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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9. 2022

직장인 필수품6---정성 “미안해 벤자민”

직장인 필수품6---정성 “미안해 벤자민”


얼마 전 일이다. 한 3주 간 집을 비운 사이 베란다에 키우던 내 키만한 ‘컬러 벤자민’의 무성했던 잎이 말라서 다 떨어져버렸다. 집을 비울 때 충분하게 물을 주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다른 화초들은 괜찮은데 유독 이 나무만 변을 당한 이유는, 원체 잎이 무성했기 때문에 잎이 많을수록 수분도 많이 필요했던 것. 

같은 이치로, 무수한 부품들이 물고 돌아가는 발전소도 그만큼 보살핌이 더 많아야 한다.

발전소가 별 탈 없이 잘 운전되는 것을 두고 보통 “잘 돌아간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잘 돌리고 있다”라 고쳐 말하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그냥 하는 말로는 그 말이나 저 말이나 같지만, 조금 생각을 깊이 해 보면, 전자는 기계가 튼튼해서 절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후자는 거기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은 노력을 해서 문제없이 운전되도록 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그 큰 공장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땀 냄새가 배인 말로 고쳐 말하면 좀 더 재미도 있고, 공을 들이는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발전소 근무자들은 늘 설비 전체를 보듬고, 닦고, 조이고, 보살피는 정성이 들어가야 하고, 그런 마음으로 발전소를 관리하는 사람만이 ‘탈 없이 발전소를 운전되게 하는’ 보람을 만끽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아직도 “조직관리만 잘 하면 잘 돌아간다”는 생각을 가진 고위 관리자들이 있다면, 이야말로 비전문가가 조직만 믿고 범하기 쉬운 위험한 발상이다. 고위관리자 스스로 부하들이 갖지 못한 보약 같은 디테일 지시를 내림으로써 조직을 선도해야 한다. 그만큼 부하들의 지식과 경륜보다 고위층이 더 풍부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올라오는 보고나 잘 받고, 기일을 가차없이 엄수하고, 기율을 바짝 조이고, 내부 말썽을 잘 덮는 기술(?)만으로는 설비 문제를 예방하지 못한다. 

따라서 시의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설비는 당장에는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른지 모르나, 시한부 생명을 살게 된다. 거대한 발전소는 구석구석 제대로 된 손길이 뻗치지 않으면 ‘귀신처럼 삐쳐서’ 고장을 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고장을 막기 위해서 일상의 점검과 경상보수는 말할 것도 없지만, 전문기술에 의한 진단과 해석, 장단기적 투자와 보강, 정성을 모은 설비개선과 개조, 직원들을 다그치면서도 가르치고 북돋아야 하며, 이상 예측과 예방대책 등 세심하면서도 장기적인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겨울나무처럼 앙상한 가지만 남은 벤자민에다 내가 쪽지를 써서 걸어 붙였다. 

“미안해 벤자민. 얼른 새 잎 내야지?”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가지 중에서도 유독 쪽지를 건 가지에서 제일 먼저 연한 새 싹이 움텄다. 놀라움에 매일 그 크는 모습을 관찰하다가, 이번에는 새 싹 주변에 작은 개미들이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개미들이 새 싹 주위에 진딧물을 키우고 그 똥구멍을 빨아먹고 사는 것을 발견하고는, 요즘 나는 여기저기서 움트는 새싹들 주변에서 개미와 진딧물을 퇴치하느라 바쁘다.

잎이 여릴 때든 무성할 때든, 많은 보살핌이 있어야만 화초도 잘 자란다는 것은 그냥 놔두어도 발전소가 잘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러분은 발전소를 어떻게 잘 돌리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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