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멈춘 줄 알았던 시간은 사실 멈춰 있지 않았다.
다시 움직이기로 한 건, 대단한 결심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 날, 일곱 살이던 둘째와 유치원에 가는 길이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엄마도 일 했으면 좋겠어.
일해서 돈 벌면 아빠보다 부자가 되잖아”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바로 웃을 수는 없었다.
아이의 말에는 계산도, 의도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 아이의 눈에 비친 나는
일을 하지 않는 엄마였고,
아빠와는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확신이 생긴 것도 아니었고,
무언가가 분명해진 상태도 아니었다.
다만,
멈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조금 더 분명해졌을 뿐이다.
불안은 여전히 있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고,
방향을 말로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전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으로는
기울지 않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말이
조금씩 입에 붙지 않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여도,
안에서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고,
기준을 고치고 있었고,
나 자신을 다시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건 앞으로 나아간다기보다
조금 다른 위치에 서 보는 일이었다.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아도
보는 각도가 달라지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움직임은 정말 사소했다.
이력서를 다시 들여다보고,
한 번쯤 넣어볼까 망설이던 곳에
조심스럽게 지원해 보는 정도였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그게 변화야?”라는 질문을 받을 만큼.
하지만 그 작은 선택들이 쌓이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멈췄다’는 말 안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다시 움직이기로 한 건,
대단한 결심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의 한마디가 남긴 여운,
이제는 조금 달라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감각,
아주 작은 방향 전환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나를 앞으로 데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