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삼매경 2편
잠에 취해 전화를 받았는데 화들짝 놀랐어. 시계를 보니 이미 약속된 면접 시간이 15분이나 지났더라구. 짧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동안 사태를 파악하면서 말했지. “예, 지금 가고 있습니다.”
난 아무런 준비 없이 대학교를 졸업했어. 하고 싶은 게 없었으니 뭘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어. 대책 없는 참 못난 놈이었지. 학교를 다니는 내내 전공 강의실보다 영화 동아리방을 더 많이 들락거렸고, 교재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더 많이 봤어. 같은 과 애들도 나를 잘 모르는 다크 템블러 같은 존재였지. 공부를 안 하고 못했으니 당연히 성적도 좋지 않았지. 학사 경고를 두 번이나 받았어. 웃기는 사실은 난 고등학교에서 문과였는데, 대학교 전공이 전자공학이었어. 수포자로 살았는데, (사촌)매형이 남자는 공대를 나와야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다고 그래서 이과 전공자가 되었지.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 대학교가 내 삶에서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어 그만두려고 했는데, 사람 구실을 하려면 지방대라도 졸업을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에 졌어. 정말 답이 없는 답답한 인생이었지.
그냥저냥 지내다가 졸업을 앞두게 되니 막막했지. 남들 따라서 이력서도 내고 면접도 봤지만 잘 될 리가 없잖아.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앞으로 어떤 일이든 직업을 구하면 평생 그 테두리 안에서 구속된 삶을 살겠구나.’ 지금과 달리 25년 전에는 한번 들어가면 거기서 뼈를 묻는 평생직장이 많았어. 삶이 단순한 시대였지. 그러니 나도 먹고사는 문제에 얽매어 평생을 돈돈거리며 살다가 다 늙어서 ‘아, 이게 아닌데.’ 하며 죽겠구나 싶었어.
그래서 딱 1년만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기로 했어. 혼자 살아보자고 결심했지. 그런데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돈이었어. 부모님께 손을 벌릴 상황도 아니었거든. 취업을 하기 전에 맘대로 살고 싶어 집을 나왔지만,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생각과 현실의 맥락이 전혀 안 맞는 초라한 처지였어. 그때 찾은 일자리가 모텔이었어. 건물 옥상에 부엌이 딸린 옥탑방과 저녁 식사를 제공해 준다니 얼마나 좋아. 근무 시간이 밤 9시부터 새벽 3시까지니 낮에도 뭔가를 할 수 있겠다 싶었지.
이때 내가 선택한 ‘하고 싶은 것’은 오토바이였어. 속으로는 내 멋대로 산다고 폼나게 다짐했지만, 아르바이트를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선택은 한계가 명확했지. 모텔로 회귀하는 일상에서 일탈은 영화와 오토바이뿐이었어. 하루에 2~3편씩 영화를 보는 단조로운 생활이 한 달을 넘어갈 때, 문득 오토바이가 떠올랐어. 형편에 맞는 중고를 사서 영화 타락천사의 하지무(금성무)처럼 도시를 떠돌았어. 125cc로 시작해서 398cc를 거쳐, 나중에는 748cc까지 바꿔가며 나만의 유영에 가속감을 더했지. 오토바이를 사려고 낮에도 페인트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면허를 땄고, 천성이 소심하여 뭐라도 배워야 취업에 유리할 거 같아서 저녁에는 웹프로그래밍 학원을 다니기도 했어. 그렇게 살다 보니 1년이 후딱 지나갔어.
나와 약속한 1년이 끝나갈 무렵, 모텔에서 벗어날 직장을 얻기 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어. 하루에 서너 시간씩 잡코리아와 인크루트를 검색하면서 보냈지. 대략 이십 군데에 이력서를 넣으면 한 번의 면접 기회가 주어졌어. 아무런 자격증이 없는 지방대 졸업생의 취업은 만만치 않았어. 심지어 자기소개서에 취미로 모터사이클을 썼다가 면접에서 폭주족이었냐는 조롱도 받았지. 배달과 폭주족이 오토바이의 대표적 이미지로 사회에 각인되었던 시절이었어. 예전부터 오토바이가 과부 제조기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었고, 타는 사람들을 보면서 '팔이나 다리 중 어디 한 군데는 곧 부러지겠구나'라고 여겼어.
'평생 아르바이트를 할 팔자인가?' 거듭되는 좌절로 자기소개서를 고치기에도 지쳐갈 때쯤, 모텔 카운터 구석에 쌓인 신문이 눈에 들어왔어. 그전까지 1년 동안 같은 자리에 놓여 있던 신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무의식 중에 펼쳐 들었지. 대충대충 넘기면서 훑어보다가 할리데이비슨 코리아의 구인 공고를 발견했어. 그때 처음 '그럴듯해 보이는 일 말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자기소개서 상단에 할리데이비슨 로고를 큼직하게 붙여 넣고, ‘나 오토바이 무지하게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대형 오토바이 면허도 있고, 다양한 배기량을 타봤어요. 꾸준히 잡지도 읽어서 이런 것도 알아요.’라고 나를 포장했지.
1차 서류 심사에 합격하고 면접일 통보를 받았어. 그런데 면접일에 큰 문제가 발생했어. 모텔 일이 새벽 3시에 끝나서 늦게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된 거야. 면접이 오전에 있었는데 못 일어난 거지. 알람이 꿀잠에게 졌어. 인사담당자의 확인 전화가 알람인 줄 알고 잠에서 깬 거야. ‘이게 무슨 일이지?’ 전화를 받고 사태를 파악하는 2~ 3초의 침묵이 흐르는 동안 갈까 말까를 수백 번 고민했어. '어떤 말을 해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도움을 받기 위해 지금까지 봤던 소설과 영화 속의 상황을 뒤적거렸어. 그리고 말했지. "지금 가고 있습니다.” 내가 탔던 그 어떤 오토바이보다 빠른 속도로 씻고 후다닥 택시를 탔어.
1차 면접을 보면서 느꼈어. ‘떨어졌구나.’ 한참 늦은 데다가 말도 제대로 못 했거든. 질문에 답변을 하면 더 할 말 없냐고 자꾸 물어보더라구. 지각을 눈감아 줄 만한 특출난 외모도 아니고, 압도적인 매력이 철철 넘치는 것도 아니니. 괜히 택시를 타고 안양에서 서울까지 왔나 싶었지. 그날 면접을 위해 본사로 왔던 이사님이 내가 도착하기 전에 다시 지점으로 돌아갔다니 말 다했지.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사님이 나를 지점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대. 뭔가 좋은 일이 있으셨나 봐. 아니면 그날 면접을 본 인원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는지도 모르지. 지점으로 이동해서 바로 2차 면접을 보고 합격 통보를 받았어. 면접 때, 근엄한 이사님의 표정이 밝게 바뀐 것은 취미로 써낸 영화 얘기를 하고 나서였어. 단편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경험과 즐겨 보는 영화에 대해 두서없이 떠든 것 같은데 함박웃음을 지으셨어. 오토바이 회사의 면접에서 영화 얘기로 점수를 따다니 참 의외였지.
할리데이비슨 코리아의 면접을 앞둔 며칠 전 삼보컴퓨터에도 갔었어. 내심 큰 회사에 가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는데, 삼보컴퓨터는 떨어지고 할리데이비슨 코리아에 붙은 거야. 운명이구나 싶었지. 다들 알다시피 삼보컴퓨터는 프로 농구팀을 보유할 정도로 큰 회사였어. 그런데 2005년에 부도가 났어. 만약 그곳에 들어갔으면 내 인생도 파산의 물결에 휩쓸렸겠지.
난 입사하고 좋아하는 취미와 관계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좋았어. 난 평생을 소심한 내성적인 사람으로 살았거든. 낯을 많이 가리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말도 못 하는 성격이야. 그래서 그때는 사람보다 오토바이와 더 친하게 지냈는지도 몰라. 그런데 말야. 내가 합격한 부서가 하필 영업부였어. 공식 직함 모터사이클 영업부 사원. 지원할 때 잘난 재주가 없으니 다른 부서는 쳐다보지도 못했거든. 내 업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수입 오토바이를 파는 일이었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