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 Mar 27. 2022

마파, 그 후

뉴욕의 저드를 꿈꾸며

평생 처음 해본 새벽 운전과 기류가 지독했던 비행으로 녹초가 되어 침대 눌러붙었다. 꿈은 아니지. 내가 마파에 다녀온거지.


눈을 뜨고도 꿈을 꾼 것 같던 마파


미학적으로 형태와 컬러가 철저하게 계산된 영화세트 같은 다운타운, 처연하게 아름다운 저드의 삶과 작품과 공간, 치나티 재단의 누런 벌판과 양철지붕, 회색 콘크리트, 텍사스의 마른 먼지, 오후 세시의 반짝이던  , 톤다운  핑크빛 하늘, 까만 , 기차소리와 떨림.  


엘에이에서 생각과 감정을 챙겨갈 수 없었듯 마파에서도 그것들을 챙겨오지 못했다. 하루종일 가져온 소중한 저드 재단의 리플랫들을 만지작 거린다. 셀폰의 사진들을 뒤적 거린다. 저드에 관한 책들을 읽으려했지만 원서들뿐이라 안타깝게도 깊이 빠져들지 못한다.


이틀이 지났을까. 저드 재단 웹사이트(https://juddfoundation.org/shop/)에서 기념품을 주문한다. 더 블럭에서 저드의 식탁에 리플랫들과 펼쳐져 있던 책 Donald Judd Spaces와 평소 같으면 절대 사지 않는 토트백까지. 마파에서 사는 게 아니니 의미도 없지만 기억이 흐려질세라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글을 마무리할 즈음 마파에서 선물이 왔다. 미국에서 보기 드믄 야무지고 정성스러운 포장이다. 저드 재단 칭찬해. 


갑분 언박싱 


마파를 꿈꾸었던 뉴욕의 저드를 만나러

사흘째 되던 날 보다 못한 남편이 “3월쯤 뉴욕에 갈까?” 그런다. 기특하다. 소호의 101 Spring Street 저드 재단을 기억하고 있었다. 캐스트 아이언 외관이 인상적인 5층짜리 건물. 작년 여름엔 굳게 닫혀있어서 우편물 구멍으로 엿보고 왔었다.


가을에 갔을 때, 남편이 관심없어해서 안봐도 된다고 해놓곤 빌딩 주변을 티나게 서성거렸었다. 그 때 갔어도 좋았겠지만, 저드가 마파를 꿈꾸던 곳이라는 걸 아는 지금가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30분만에 3월 비행기 예약완료. 새로운 꿈이 생기자 지난 꿈에서 깨어난다. 이럴 때가 아니지. 마파를 기록해야한다. 기억의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당신도 마파의 문으로 들어가보길

뒤늦게 치나티(Chinati)의 뜻이 궁금했다.(재단의 이름은 남서쪽에 있는 치나티 산을 따서 지었다.) 치나티는 아파치 인디언의 단어 ch'íná'itíh가 어원으로 대문(gate) 또는 고개(mountain pass)라는 뜻이다.


떠나기 전 마파는 미지의
크고 낯설고 무거운 문이었다.
이런 저런 두려움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문 뒤의 멋진 세계를 본 나는
이 문을 통과하기 전과 다른 사람이다.


나는 문을 열기보다 닫으며 사는 사람이었다. '이미 늦었어. 그건 위험해. 남들이 비웃을거야.' 모든 문을 닫고 골방에 갇힌 나를 저드가 끌어냈다. 앞으론 눈 앞에 보이는 문들을 주저하지 않고 열면서 살아야지.


마파를 가고 싶지만 멀게 느껴져 망설이는 분들, 희미하게 알고 있거나, 몰랐던 이들에게 마파의 문을 열어주고 싶은 문지기의 마음으로 글을 쓴다. 마파는 당신에게 활짝 열려있다.



  



        

이전 07화 마파의 마지막 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