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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듀 May 12. 2021

하마터면 엄마를 잃을뻔했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한 매일의 준비 1



불과 한 달 전쯤, 말 그대로 엄마를 잃을 뻔했다.


엄마는 매년 장염을 심하게 앓곤 했고, 4월 15일 이 날도 장염 때문에 고생 중이었다. 전날 몸살 증세로 시작했는데, 막판엔 화장실 갈 힘도 없어 거실이 난리가 났었다. 119를 불렀다. 당시 엄마 열이 39도라 격리병실이 남아있는 병원으로만 갈 수 있다 했는데 다행히 근처 가톨릭 성모병원에 격리병실이 남아있어 그리로 이동했다.

환자 외에는 코로나 때문에 외부 간이 천막에서 기다려야 했다. 엄마를 들여보내고 천막 안에서 대기하며 '혹시 코로나여서 평소보다 장염 증세가 더 심했던 건가'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하고, 장염이면 수액도 맞을 테니 오래 걸릴 줄은 짐작했으나 생각보다 더 길어지는 시간에 조금 불안해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두 시간이 좀 넘었을까. 갑자기 의사 한 분이 나오시더니 나를 불렀다. "어머니가 급성 패혈증 쇼크 상태이고 병원 도착 직후부터 염증 수치가 급격하게 오르는 중이다. 혈압도 잡히지 않는다. 한 시간 안이나 오늘 밤 안에 잘못되실 수 있으니 다른 가족이 있다면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했다. 그저 장염이 너무 심해서 왔을 뿐인데 급성 패혈증이라니. 위독하다니. 정말 나에게 하는 말이 맞나 싶었다. 현실감이 없으니 처음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늦둥이라 은연중에라도 부모님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 걸 의식해 왔었지만, 이건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지난 주말만 해도 나와 뒷산 산책을 다녀오고, 엊그제까지만 해도 나랑 대화를 멀쩡히 나누던 엄마였다.

모든 게 후회가 됐다. 일이 뭐라고. 회사 눈치, 남 눈치 보느라 엄마를 못 챙겼다. 내가 더 일찍 119를 불렀더라면 괜찮았을까. 의사 선생님은 우는 나에게 보호자가 늦게 불러서 그런 거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엄마가 장염으로 앓을 때 '그저 장염'이라고 치부해버린 것부터가 내 잘못이었고, 그런 내가 괘씸해서 벌 받는 것이란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며, 새벽 2시까지 천막에서 마음을 졸이며 대기를 하다 집으로 돌아갔다. 정말 다행히 다음날까지 병원으로부터 최악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2주간의 입원 치료 끝에 엄마는 퇴원했고 그 후로 또 2주가 지났다.


당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급히 연차를 냈던 이틀을 제외하면 업무와 병원행을 반복하며 어느 하나에도 집중할 수 없지만 어느 하나도 놓을 수 없는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앞을 매일같이 드나들면서 사람 목숨 얼마나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심각한 상태라 여겼지만 안심하며 병원을 나서는 사람들, 반대로 별거 아닌 줄 알았지만 예상치 못한 심각한 결과로 좌절하는 사람들, 복도에 서서 의사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된다는 말을 듣는 가족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내 일이 되고 나니 병원에서 보고 듣는 모든 상황이 남일 같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무사히 회복된다면 하루 하루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아마 스물아홉인 내 또래 혹은 더 어린 나이라면 대부분 부모님과의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마어마한 늦둥이인 나조차도 그랬으니까. 한창 내 삶을 살기에도 바쁘고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며, 부모님보다는 친구들이나 연인과 보내는 시간이 더 즐겁고 소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고, 부모님 혹은 소중한 누군가와의 이별은 언젠가는 겪을 일이다. 그때가 언제이고 평소 얼마나 잘했든 후회와 아쉬움은 남을 것이다. 그래서 후회를 안 할 자신은 없지만, 후회를 조금이나마 덜 하기 위해 엄마와 더 많은 추억을 남기며 하루를 살아야겠다. 이건 엄마를 위해서라기보다도 훗날 혼자 남겨질 나를 위해서다.


나는 원래 계획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며 계획한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실감했다. 인생을 살며 계획을 아예 안 하고 살 순 없겠지만, 그보다는 주어진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데 무게를 두어야겠다. 가능하다면 오늘, 지금 당장 행복해질 것이다. 나와 내 가족에게 오늘이 허락됨을 감사하고, 오늘을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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