태도-지나친 농담-안하무인 태도를 금물이다. 또한 질문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도식적인 답변과 도발적인 답변을 하지 않는 태도가 청중을 존중하는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인 필수품3---언변. 말을 잘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