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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Jun 16. 2024

'쉬운 포기'가 아닌 '어려운 성공'

호구여도 괜찮아 #21 : 하악골융기 (악)


악(顎), 악에 받쳐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권모술수 부장은 나의 반면교사가 되었다. 나는 그로부터 권모술수를 배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ENTJ, 나의 MBTI다. 일반적으로 ENTJ가 무능한 사람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나의 가치관은 권 부장과의 애증의 관계를 통해 크게 변했다. 내가 진정으로 같이 일할 수 없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도 게으른 사람도 아닌, 나쁜 의도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사람이다. 나는 더 이상 권모술수를 쓰는 권 부장과는 일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악에 받쳐 마음을 모질게 먹기로 했다.


첫째, 권 부장의 영역인 중국 사업에서 발을 빼기로 했다.

무릎을 꿇어서라도 성공시키겠다는 각오로 임했던 중국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나의 몇 년간의 노력은 헛수고로 돌아갔지만,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둘째, 다른 곳에서 나의 영역을 만들기로 하였다.

당장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매출이 작은 사업이라도 괜찮았다. 중국 사업을 일으킬 때처럼 다시 고생을 하게 되더라도 상관없었다. 내 가치관에 어긋나는 일을 할 바에야 차라리 고생을 택하기로 했다.


셋째, 새로운 사업을 성공시켜 승진과 보상을 받겠다고 결심했다.

중국 사업에 몸 담은 권 부장과 그의 직속 라인들은 모두 조기 승진하고 보상을 받았다. 내가 새로운 사업을 성공시키면 회사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어린 시절 이휘재의 '그래, 결심했어'는 최애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글로벌 Q 회사의 벤더가 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글로벌 Top 레벨인 Q 회사의 벤더가 되는 것은 중소기업 사장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고, 직원이라면 피해야 할 일 중 하나다. 그 예로, 나는 Q사의 창업자의 펜이었으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제대로 잠을 자는 날이 없었고 집요한 고객에게 주말에도 시달린 후, Q사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


Q사에 벤더로 등록되기까지, 약 4년의 시간을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꽤나 고생을 해봤다고 생각했지만, Q사 프로젝트에서 했던 그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잠을 자는 것이, 밥을 먹는 것이, 인간답게 숨을 쉬는 것이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처절한 삶을 살고 있는 분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① Q사 진입


권 부장으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힘이 솟아났고,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나는 한 달의 절반을 중국에서 보냈다. 매일 고객사로 출근해 엔지니어들과 미팅을 하고, 숙제를 받아와 밤새 자료를 준비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고객을 찾아가 설명하고, 추가 숙제를 받아 다시 자료를 준비했다. Q 사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잠을 줄여야 했다.


그렇게 반년이 흘렀다. 국민학생 시절의 여름 방학 숙제인 '탐구생활'처럼 커다란 마스터 파일이 만들어졌다. 100개가 넘는 숙제들에 대해 상세한 답변과 첨부 자료들을 영어, 중국어로 번역해 링크로 연결했다. 고객은 잘 정리된 마스터 파일을 좋아했고, 동료들에게 모범생의 숙제를 칭찬하듯 소개하기 시작했다. 고객과 나 사이에는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고, 나는 꽤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쌓여갔다. 고객들은 매일 찾아오는 나를 친구인지 공급상인지 혼동할 정도로 허물없이 대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객사의 집에서 잠을 잘 정도로 고객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② 회사의 중단 압박 (돈 안 되는 신사업 접으세요)


회사는 팀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회사에서 팀장으로 모시고자 했던 분은 이 바닥의 인싸 중의 인싸였다. 사장님까지 나서서 삼고초려할 정도로, 회사는 정성 어린 진심으로 설득에 나섰다. 결국, 팀장님은 우리 회사에서 미래를 꿈꾸겠다고 결정하셨다. 팀장님은 기대만큼 좋은 팀워크를 만드셨고, 우리는 팀장님을 중심으로 최선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어느 날 고객은 프로젝트 일정이 앞당겨졌다며모든 개발을 중단하고, 그동안 고객과 주고받은 정보들은 모두 폐기해 달라는 공문 메일을 보내왔다.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 팀의 해체를 요구했다.


팀장님과 나는 고객사의 공문을 받은 후, 불 꺼진 빈 회의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상황에 쉽게 굴복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며칠 동안 끊임없이 논의했다. 우리에게는 커다란 화이트보드에 쓰고도 남을 만큼의 전략과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하지만 경영진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신사업을 중단하라는 압박을 계속 가했다. 그 뒤에는 권 부장의 교묘한 권모술수가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팀장님, 우리 회사는 늘 그래왔습니다. 어려움이 생기면, 쉬운 포기를 택하는 쪽이었어요."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요? 그건 너무 멋이 없는데... 우리 조금만 더 해보는 것은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

팀장님은 부드러운 인성으로 팀원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좋은 리더였다.


나는 커다란 화이트보드에 어렵게 머리를 맞댄 전략을 모두 지웠다.

그리고 깨끗해진 화이트보드에, '쉬운 포기'와 '어려운 성공'을 크게 썼다.


"팀장님, 우리가 포기한다면 아마 지금보다 편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저는 여기서 포기하고 패배자처럼 변명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쉬운 포기가 아니에요. 저는 아무리 어려워도 성공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팀장님은 미소를 보이셨다. "그 대답을 기다렸어요, 가보자고!"


신사업을 포기하라는 경영진들의 압박이 계속되었고, 신사업 중단 검토 회의가 발의되었다. 대표이사와 경영진들 앞에서 팀장님과 나는 숨죽여 앉았다. 나는 Q사의 발전 역사와 방향, 벤더로 등록될 경우 회사가 얻게 되는 매출과 기술 진입장벽에 대해 설명했다. 추가로 회사의 존속 및 성장 가능성에 대해 청사진을 그려 프레젠테이션을 마쳤다.


팀장님은 나를 보고 씩 웃으며 작게 속삭이셨다. "잘했어." 그리고 회의실에서 벌떡 일어나 말씀하셨다.

"사장님, 한 번만 믿어 주십시오. 우리 팀이 해내면, 이 회의실 책상 위에 올라가 제가 바지 벗고 춤이라도 한 번 추겠습니다!"


나는 팀장님을 쳐다봤다. 책임감을 갖고 지원해주어야 할 경영진들이, 오히려 압박을 가하는 황당한 상황으로, 회사에게 실망하고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팀장님은 그런 나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그는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열정과 의지로 상황을 멋지게 돌파해 내고 계셨다. 그 순간 나는 팀장님의 불굴의 의지와 타고난 리더십에 매료되었다.


팀장님의 열정과 결단력은 나에게도 새로운 용기와 의지를 불어넣었다. 나는 팀장님을 주군으로 모시기로 결심했다. 그가 바라는 모든 일을 돕는 진정한 조력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와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③ Q사 검증 (구매)


포기하지 않는 우리를 회사는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해산시킬 수도 없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Q사의 숙제가 늘어나고 어려워질 때쯤, 팀원은 오히려 열 명으로 늘어났다. 고객사에서 준 숙제를 새벽까지 하고 있던 어느 날, 구매부서에서 우리를 검증해보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메일 내용은 그저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1년 반을 기다린 우리의 눈은 열정으로 타올랐다.


나는 우리가 어떤 팀인지,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어서 이를 악 물었다.


Q사 구매팀의 숨 막히는 벤더 검증이 시작되었다. 중소기업이 Q사의 벤더가 되기 위해서는 회사소개 (Capex, 인적 구성 및 엔지니어 분야별 수 및 경력년수, 각 분야별 리더 및 이력, 사무실 분리 구조 및 보안 시스템 등)부터 팀 소개 (업무 흐름 및 독립적 구성에 의한 서포트 능력 등), 양산 능력 (국내, 해외 양산 능력 등), 가격 경쟁력 (가격 절감 방안 등), 제안하고자 하는 제품의 기술력부터 타사 대비 비교 경쟁력까지, 사업을 하며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와 더불어 고객의 "Why"라는 질문에 당위성을 답할 수 있어야 했다.


마케팅을 혼자 담당했던 나는 50페이지가 넘는 제안서의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했다. 새벽 퇴근은 흔한 일이었다. 새로운 검증 요구가 있을 때마다 회의실을 하나 잡고 화이트보드 전체에 빼곡히 아이디어를 써 내려갔고, 그 아이디어를 기준으로 유관 부서에 백데이터를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 회사만 상대해 본 우리 회사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상세히 설명해 줘도 이해하지 못했다. 설사 유관 부서에서 자료를 제공받더라도 자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나는 스스로 상상력을 동원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구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항상 시간이 부족했고 새벽까지 혼자 남아 머리를 싸매야 했다.


이렇게 고민을 통해 만든 제안서는 사실, 제안서라기보다는 소설과 같은 창작물 혹은 상상 속에 나오는 용에 가까웠다.


Ramp-up 페이지만 10 페이지가 넘는다. 지독히도 검증받았다.


24/7 대응에 대해 초등학생처럼 시간 계획표를 짠 건 특히 기억에 남는다.


2018년, 서른여섯 가을 어느 날, 드디어 기다리던 고객사의 구매팀 매니저를 만나는 날이었다. 이 날을 위해 1년 반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혼자 시작했던 일은 주 팀장님을 중심으로 다섯 명이 되었고, 1년 즘 지나 열 명이 되었다. 오늘의 결과에 따라 우리는 수십 명의 사업부로 성장할 계획이었다.


우리는 사업부의 이름을 Alpha라고 지었고, 회사를 방문할 구매팀 매니저에게 보여주기 위해, 다른 사업부와 층과 공간을 분리하여 명패를 만들어 붙여 두었다. Alpha라는 이름에 우리는 특별한 열정과 포부를 담았다. 새로운 시작이 우리의 눈앞에 있었다.


고객사의 매니저를 만나는 순간, 우리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지, 우리의 꿈이 현실이 될지, 그 모든 것이 오늘의 만남에 달려 있었다. 회사의 가장 큰 회의실, 왼쪽에는 사장님을 포함한 주요 인원 약 30명이 의자를 다닥다닥 놓고 앉아 있었다. 회의실의 오른쪽에는 Q사의 젊은 여성 매니저가 홀로 앉아 있었다.


주 팀장님과 Alpha팀의 마 차장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고, 우리 팀은 하나가 되어 매니저의 질문에 성심껏 답변했다. 회의실 왼쪽에 앉아 있던 약 30명의 중년 남성들은 손에 땀을 쥐고, 회사의 운명을 쥔 고객사의 매니저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매니저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흰색 바탕에 화려한 꽃이 그려진 치마를 입고, 맨발에 페라가모 뮬을 신은 채 다리를 꼬고 있었다. 그녀의 발끝에 걸린 뮬은 프레젠테이션의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발가락에 걸려 떨어질 듯 말 듯 까딱까딱 앞으로 뒤로 움직였다.


모든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발끝에 걸린 뮬에 모아졌다. 회의실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고, 우리 모두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매니저의 표정 변화 하나하나에 우리의 희망과 불안이 교차했다.


회의실 안의 공기는 무겁고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리의 열정과 비전을 전달했다. 매니저의 반응 하나하나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매니저의 마지막 반응이 어떨지, 모두가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매니저는 일어나서 짧은 박수를 보냈다.


"저는 벤더를 검증하는 일만 하는 사람입니다.

자료 안에 우리가 알고 싶은 모든 내용이 있습니다. 제가 본 프레젠테이션 중 가장 완벽합니다."

나는 온몸에 전기가 흐른 듯 짜릿했다. 그동안의 나의 모든 노력들이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중국 사업을 성장시키며 무릎을 꿇었던 것도, 나의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신사업을 시작한 것도, 신사업을 중단하라는 회사의 압박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았던 것도, 한 달 넘게 밤을 새워가며 제안서를 만들었던 노력도, 모두 헛된 것이 없었다. 나는 설사 누군가에게 '호구'나 '바보'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줬다.


며칠 후, 고객사 구매팀 매니저는 엔지니어 팀에게 기술 검증을 시작해도 좋다는 메일을 보냈고, 우리는 본격적인 시험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저 첫 번째 검증을 통과했을 뿐이었다. Q사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 1년 반의 시간이 흘러 우리는 비로소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진인사대천명'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④ Q사 검증 (개발)


Q사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우리 팀은 1년 반 동안 회사에서 찬밥 신세였다. 그러나 고객사 구매팀의 '이제 기술 검증을 시작해도 좋다'는 메일 하나로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 회사는 Q사의 벤더가 되기 위해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결정을 하거나, 아니면 끓고 있는 물에서 안도하는 개구리처럼 침몰하는 중국 사업에 머물러야 했다. 회사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나는 회사의 현 상황을 경영진에게 하나씩 설명했다. 회사도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알고 있었고 최종 Alpha팀을 사업부 규모로 확장하는 것을 승인했다. 나 혼자 시작했던 일이 다섯 명의 팀으로, 결국 30명 규모의 사업부까지 성장했다. 권 부장의 권모술수도 Q사의 메일 앞에서는 아마도 힘을 쓸 수 없었던 것 같다.


회사의 정치적인 싸움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개발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 개발건이 성공한다면, 단숨에 우리 회사를 업계의 진입장벽 안전지대로 옮겨줄 수 있었다. Alpha의 엔지니어들은 정말 대단했다. 그들의 열정은 낮과 밤, 주말을 가리지 않았다. 오직 개발의 성공을 향한 의지가 모아졌다. 


사람들이 모여 위대한 업적을 만든다는 것은, 달걀이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다. 하나의 달걀로는 바위를 깰 수 없지만 수많은 달걀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바위를 향할 때 기적이 일어났다. 바위에는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균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개발의 90%가 완료되고, 이제 고객에게 검증받을 시간이 다가왔다. 나머지 10%는 우리 스스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이었기에, Q사와의 대면 미팅을 통해 정보를 받고 출장 기간 중에 완료하기로 했다. 고객과의 미팅은 화기애애했고, 그들은 우리의 열정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제 모든 열쇠는 골방에 남아 있는 두 명의 엔지니어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나는 그들의 옆을 지키며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걱정도 없었다. 이미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우리는 다시 용감한 달걀이 되어 이 자리에 서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됐어요! 떴어요!"라고 외쳤다.

마치 슬램덩크의 마지막에 서태웅과 강백호가 아무 말 없이 하이파이브를 하듯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나는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둘의 사진을 찍어 사진첩에 저장했다. 둘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그들의 얼굴은 감동과 기쁨, 성취로 환희에 가득 차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의 회사 생활 중,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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