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앎이다
내
세상이 멈췄다.
그해 겨울은 나에게는 뼛속까지 시릴 만큼, 아니 세상이 멈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그런 날이었다
온몸은 붉은 반점으로 뒤덮었고 , 고열은 내 몸을 달구며 정신마저 흐려놓았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의식도 없이, 그저 아이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고통 속에서 제정신이 아닌 채로 용감하게도,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견뎠다.
열나면 해열제 때려먹고, 약발 받으면 자고 , 그렇게 생활하다가 결국 그 해열제조차도 몸에 반응해주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병원이라면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바늘 보면 소스라칠 정도로 병원을 끔찍이 싫어하는 내가 제 발로 해열수액을 맞겠다고 응급실로 기어들어갔다
어떤 몸상태로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기억이 아득하다
그렇게 들어간 응급실..
나는 그 차가운 곳에서 더 이상 나갈 수 없었다
“ 잠깐 집에 좀 다녀올게요 (집에 아이들이 기다려요..)”
“ 안됩니다 지금 나가면 사망합니다. 보호자 어딨 나요? 보호자 오시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사망이라는 말을 들어보다니.. 살면서 사망이라는 단어를 병원에서 들어 볼일이 얼마나 있을까...?
응급실의 차디차고 무거운 공기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차가운 분위기와 의사들의 경고만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망이라고? 나, 죽는다고? 그 말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저 얼떨떨했다.
몬 소리인지.. 사망이라고?? 내가??? 건강했던 내가???
빨빨거리며 다니느라 집에 안 붙어있었던 에너자이저 같은 내가????
뭔 돌팔이 같은 말을 ….. 죽을 수 있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내 몸은 내 마음을 거부하는 듯했고,
그저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던 그 순간, 아이들 돌보러 갔던 남편에게 전화해서 엉엉 울어버렸고 , 내 울음에 남편은 그 길로 아이들을 집에 다시 나둔 채로 병원으로 달려왔고 그때부터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치의와 남편과의 대화에서 심각성을 대강 눈치챘지만 , 정신이 아득했었다
그 길로 바로 병실로 옮겨지며, 나의 몸은 또 다른 세계로 끌려갔다.
여러 가지 찌르고 뼈를 갈아 넣은 검사 후 내 병명은 급성림프구성백혈병.. 백혈병..
목에 통과하지도 못할 만큼 큰 약을 먹고, 머리는 양갈래로 묶인 채, 쇄골 밑에 주사가 꽂혔다. 그때부터 내 몸은 더 이상 내가 아닌 것 같았다.
항암은 약이 독해서 팔로 맞을 수 없다고 …. 가슴팍에 중심정맥관(히크만), 쇄골 쪽에 구멍을 내서 주사관을 삽입한다 심장 쪽까지 ,
주사 맞는 것도 싫어해서 독감주사도 매년 안 맞았는데 , 한방에 이리 큰 게 걸릴 줄이야,
혈액암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그 골수검사를 받았다. 내 엉덩이에 드라이버처럼 생긴 기구가 들어갈 때, 나는 정말로 내가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고통 속에서, 내 마음은 온통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또 다른 시술, 척수강내 항암 치료가 이어졌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그 아픔이 내 몸을 관통했다. 내가 겪은 모든 과정이 그냥 지옥구덩이 같았다.
" 왜 하필, 내가? "
사람들을 신경 쓸 생각조차 못한 채로 병실커튼 치고 엉엉 울었다.
내가 그렇게 나쁜 살았던 걸까. 살아온 세월을 되뇌어보았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나 죽으면 어떡하지? 애들이 너무 어린데……..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 쓰여서 마지막은 늘 새드앤딩으로 끝나는 불치병 같은 병이.. 왜 하필 … 나야???
“도대체 왜?” 하늘을 향해, 그저 엉엉 울며 울부짖었다.
내가 그때 할 수 있는 건 커튼뒤로 엉엉 울어버리는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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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