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잃기까지 너무 많은 날들이 필요했다.
“너 암진단금 그거, 엄마가 들어둔 거니까 나한테 줘. 네 동생도 주고, 나눠 쓰자.”
하……
입원해 항암 치료에 지쳐 눈조차 제대로 못 뜨던 그때, 그 말이 내게 날아들었다.
9살 터울의 내 동생은 엄마의 예쁨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엄마의 넉넉한 사랑을 언제나 듬뿍 받았던 아이.
그 아이가, 내가 입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내 두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4살, 7살. 아직 손 많이 가는 나이. 그 고마움을 모르지 않았다.
아이 둘을 하루 종일 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도 아이를 키워봐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식까지 마치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작게라도 고마움을 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땐 그런 걸 챙길 여유조차 없었다. 그땐, 그저 ‘살아야 한다’는 것 하나만을 붙잡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진단금 나눠쓰자”는 말은 숨조차 멎게 만들었다. 아니 "넌 이제 그만 살아도 돼"라는 말과 같았다.
백혈병은 그저 몸 어딘가 잘라내고 끝나는 병이 아니다. 피 속에 암세포가 흐르고, 내 피를 빼내고 남의 피로 버티며 감염의 위험과 싸워야 하는 병.
재발항암 한 달 동안 계속 달고 있어야 하는 수액.. 그 한 달에 몇천만 원이 우습게 깨진다. 그것도 두 번을 맞아야 하고, 약값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걸 감내하기엔 내 몸뚱이 자체가 남편에게는 난 민폐라고 생각했는데, 치료비료 써야 하는 진단금을 내놓으라니.
하루에도 수십 번, 작은 미열에도 병실이 술렁이는 그런 병이었다.
그 모든 걸 겪으며 누워 있는 내게 , 돈 얘기를 꺼내는 사람들.
화낼 힘도, 대답할 힘도, 심지어 감정조차 낭비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이 들렸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 툭 하고 끊어졌다.
‘아… 결국 그랬구나. 며칠 동안 정성껏 해다 준 밥들, 그 모든 것들이… 돈 때문이었구나.’
서글펐다. 너무 서글펐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고쳐 쓸 수 없다는 옛 어르신들 말이 맞다
아플 때 해 온 음식들 덕에 어릴 때의 아픈 기억들이 치유되는 중이었는데.. 너무 따스워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죽고 사는 경계에서 희망 하나 붙잡고 버티는 딸에게 진단금을 나눠 쓰자니. 엄마라는 이름으로.
병원 간이침대가 불편하단 불평, 보호자 식사가 비싸고 맛없다는 불만. 내가 부모였다면,
내 아이가 아픈 병상에 누워 있었다면, 병원침대가 불편할까 걱정하고, 살림이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돈 생각은 뒤로 하고 입맛 잃은 아이를 위해 뭐든 해먹이고, 한 입이라도 먹는 모습에 "다행이다 다행이다 "눈물지었을 텐데.
역시 우리 엄마는 달랐다.
“이게 얼만 줄 알아?”
“다 나으면 효도해라!”
그런 말들이 내 심장을 짓눌렀다.
나는 단지, 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 살 이유를 잃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는 하루 종일 아무 생각 없이 누워서 잠만 자니 좋겠다.”
그 말. 그 말에, 나는 살아내어도 환영받지 않을 거 같아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졌다.
부모라는 이름, 그 아래에서 나는 단 한 번도 ‘무조건’ 기대어본 적이 없었다.
애써 꺼내지 않았던 기억들, 너무 많아서 이제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저리다.
5년.
완치 판정을 받고도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백혈병.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먹구름 같은 병.
엄마는 고쳐질 수도 고쳐질일도 없었다 절대로.
그래서 결국 나는,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내 마음과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이기적이란 말을 감수하고,
엄마를 등졌다.
그 선택이 내 얼굴에 침 뱉는 일일지라도. 나쁜 딸이란 소리를 들을지라도.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가스라이팅과 나르시스트즘으로 사람을 조종하던 엄마.
지금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민폐만 끼치며 , 딸보다 강아지를 더 사랑하며 애견 모임에서 웃고, 딸이 자길 버렸다며 그 년이 죽어도 당신에게 알리지 말라시며.. 춤바람 나서 춤에 미쳐 사신다.
끙끙 눌러 참고 곪고 곪아서 진물이 나고 터지고, 결국은 굳은살처럼 박혀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엄마’라는 이름.
그리고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독하게 중얼거린다.
“당신도, 제발!! 이 지옥 같은 병에 걸려보라고. 천벌을 받아보라고.”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살아있는 부모를 안 보고 사냐고 묻는다면.
#절연
어버이날 발행되어야 할 글이, 발행이 안되었네요
늦었지만 어버이날, 어머니 대신 하늘에 계시는 할머니를 그리워해 봅니다.
이제까지 어머니와의 절연의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더 많은 이슈가 많지만 , 글을 쓰다가 앎 걸릴 거 같아서 요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하하하하하:)
춤바람 휘몰아치며 당신이 잘 키웠는데 배신한 딸, 욕하며 지내고 계시는 어머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