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삼매경 4편
충무초등학교 운동장 옆 골목이었어. 약속한 시간에 할리데이비슨을 받지 못한 고객이 화가 나 욕을 시작했지.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은 길거리에서 한 시간 동안 서서 쌍욕을 들었어. 욕하는 목소리가 건물들의 유리창을 흔들 정도로 쩌렁쩌렁했어. 주변 상가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내다볼 정도였지.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연신 “죄송합니다.”라고 했어. 정비팀에서 약속 시간을 못 지킨 불똥이 내게 튀었는데, 그게 내 몸속까지 깊숙이 파고들었지. 내장 곳곳을 지글지글 태웠어. 처음에는 나도 욱했는데, 조금 지나니까 눈물이 나려고 하더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도 잘 못 건네던 나는 할리데이비슨 코리아 모터사이클 영업부에 들어갔어. 그저 오토바이가 좋아서 결정한 길이었지. 내게 부족한 자질은 노력과 경력으로 조금씩 보완이 되었어. 시간이 약인 셈이었지. 그런데 목표와 실적은 달랐어. 아무리 신경을 써도 적응이 잘 안 되더라구. 매월 새로 탑을 쌓아야 하니 지칠 때도 많았고 두렵기도 했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숫자로 나타나는 결과가 곧 자신이라는 생각에 월말만 다가오면 안절부절못하기 일쑤였지. 진짜로 꿈에서도 오토바이를 팔았다니까.
할리데이비슨을 구매하는 주 고객층은 50대였어. 아무래도 가격이 비싸다 보니 젊은 층보다는 40대부터 60대의 고객이 대부분이었어.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20대의 내가 상대하기엔 만만치 않은 나이였어. 중년의 고객들은 사회에서 단맛과 쓴맛을 모두 경험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위치에 오른 사람이 많았거든. 그러니까 아무래도 계약을 끌어내기 위한 상담이나 협상을 할 때, 내가 불리한 부분이 많았지. 대화에서 주도권을 가져가지 못하면 패배나 다름없었어.
사람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화를 끌어내는 기술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더라구. 아무리 유명한 책을 보고 강연을 들어도 다양한 상황에 따른 대처 경험과 실패의 과정이 누적되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니었어. 이때 또 깨달았지. 진정한 자기 계발이나 성장은 머리가 아니라 몸의 영역이구나. 직접 몸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효과가 없구나. 꾸준한 도전과 지속적인 실행이 뒷받침되지 못한 해석이나 이론은 말짱 꽝이구나.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나만의 전략이 필요했어. 그래서 고객과의 상담에서 주도권을 가지기 위한 영업 전략을 짰어. 첫 번째는 내 의식의 변화였지. 상담을 할 때 ‘어떻게든 팔아보자.’라는 욕심으로 고객을 상대하면 내 마음도 불편하고 일이 잘 안 풀리더라구. 고객도 그것을 느끼면 부담스럽게 여기거나 거부감을 갖기 마련이지. 그래서 나는 물건이 아니라 행복을 파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어.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프레임으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어. 회사와 내가 있기에 고객들이 편하게 제품을 구입하고 관리받을 수 있다는 관점의 전환을 밑바닥에 깐 프레임이었지. 이것은 당시에 주먹구구식으로 판매하고 관리하던 수입 오토바이 업계와 윤기 없는 중년의 삶이 할리데이비슨을 통해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였지.
당시에 신규 고객의 비율이 꽤 높았는데, 매장에서 할리데이비슨을 쳐다보는 중년의 남자들은 모두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똑같은 말을 했어.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왔다고. 죽기 전에 꼭 타보고 싶다고. 내가 오토바이를 선택한 이유와 완전히 똑같더라구. 같은 처지였던 고객에게 ‘난 당신의 벗이에요. 후회 없는 선택이 되도록 도와서 인생 최고의 경험을 선물해 드리죠.’라는 마음가짐으로 다가갔어. ‘당장 할리데이비슨 한 대를 파는 것보다, 지금 내 앞의 인연에게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해.’ 이런 프레임으로 고객을 대하니 내가 ‘을’이 아니라 ‘갑’이 된 기분이었어. 난 부담 없이 상담을 할 수 있었고, 고객도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행복 전도사’ 전략이었지. 난 실제로 아무런 낙이 없어 보이던 건전한 중년들이 가죽 재킷을 입고 할리데이비슨을 타면서 새 삶을 살게 된 것처럼 밝게 바뀐 모습을 수없이 목격했어.
멘탈을 리셋하고 난 다음은 실력이었어. 할리데이비슨을 잘 아는 것 이상이 필요했지. 사람들의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아무리 나이가 많고 경력이 오래되어도 상대방이 더 전문가라고 느끼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야. 20대가 50대 앞에서 기죽지 않고 대접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지. 두 번째 전략은 나를 영업 사원이 아니라 전문가로 느끼게 만드는 거였어.
보통 특정 분야에 관심이 생겨서 배우러 가면 선생님의 시범에 감동을 받잖아. 그게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기술일수록 초보자는 고분고분해지지. 내가 상담할 때 우위를 차지하려면 선생님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시선이 필요했어. 기본적인 전문 지식에 브랜드의 역사와 에피소드를 엮은 스토리텔링을 더하고, 다양한 종류의 오토바이를 탄 경험에 무게가 400kg에 근접한 대형 할리데이비슨을 시동도 켜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돌리고, 트럭에 올렸다가 내리는 모습 등을 보여주면 고객은 휘둥그레졌지. 할리데이비슨을 더 잘 타기 위해 다양한 주행 테스트도 많이 했어.
세 번째는 신뢰야.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지. 자기가 한 말과 정해진 약속을 완벽하게 지키기만 해도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니까.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계약서에 합의 사항을 꼼꼼하게 적고, 모든 일정을 깜빡하지 않도록 다이어리 기록하여 수시로 확인하고, 타 부서에서 진행되는 작업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두 번, 세 번 틈나는 대로 확인을 했어. 너무나 당연한 과정인데 그걸 잘 챙기지 못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았지. 고객은 실수 한 번은 그럴 수 있다고 너그럽게 넘어가도 두 번은 마음속으로 용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 내 실수는 아직 부족하다는 창비함 때문에 서럽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억울해서 서글퍼지더라.
난 면허가 없는 사람은 뒷자리에 태워 남산을 한 바퀴 돌았고, 오토바이를 잘 못 타는 사람은 가르쳤고, 같이 탈 사람이 없는 사람에겐 벗이 되어 함께 돌아다녔어. 요즘에는 많은 브랜드에서 교육에 신경을 쓰지만, 그땐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어. 브랜드에서 실시하는 최초의 무료 교육이나 다름없었지. 처음엔 엉성했는데, 이것도 횟수가 늘어갈수록 과정에 체계가 잡혔지. 그렇게 실력을 쌓고 정성을 기울이니 최고의 자리에 올랐어. 4년이 걸렸지. 그 후론 관리자가 될 때까지 매년 판매왕 자리를 놓쳐 본 적이 없어.
물론, 최고의 실적을 꾸준히 유지하는 길이 쉽진 않았어. 고객들을 가르치고 함께 할리데이비슨을 타니 쉬는 날이 거의 없었지. 일요일에도 매장이 문을 열어서 정해진 휴일도 없었어. 주 5일 근무는 딴 세상의 얘기였지. 다니던 치과에서 새로운 상담 일정 때문에 예약을 자꾸 취소하니까 나중에는 아예 예약을 안 받아줄 정도였어. 밤늦게까지 쉬는 날을 가리지 않고 걸려 오는 전화를 받다 보니 벨소리나 진동음이 환청으로 들리기도 했어. 새벽 2시에 배터리가 방전되었다는 부름에 달려 나가기도 하고(도대체 왜 그 시간에 오토바이를 타는 걸까?),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성격이 급한 고객에게 쌍욕을 듣기도 하고, 협박성에 가까운 폭언에 들볶이기도 했지. 예전 고객들은 (좋은 말로 표현하면) 꽤 거친 사람들이 많았어. 이때 양지가 있으면 반드시 음지가 따라다니기 마련인 세상의 이치에 눈을 떴어.
그럼에도 내가 모터사이클 영업을 10년 동안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토바이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야.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천국이 부럽지 않았어. 고등학교 때 봤던 터미네이터 2의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이 타고 나왔던 팻보이를 탈 때면 이게 꿈인가 싶기도 했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전국을 누볐지. 난 타는 방법을 알려주는 선생으로, 취미를 공유하는 벗으로, 길을 안내하는 리더로, 이벤트를 진행하는 행사 요원 등으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고객, 동료들과 함께 즐겼어. 우리나라가 구석구석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때 알았지. 혼자서는 감히 엄두를 못 냈던 전국 일주도 여러 번 했어.
만약 내가 물건만 파는 영업 사원이었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그 일을 오래 하지 못 했을 거야. 내가 좋아하는 취미와 관련된 일이기에 참고 버텼지. 그게 결국엔 내 삶에 아주 귀한 거름이 되었어.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는 인내심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거든. 그것은 나처럼 소심하고 내성적인데 가진 것까지 없는 사람한테는 정말 큰 삶의 자산이 되었어. 두고두고 감사한 일이지. 그런데 말야. 관리자가 되니까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더라. 비로소 우물 안에서 나와 진짜 세상을 마주하게 된 기분이랄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