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이기는 엄마
줄곧 말 잘 듣는 딸이었던 나는 사춘기가 늦게 온 편이었고 어쩌다 보니 엄마의 갱년기와 겹치게 됐다. 나의 사춘기는 비교적 가볍게 왔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갱년기에 묻혀버린 건가 싶기도 하다. 나의 사춘기는 표출하기보단 더 닫아버리는 쪽이었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화가 날 때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울거나 일기를 썼다. 반면 엄마의 갱년기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엄마와 나의 성격을 확 바꿔놓을 정도로 심하게 왔었다. 점차 약해지긴 했으나 10년 정도로 꽤 길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 기간 동안 엄마와 나는 꽤나 큰 상처를 주고받았었다.
엄마는 점점 '자식 이기는 부모'가 되어갔다. 이모, 삼촌들 말로 어렸을 때부터 황소고집이었다던 엄마에 대한 인상은 '우리 엄마 고집 센 편이지.'에서 '아, 차라리 벽이랑 대화하는 게 낫겠어!'가 되어갔다.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것처럼 급변한 성격과 감정 기복이 도저히 감당 안될 정도였을 시기에는 일부러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늦게 갈 정도였다.
한 번은 엄마가 내민 생과일주스를 거부했더니 엄마가 거실 바닥에 그 과일주스를 다 쏟아버리고는 화를 내고 집을 나가버리는 것이다. 당시엔 도대체 이게 무슨 전개인지, 이렇게까지 할 일인지 싶어 화보다는 당황스러움이 앞섰다. 그날 나는 밀려오는 서러움에 울면서 거실 바닥에 말라붙어가는 과일주스를 혼자 닦아냈다. 그리고 길게는 한 달을 넘게 말을 안 하며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날이 늘어갔다. 별거 아닌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과하다 싶은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곤 했다. 갱년기 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가 안타까워 거금을 들여 흑염소 진액 같은 여러 가지 식품을 사서 건네거나 취미를 가져보라며 여러 가지 권유도 해봤었다. 하지만 몇 년간 지속되는 엄마의 갱년기 증상에 지쳐감을 느꼈고 나중에는 '또 저러네'라고 생각하며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어쨌든 이렇게 살다 간 내가 스트레스받아 죽겠다 싶어 이 시기 갱년기에 관한 서칭도 참 많이 했었다. 그때 알게 됐던 사실은 생각보다 엄마의 갱년기로 고민하는 자녀들이 굉장히 많다는 점과 평소 의존도가 높고 감정적 교류가 많았던 사람에게 더욱 감정 표출이 심하다는 점이었다. 엄마가 유독 나에게 심했던 이유가 설명이 됐다. 엄마의 갱년기로 고민하는 글에 유독 딸들의 비중이 압도적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을 알았다 한들 엄마의 갱년기 화살이 나를 향할 때 견디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머리로 이해를 한다 한들 똑같이 감정을 가진 사람일 뿐이니 말이다. 그저 3번 참을 거 5번까지는 참게 된다는 정도일 뿐.
당시엔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룬 정신과 책의 도움을 받았었지만 만약 누군가 지금의 나에게 이러한 고민을 토로한다면 전문가를 통한 직접적인 상담을 더 권할 것이다. 나는 정신과에서 가족상담을 받아볼걸 하는 후회를 엄마의 갱년기가 끝나고 나서야 했었기 때문이다. 직접 겪을 땐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야 할 정도라는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알았어도 당시엔 정신과 문턱을 넘지 못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정신과도 결국엔 수많은 진료 과목 중 하나일 뿐이고 그게 엄마와 나를 위해 더 빠른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뒤늦게서야 생겨났다.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엄마의 갱년기도 어느새 지나갔다. 오늘까지만 갱년기이고 내일 갑자기 끝나는 게 아니다 보니 정말 끝났다고 생각되기까진 거의 10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돌이켜봐도 꽤나 괴로웠던 시간이라 어떻게 지나간 건지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사춘기보다 갱년기가 여러모로 한 수 위라고 본다. 호르몬과 감정, 신체의 격동을 겪으며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어른이 스스로 제어가 안될 정도이지 않은가.
막상 지나고 보니 그 당시 엄마에게 좀 더 살가운 딸이 되어주지 못했던 게 후회가 된다. 아마도 당시 엄마에게 필요했던 건 흑염소가 아니라 관심 어린 말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한편으론 감정을 받아내는 입장의 가족들에게 그저 참고 이해하라고도 못하겠다. 나 역시 너무나 괴로웠으니까.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심하게 겪는 가족들도 많을 테니 그런 분들에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