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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Jul 03. 2024

중소기업 제갈량, '삼일천하'

 호구여도 괜찮아 #25 : 하악골융기 (융)

지난 3년 반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지난 3년 반 동안,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내가 부족한 탓이 가장 크겠으나,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최고의 고객

글로벌 Q사는 글로벌 Top이기도 하지만 반면 제조업계에서는 까다롭기로 악명 높다. 엔지니어든 마케팅 담당자든, Q사의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둘째, 최악의 제품

우리 제품은 창업 이래 최악이었다. 일부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었지만, 문제가 됐던 기술은 당장이라도 내가 직접 배워서 해결하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


셋째, 내부 정치

회사 내 밥그릇 싸움은 흔한 일이지만, 권모술수 부장의 밥그릇이 회사의 경영 위기를 초래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다. 결국 그의 밥그릇도 온전하지 못했기에...




다시! 지난 3년 반의 시간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제조업 최고 수준의 사람들과 일한 경험

비록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지만, 자격 미달인 제품, 검증받고 입증해 내려는 사람의 실력은, 나날이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Q사의 엔지니어들은 원하는 답변을 얻을 때까지 수백 번의 동일한 질문을 하기에, 그들을 만족시키는 답변을 하던가 퇴사를 하던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해야 했다.


둘째,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고생

전투식량보다 못한 음식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고, 냄새나는 화장실을 가야 하고, 동료들이 잠을 못 자서 헛소리를 하는 상황을 이제 다시는 해낼 자신이 없다. 그러나 하나 남은 교훈은, 회사에서 겪는 고생과 고통은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력서에 남길 수 있는 확실한 한 줄

중소기업 사장이든 대기업 임원이든 두세 개의 질문으로, 정말 스스로 한 일인지, 아니면 남이  일에 이름을 적당히 올린 것인지, 귀신같이 구별해내곤 한.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력서에 확실한 한 줄을 남겼다.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이 Q사의 SCM에 들어갔다는 것은 실로 기적과 같은 일이다. 나의 모든 소양과 일에 대한 철학, 그리고 동료애는, Q사 프로젝트를 통해 좀 더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융 (隆), 30대 전략기획팀장이 되었다.


3년 반의 시간 끝에, 제품도 고객의 마음도 안정되어 더 이상 본사 출장자가 굳이 출장을 가지 않아도 됐다. 누구도 가고 싶지 않던 박쥐가 날아다니는 도시는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고, 우리 팀 누구든 우리가 함께 만든 업적에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나의 역할은 비바람을 뚫고 자란, 소중한 우리의 첫 나무를 본격적으로 숲으로 키워가는 것이었다.


다만, 나는 사회생활에서 '후배와 경쟁하지 않는다'라는 작은 철학을 갖고 있었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를 끊임없이 후배에게 물려주어야 했다. 알파팀에서 Q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좋은 후배들을 많이 얻게 되었는데 그 후배들에게 더 이상 허드렛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모험을 감수하더라도 나의 자리를 내어주고 싶었다.  결과, 후배들은 일본에서 베트남에서 중국에서 미국에서 모두 각자의 사업을 회사의 전략 사업으로 일궈어 나의 믿음에 응답했다.


이제 선후배 그리고 동료들은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마무리까지 꽤나 잘 해낸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쯤, 알파팀의 알파였던 나는 고민이 생겼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더 이상 재밌지 않았다.


나는 잘하고 있는 일과, 좋아하는 '생각하는 일'의 차이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우연히 동네 낡은 중고서점에서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책장에 외로이 꽂혀 있던 '한국의 기획자들'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출간이 된 지도 오래되었고, 베스트셀러는 아 듯했지만 특이하게도 유난히 눈이 갔다. 저자는 기획팀 출신으로 대한민국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획자들의 인터뷰들을 기본으로, 기획의 업의 기본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했다.


나는 책을 보며 다시 눈이 반짝이는 듯하였다. 

책 안에서 내가 글로벌 Top 회사를 설득하는 과정, 그리고 설득에 성공했을 때, 환희에 찼던 내가 보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이름은 '기획'이었다.


중소기업 제갈량


입사부터 친하게 지낸 선배인 과 기획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우리 둘은 좋은 습관을 공유하는데 어떤 문제든 한번 의문을 갖고 토론한 것에 대해서 끝까지 따라붙어 둘 만의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번에 고민하게 된 주제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기획이 왜 필요한가'다.

우리는 틈날 때마다 고민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결론에 다다를 수 없었다.


이때, 우리를 아껴주셨던 최고 경영진께서 우리의 고민을 들으시고, 

'회사에 필요한 기획'이라는 단어로 우리의 생각에 본인의 색을 입히셨다. 


이때, 나는 최고 경영진에게 질문을 했다.

"그럼 제가 제한 없이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돌아온 대답은 "Yes"였다.


당돌한 질문과 쾌한 대답은 커다란 바위 정교한 조각상으로 만들 충분한 동력이 되었.

최고 경영진으로부터, 제한 없이 생각도 된다는 대답을 듣는 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냐하면 나는 지난 8년을 '유리천장' 밑에서 살았고, 꿈에서도 '유리천장'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입사 3년 차, 나는 더 높이 뛸 수 있을 것 같지만 자꾸만 천장에 부딪혔고 그럴수록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며 점프는 갈수록 낮아졌다. 마지막에는 다리에 힘이 풀려 까지 땅에 붙어 버리고 말았다.


입사 5년 차, 꿈에서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역시나 천장에 부딪히게 되면 힘을 잃고 하늘에서 떨어지며 잠에서 깨곤 했다.


입사 7년 차, 꿈에서 자유로이 날아다녔고 천장에 부딪히더라도 힘을 잃지 않게 됐으나, 더 멀리 더 높이 날 수 있음에도  있는 작은 세계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최고 임원으로부터 'Yes'라는 대답을 들은 후, 더 이상 이러한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참 신기했다. 그날 이후, 부장 견고한 줄 알았던 유리천장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다.




중소기업에 '기획'이 왜 필요할까?


나는 가치 있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내가 투입할 수 있는 모든 력과 수단을 동원하여 부했고 다방면으로 깊이 고민했다. 어느 날 새벽 4시즘, 나는 무엇인가 깨달은 듯 '유레카'를 외치 A4 용지 2장을 꺼내 '시소 저울'을 그렸다.


그리고 한쪽 추에는 '현재의 사업', 다른 한쪽 추에는 '미래 사업'이라고 썼다.


중소기업에 '기획'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Star 사업의 육성'이었다.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원에게 회사의 장기 존속은 곧 이 사회에서의 생존과도 같았다. 나는 회사의 연속성 BCG Matrix로 연결 지어 기획팀의 팀 빌딩 계획으로 점점 사고를 확장시켰다. 물론 인재풀이 훌륭한 대기업에서는 사업부와 연구소를 분류하여, 여러 개의 새로운 사업을 육성하고 지원할 수 있겠으나, 개발할 사람은 있어도 사업부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려운 중소기업에서는 의 생각이 우리의 상황에 적절하게 들어맞았다.


회사의 무게를 아주 조금이라도 Star 사업에 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신 사업을 구체적으로 다섯 개의 시장과 사업으로 구분했다. 또한, 리 회사20%무게를 신사업에, 80%의 무게를 현재의 사업 누어 싣자고 하며, 팀 R&R의 기반을 잡고, 기획팀의 밑그림을 완성시킨 후, 마지막에 '시소 저울'을 사용해 나의 생각을 최고 경영진께 말씀드렸다.


시소 저울 (이미지출처 : iStock)


최고 경영진은 나의 고민을 추진력으로 화답했다.


기획팀이 탄생했다. 

'기획팀을 기획하는 것' 나의 첫 번째 미션이 멋지게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기획자가 되기 위한 노력


나는 제대로 된 기획부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그리고 좋아하는 업무에서 전문성을 쌓고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당시에 기획이라 쓰여 있는 책들은 눈에  대로 읽었는데, 그중에서 인상 깊었고 성장에 도움이 되었던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 싶다.


기획자로 이끈 명서들


머릿속에 '기획'이라는 두 글자만 남아 있던 어느 날, 서점에서 우연히 '비즈니스 인사이드'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의 크기가 작고 글씨도 깨알 같았지만, 다루지 않은 산업 분야가 없을 정도로 책이 두껍고 내용이 광범위하며 또한 상세했다. 물론 산업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은 많겠으나, 은근한 투자를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이 어렵게 쌓아 올린 인사이트와 내공을 제대로 온전히 나누기 위해 펼쳐낸 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기획 실무 노트'이다. 이 책은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두꺼우며, 기획의 모든 실무에 대한 방법론과 접근법을 담고 있어 '기획의 정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회사의 큰 기획에 나의 작은 아이디어를 더하고, 또한 스스로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 시간을 정해, 일정한 양을 성실하게 공부다. 


일을 잘하기 위해 왜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지 모르겠지만, 점점 회사에서 혹은 이 사회에서 '유용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내가 기획팀을 빌딩하고 그 안에서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진정한 이유는, 오로지 현장에서 죽도록 고생한 경험 덕이었다. 고객 대응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발을 책임지는 센터장 그리고 생산을 책임지는 공장장과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면서, 제품의 개발 및 제작과 검증 과정을 모두 지켜봤고, 제품이 출하되는 물류와 무역에 대해서도 모르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다양한 경험을 했고, 그 과정 안에서 한 번도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다.

8년 동안 바닥을 박박 기어 겨우 그동안 무릎 꿇었던 시간들의 노력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획은 정말 즐거워


나의 기획팀은 즐거운 시간들로 가득했다.

팀 빌딩을 하며 임원급 인사들의 공감을 얻는 구체적인 실행 안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나에게는 즐거운 일이었다. 나는 최고 임원의 지시 아래, 주간 열개 정도의 회의체를 운영했다. 회의를 할 때 모든 내용을 녹음했고, 그 내용을 여러 번 다시 듣고 Action item을 정리하고 각 분야를 책임지는 임원들에게 이 것이 실행되도록 리마인드 했다.


회사의 모든 일들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회사를 이전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길지 않은 2년의 시간 동안 3개의 신사업에 도전했고 1개의 아이템이 제대로 사업으로 꽃을 피워 하나의 회사를 먹여 살리는 기둥이 되었다. 이 또한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기에 나는 나의 일에 자긍심을 가졌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내 집무실을 갖는 날이 다시 올까


나는 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비록 작은 집무실이었지만, 나의 공간을 받을 정도로 잘 나가는 30대 직장인이 되었다. 회사의 '성골'도 '진골'도 아닌 내가, 스스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입사 8년 만의 일이었다. 나에게 핀잔을 주거나 윽박지르던 선배들은 이제 나를 피하거나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나는 겸손하려 노력했지만 속으로는 역전된 상황이 싫지만은 않았다.


매일 임원실을 돌며 커피를 한잔씩 하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회사의 실세라 자부했던 사람들이 모르는 내막을 알 수 있었고,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뒤에는 나의 의지가 숨어 있었다. 최고 경영진의 어깨에 올라타 회사를 바라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고, 사람들이 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숙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오래 다닌 회사'에서 마음 편히 오랫동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중소기업 제갈량'으로 살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회사를 다니는 것이 무섭지 않았고, 미래는 안정적으로 펼쳐질 것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가기로 하였다. 비록 중소기업이었지만 60명 규모의 회사를 300명으로 성장시켰고, 회사가 코스닥에 상장하는데 일조했으며, 황무지 같던 중국 사업으로 시작하여 글로벌 Top 회사 프로젝트까지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이제 기획팀이 만들어졌으니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더 크고 좋은 회사를 만들어, 고생한 동료들과 가끔씩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소박하지만 안정된 미래를 꿈꿔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나는 신혼 초 17평 주공 아파트에서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보금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다시 회사 근처로 이사오기 위해 원하지 않는 전셋집에서도 잠시 살아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이사를 하는 고생을 한 후, 우리가 원하는 집으로 이사를 가기 하루 전이었다. 이사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아기와 함께 우리 세명은 행복한 꿈에 빠져 있었다. 아내와 아기가 잠들고 나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며 감상에 빠지려고 할 때 즘, 우리 팀 막내로부터 급하게 전화가 왔다.


몸 테크해서 이사 가려고 했더니...


"팀장님, 사장님이 몰래 회사 팔려는 것 같습니다. 어제 술 마시다 재무팀 막내한테 들었어요."


우선 '회사를 사고팔 수가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깨달았다. 참으로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었다. 최근 6개월 동안, 증권사 기관들과 미팅하며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자료를 만들었던 건 다름 아닌 나다. 그러나 나는 회사에서 알려준 곧이곧대로 그 업무들의 목적이 사업자금을 융통하려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나의 짧은 삼일천하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럼 그렇지! 세상이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둘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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