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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채집가 Aug 31. 2022

여행자

어디에도 도착할 수 없었던, 한 여행자에 대해

주인공 질버만은 베를린에 거주하는 유대인 사업가이다. 1차 세계대전에 군인으로 참전했고, 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까지 존경받는 시민이자 사업가였다. 

1938년 '수정의 밤' 이전까지의 일이다. '수정의 밤' 이후로 박해는 더욱 심해지고 유대인은 합법적으로 해외 이주가 어려워져 겁에 질려 기차로 독일을 떠돈다. 


저자는 기차를 타고 정처없이 떠돌고 있는 질버만의 시점에서, 주변 풍경을 관찰한다. 

자신이 많이 배려해준 동업자라고 믿었던 독일인은 어느덧 그의 재산을 노리는 사람으로 보인다. 

집을 사러 온 독일인은 가격을 마구 깎아내린다. 그는 턱없이 집을 거저 먹으려 한다. 

부인의 오빠는 자신을 거부한다, 다같이 위험해진다는 이유로. 

기차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신고할 수도 있다. 돈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슬프게도 이 많은 의심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유대인의 얼굴을 숨기고 싶었지만, 누구보다 유대인처럼 생긴 사람에겐 혐오감이 느껴진다. 옆에 가는 것조차 싫다. 


호텔에 묵으려 했지만 지배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감시하는 듯하다. 많은 돈을 싸들고 기차 위를 떠도는 질버만은 불안하고 불행하다. 잠을 자지 못하고, 배가 고프다. 국경을 넘으려는 시도도 실패한다.   


저자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는 1915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1938년 대규모 유대인 박해 사건인 '수정의 밤' 소식을 듣고 4주만에 쓴 소설이다. 


"이제 어디로 가시려고요?"

"그냥 계속 움직일 겁니다. 그 이상은 나도 몰라요. 공격 당하지 전까지, 돌격대가 나를 멈춰 세울 때까지 그저 여행하는거지요. 사람들이 나를 움직이게 했으니, 멈춰 세우기도 할 겁니다."


그는 결국 어디에 멈추어 섰을까. 

사람들은 그를 어디쯤에서 어떤 역할로 멈춰 세웠을까. 


수많은 '그'들을 애도한다. 그들의 불안과 서성임, 끝없이 품어야 했던 불신과 희망없음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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