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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Oct 20. 2024

오토바이1 #막막한삶에서몰입할수있는취미하나가나를살렸어

오토바이 삼매경 1편

 “나에겐 꿈이 없었다.” 

1997년에 개봉한 영화 비트의 첫 대사야. 이 대사에는 고등학생인 주인공 민(정우성)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20대 초반 군대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그때까지의 내 삶도 그 대사와 별반 다르지 않더라구. 제대를 하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마찬가지였어.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


 이 영화에서 민이 타던 오토바이 때문일까? 아니면 술에 취해 탄 택시의 창 밖으로 앞바퀴를 들면서 나란히 달리던 오토바이의 잔상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르바이트하면서 탔던 쬐그만 스쿠터 때문일까? 20대 초중반의 나는 종종 제법 괜찮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상상을 했어. 막막하고 무기력한 현재를 뚫고 그저 맘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쏘다니고 싶은 심정의 염원이었는지도 몰라. 이유가 어쨌든 오토바이는 그 자체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 최초의 꿈이었던 거 같아.


 내가 오토바이라는 물건을 처음 만진 건 10대 중후반쯤 이었어. 시골에 놀러 갔다가, 식당을 하시는 고모가 몰고 다녔던 작은 오토바이를 탈 기회가 생긴 거야. 그 오토바이는 한국에서 배달용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모델이야. 조작이 간단하고 타기 쉬워서 거의 모든 중국집의 배달을 책임졌지. 고모는 면허도 없는 비슷한 또래의 사촌 형제들이 한 번씩 타도 된다고 흔쾌히 허락을 했어. 우리가 놀던 작은집이 한적한 곳이었기에 가능한 판단이었지. 차도 잘 안 다니는 곳에서 설마 별 탈이 있겠나 생각하셨겠지. 근데 그 별이 나에게 탈을 만들었어. 동생이 무사히 타고 와서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오토바이와 함께 거세게 나뒹굴었어. 오토바이에 기어가 들어가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건네받으면서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돌린 거야.




 오토바이는 자동차의 엑셀에 해당하는 가속 장치가 오른손 손잡이에 있거든. 이걸 흔히 스로틀이라고 하는데, 손잡이를 돌리는 만큼 속도가 빨라져. 내가 오토바이를 건네받을 때, 무의식 중에 손잡이를 돌렸는지 걔가 툭 튀어나가는 거야. 깜짝 놀랐지. 그때 손에 힘이 들어가 스로틀이 더 돌아갔는지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라구. 걔가 나가는 속도에 맞춰 난 뛰게 되었어. 브레이크를 잡으면 되는데 그럴 정신이 없었어. 나는 제대로 안장에 앉을 틈도 없이 손잡이만 잡은 채 앞서가는 걔를 놓치지 않으려고 힘껏 달렸지. 그러나 내 긴장감과 비례하여 속도는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 몸이 뒤쳐지니까 스로틀이 더 돌아가고, 한 30m쯤 죽기 살기로 쫓아가다가 한계에 다다랐어. 만화처럼 원을 그리며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달리던 내 다리는 뒤엉켜 버렸어. 나는 오토바이의 손잡이를 놓치면서 앞으로나란히 자세로 고꾸라졌고, 오토바이는 탄력을 받아 앞으로 멀끔하게 혼자서 달리다가 벽을 들이박고 푹 쓰러졌지.


 첫 경험은 실패였지만, 두 번째는 달랐어. 20살에 군 입대를 눈앞에 둔 시점이었지. 휴학을 하고 용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마지막 선택이 도시락 배달이었어. 친구와 함께 매장 앞에 붙은 배달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보고 즉흥적으로 지원을 했지. 일반적인 아르바이트에 비해 시급이 높아서 지원을 했지만, 둘 다 오토바이를 탈 줄도 몰랐어. 처음으로 사업을 하는 여사장님과 매장을 오픈하면서 급하게 직원이 필요했던 상황 그리고 휴학생이라는 신분이 맞아떨어지면서 우리는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어. 다행히 첫 경험 때와 달리 배달용 오토바이는 작은 스쿠터였어. 기아가 없어서 타기 쉬었지. 그만둘 때까지 사고 한 번 없이 잘 탔어.


 그 스쿠터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어. 모든 세포가 동시에 날뛰는 흥분이랄까? 아니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순수한 환희랄까? 스쿠터에 앉아 스로틀을 당기면 나만 존재하는 다른 차원으로 빠져들었어. 온몸에 부딪치는 바람은 장소와 시간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지구를 느끼고 했고, 달리면서 스치는 사물들은 우주에서 유영하는 듯한 기분을 선물했지. 노출된 신체와 달리는 기계의 결합이 만든 신비한 체험이었어.


 사장님이 중고로 산 스쿠터는 낡아서 볼품이 없었고, 추운 날에는 시동도 잘 안 걸리고, 최고 속도가 50km도 안 되었지만 난 그 녀석을 정말 아꼈어. 일을 시작하고 얼마 뒤에 사장님은 우리를 믿었는지 출퇴근에 스쿠터를 이용해도 된다고 허락했지. 그래서 배달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도 한두 시간씩 스쿠터를 타고 마냥 돌아다녔어.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지만 나만의 우주에서 떠도는 게 좋았어. 콧물이 줄줄 흐르는 겨울인데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처음으로 능동적인 몰입에 빠졌던 것 같아. 그 순간에 푹 빠져서 아무런 생각이 없이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맛봤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오토바이 삼매경’인 셈이지. 아르바이트를 관둔 후로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오토바이를 안 탔어. 아니 못 탄 게 맞지. 꽤 타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살 형편이 안 됐으니까. 그런데 말야. 스쿠터를 탄 시점으로부터 7년 뒤에 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비싼 오토바이를 파는 회사에 들어갔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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