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 4

Now on foot, Now the other

by 그리운 나무 그늘
KakaoTalk_20190329_105510099.jpg Not one foot, Now the other- Tomie dePaola

새벽 5시,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세부로 이사 온 후 엄마는 매일 도시락을 싸기 위해 5시에 일어난단다. 행여 너희들이 깰까 봐 불도 켜지 않고 조심히 방을 나서지. 가끔 도시락 반찬 메뉴를 정하지 못하고 잠이 든 날이면 잠을 설치다가 급기야 냉장고 문을 열어 폭풍 고민에 빠진단다. 그렇게 해서 부엌의 불이 켜지면 한 시간여를 일급 요리사나 되는 듯이 아주 빠른 손놀림으로 다섯 개의 도시락을 만들어낸단다. 막상 도시락 뚜껑을 덮으려는 순간에는 "내가 한 시간 동안 만든 게 겨우 이거야?"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에 한숨과 걱정을 함께 담는단다. 그래도 불평 없이 도시락을 먹어주는 너희들에게 고마울 뿐이야.

외할머니도 도시락을 싸주셨단다. 삼 남매의 도시락을 거의 10년을 싸 주셨구나. 그때는 지금과 달라서 먹을 것도 넉넉지 않았고, 집안 사정도 그리 좋지 않아 메뉴를 걱정하는 엄마와는 차원이 다른 고민을 하셨겠지. 엄마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밤늦게 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와야 했어. 그래서 학교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어야 했단다. 외할머니는 자식들 한 끼라도 따뜻한 밥을 먹이려고 버스를 타고 손수 저녁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까지 오셨단다. 물론 엄마가 재수를 했던 1년 동안은 학원으로 저녁 도시락을 들고 오셨단다. 그런데 자식이라는 게 뭔지. 그땐 외할머니의 도시락에 담긴 사랑과 수고를 알지 못했어. 심지어 극성스럽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지. 엄마는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빈 도시락을 보며 한참을 눈시울을 붉히고 가슴이 먹먹했단다. 외할머니가 주셨던 사랑과 정성이 그때서야 엄마에게 보인 거야. 한 번도 고맙다고 말 못 했던 게 정말 가슴이 아프구나.

엄마는 밥과 바비의 이야기를 읽으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단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란 바비는 할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져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을 땐, 자기가 받은 사랑을 그대로 할아버지에게 되돌려주었단다. 할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믿음이 의사도 포기한 할아버지의 병세를 다시 되돌릴 수 있었어.

사랑은 마법이야. 아무리 줘도 아깝지 않고, 내가 아파도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만드는 참 이상하고 신기한 마법이지. 그런데 이 마법을 깨닫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것 같아. 항상 이 마법의 세계에서 살아왔는데 그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은 더디게 찾아오는구나. 엄마가 도시락을 싸면서 도시락에 담겼던 외할머니의 사랑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이야. 진정한 사랑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랑을 베푸는 법을 배우는 것 같구나. 너희가 사랑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내 가족뿐 아니라 나의 친구, 나의 이웃, 그리고 내가 모르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너의 마음속 사랑의 씨앗이 널리 뿌려지길 바란다. 엄마가 그 씨앗이 더 단단해지도록 도와주마. 사랑한다 아들아, 그리고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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