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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채집가 Jun 02. 2020

매일 걷기, 그 매혹적인

걷기의 속도를 사랑하다

언제부터였을까. 

걷는 것이 뛰는 것보단 좋았고, 팟캐스트나 음악을 들으며 걷는 것이 행복이라 느낀 것이.

그래서 걷기 시작한 것은 2,3년쯤 된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지도.

집 앞으론 긴 하천이 나 있다. 쓰레기장처럼 잡초로 뒤덮여있던 그 하천길에 언젠가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명박 집권 끝물이었는데, 4대강 예산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듯도 하다.

녹조라떼가 온 강을 뒤덮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동네에는 '길'이 만들어지고 그 길 위로 걷는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게'되었다.

나타나다 라는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어디선가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아침에도, 밤에도 걷고 또 걸었다.

나도 그 행렬에 어느샌가 동참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걸어보자 하던 것이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걷기에 관한 수많은 글을 읽었다. 걷기 열풍이어서인지, 유난히 그런 글이 많다.

정확히 언제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나의 걷기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나 자신과 인터뷰를 해보자. 나도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도 같다.


1. 걸으며 가장 위로받았던 순간은?

사춘기 딸과 싸웠던 순간. 지금은 그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꽤나 심각했다. 나는 무작정 집을 나왔고,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음악을 들으며. 그때 쉼없이 돌려가며 들었던 곡은 특히나. 

나는 혼자 울며 걸었다. 늦은 가을이었는데, 속상했던 이유 대신 그 낙엽쌓인 길이 생각난다. 무심해서 위로받을 수 있었던 길 말이다. 


2.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사람'들과 수다떨며 걸을 때가 가장 즐겁다. 하루종일 나는 내 틀과 내 경험 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 사람과 함께 걷노라면, 그 '사람'에 속한 경험까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시사적인 문제, 아이들 이야기, 직장 사람들, 다이어트 이야기까지, 쉴새없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시원한 맥주 한잔 하는 즐거움은 덤.


3. 가장 힘들었던 걷기는?

작년 여름, '생명사랑 밤길 걷기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신청했다. 나는 일행 없이 혼자 걷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선두권에 있던 나는, 갑자기 최선두 그룹과 말도 안되는 경쟁심이 발동했다. 최선을 다해서 걷기 시작했다. 그 결과, 40키로 되는 그 구간을 거의 1등으로 주파했다. 1박2일동안 걸었던 거리는 40키로, 걸음수로는 42934+14783걸음. 총 577,717걸음. 아무도 없는 그 밤길을, 온갖 위험과 위협을 무릅쓰고 홀로 주파해 대회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왠걸. 새벽 1시30분경 도착한 나에게,  그 흔한 환영 문구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아직 출발한 팀들의 잔해조차 치우지 않고 있었다. 오마이갓! 일등으로 도착했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새벽 4시가 넘어 도착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온갖 환영인파와 간식과 메달이 주어졌다고 했다..ㅠ)


4. 그래서, 몸무게는 빠졌니?

아니올시다. 걷기 예찬의 글에 주로 등장하는 극적인 다이어트 후기가, 내 글에는 없다. 그게 맹점이다. 요즘 나는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새벽 산에 오른다. 가벼운 등산을 마치고 아침까지 다 차려두고 출근을 한다. 퇴근 후에도 종종 걷는다. 하지만 몸무게 단 1키로가 잘 빠지지 않는다.. 왠일인지 모르겠다.


5. 걷기, 언제까지 할거니?

아마도..내가 늙거나 아파서 걷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아주 슬퍼질것 같다. 내 두 발로 땅을 박차고 그 속도에 따라 주변의 풍경이 서서히 바뀌는 그 경험. 그 속도만큼 불어오는 바람. 자유롭게 흘러가는 생각들.

그 속도를 사랑한다. 


6. 걷기에 관한 꿈이 있다면?

언젠가, 제주 올레 또는 하와이 걷기를 해보고싶다. 하정우의 걷기 예찬 책을 보고 느낀 바가 많다.(하정우가 신은 브랜드의 신발과, 워치를 가장 먼저 샀다는건 안비밀)

지금도 100일 만보걷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언젠가 아름답고 긴 길을, 걸어보고싶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걷기에서 만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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