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삼매경 3편
이 말이 내가 회사에서 가장 처음 들었던 꾸중이었어. 손님에게 인사하는 목소리가 너무 작다는 이유였지. 1차 면접을 봤던 윗사람이 아주 험악한 표정으로 나를 다그쳤어. 그는 어디를 가나 꼭 한 명씩 있는 ‘저 사람만 없으면 참 좋을 텐데’의 '저 사람'이었어.
모터사이클 영업사원의 무대는 매장이야. 주요 업무는 오토바이의 계약과 출고지. 자동차 영업사원처럼 외부로 나가지 않고 매장에서만 상담을 하다 보니 인사가 정말 중요해. 헌데 나는 너무나 내성적이었던 탓에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았어. 속삭이듯 말했던 거 같아. 아는 게 없으니 더 움츠러들고, 자신감이 없으니 우물쭈물하기 일쑤였어. 낯을 많이 가리니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척하며 다가가기도 힘들었지. 짝사랑을 고백하기 직전의 수줍음이 많은 소녀처럼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려면 심장이 먼저 쿵쾅거렸어. 출근하고 첫 일주일 동안 앞이 캄캄했어.
입사하고 집에서 출퇴근을 한 적도 있었지만, 얼마 뒤에 집을 다시 나왔어.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새 익숙해졌는지 혼자 사는 게 마음이 편하더라구. 집에서 내가 산 컴퓨터와 이불만 들고 나왔어. 회사 근처에 싼 곳을 알아보다가 옥탑방을 월세로 얻었지. 보증금 300만 원이 없어서 신용 카드로 대출을 받았어. 이런 처지였기에 물러날 곳이 없었어. 건강보험도 적용이 안 되었던 아르바이트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현실을 극복해야 했지.
틈나는 대로 할리데이비슨에 대해 파고들었어. 뭘 알아야 대답이라도 하니까. 사람은 두려웠지만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이 널린 곳에서 일하며 알아가는 과정은 재미있었어. 사실 내가 좋아하는 오토바이의 종류는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경주용 스타일이었어. 영화 비트에서 나왔던 거. 할리데이비슨은 내가 타던 녀석들과 너무 달라서 전혀 관심이 없었어. 엔진과 외관 그리고 타는 자세가 모두 별로였어. 너무 아저씨 같은 느낌이랄까. 회사에서 처음으로 시승을 할 때 ‘뭔 이런 구닥다리가 있나’ 싶었어. 가격은 정말 비싼데 출력도 낮고 브레이크 성능도 형편없었지. 나는 매끈한 외형에 마력이 높은 오토바이가 최고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차츰차츰 바뀌더라구.
사람도 그렇잖아. 매끈한 겉모습과 그럴듯한 말이 전부는 아니잖아. 오히려 투박하더라도 개성이 뚜렷하고 간결한 말에도 진심이 담겨 있으면 그게 더 매력적이지 않아? 알면 알수록 할리데이비슨이 그런 녀석이었어. 구식을 고집하지만 내구성이 좋은 탄탄한 엔진, 100년 전통을 계승한 외관 그리고 오래 타더라도 편안함을 유지하는 자세가 뭉쳐, 다른 곳에서는 존재하지도 않고 흉내 낼 수도 없는 독자적인 영역에서 홀로 우뚝 서 있더라구. 할리데이비슨에 대해 알아갈수록 브랜드의 힘이 보였는데, 그게 성공의 법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어.
출근하면 전시된 모델들을 걸레로 구석구석 닦으며 어디에 뭐가 어떻게 달려 있는지 탐구하고, 퇴근하면 서울의 구석구석을 시승용 모델로 누볐어. 내 능력으로는 바퀴 하나도 사기 어려웠지만, 시승용은 언제나 탈 수 있었어. 빨리 달릴 수 없는 엔진을 느긋한 자세로 품은 채 한강 다리를 건너고 남산을 올라가고 청계천을 따라 달렸지. 영화 이지 라이더처럼 맘 맞는 동료와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재미도 알게 되었어. 그전까지 나는 혼자만 돌아다녔거든.
오토바이의 참모습을 알고 싶으면 몸으로 덤벼서 느껴야 해. 다양한 조건과 상황에서 함께 오래 굴러봐야 장단점이 보이지. 겉모습과 스펙보다 실제로 어떤 성격과 성향인지 나와의 궁합이 잘 맞는지가 더 중요해. 사람을 사귀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아. 단점까지 보듬을 수 있을 때 진짜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마니아가 되는 과정도 비슷하더라구. 편견을 깨니 더 넓은 세상이 다가오더라. ‘세상에 좋고 나쁜 오토바이는 없구나. 각기 특성과 스타일이 다를 뿐이었어.’
할리데이비슨에 익숙해지니까 차츰 자신감이 생겼어. 면접을 볼 때 이사님과 나눈 영화 이야기로 점수를 딴 것처럼, 아는 게 많아지니 할리데이비슨도 낯선 이에게 흥미롭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지. 인사말의 볼륨도 조금씩 키웠어. 처음엔 얼굴이 빨개지고 겨드랑이가 축축해졌지만 자꾸 하니깐 되더라구. 두 달 정도 지났을 때는 매장에서 가장 크고 씩씩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되었어. 쌓여가는 지식과 늘어가는 경험도 큰 목소리에 한몫을 보탰지.
조금씩 회사 생활에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목표와 실적이 나를 괴롭혔어. 영업사원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랄까? 벗어날 수 없는 굴레랄까? 영업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야.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나 설득하고 기존 고객들을 관리하다 보면 속이 새카맣게 타는 일이 많지. 특히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나 정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사람의 불만을 듣다보면 영혼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야. 그만큼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에너지 소모가 커. 2시간 이상 가만히 앉아서 설명을 하거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5년 이상 사용한 핸드폰의 배터리처럼 에너지가 팍팍 닳아. 근데 목표라는 녀석은 상황을 봐주지 않아. 조금도 융통성이 없지. 사람을 좋아해서 영업을 선택하더라도 실적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만두는 동료도 많았어.
인센티브 제도는 많이 파는 사람에게는 천국을 선물했지만, 실적이 저조한 이들에게는 낮은 기본급이라는 지옥을 맛보게 했지. 난 소심한 성격이라 신입 사원일 때는 꿈에서도 오토바이를 팔았어. 군대를 다시 간 꿈처럼 반복되더라구. 급여보다 문제는 자존심이었어. 회사에서 내가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려면 매월 평균 이상의 판매량을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말야. 꾸준히 실적을 올린다는 게 참 쉽지 않아. 특히 쇼윈도 밖으로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지. 매장 앞에 발목이 푹푹 빠질 정도로 쌓인 눈을 쓸며 한남동 비탈길에서 미끄러지는 자동차들을 보면, 한 겨울에 오토바이를 파는 일은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파는 일에 결코 밀리지 않는구나 싶었지. 어쨌거나 선택은 둘 중 하나였어. 포기하거나 인정받거나.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